따뜻하고 다정한 시인의 감성, 계절 산문 - 박준 지음
2022년 01월 07일(금) 19:00
소소한 이야기 속 큰 울림
박 준 시인의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을 마음에 담아 둔 이들이거나, 그의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나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의 정서를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시인의 새 책 ‘계절 산문’를 받아들고 마음이 따뜻해질 듯하다.

박 준 시인이 4년만에 펴낸 에세이집 ‘계절 산문’은 세상을 보는 시인의 따뜻하고 다정한 시선이 담긴 글 70여편을 담고 있다. 경어체로 써내려간 글들은 전작들의 감성을 그대로 잇고 있으며 ‘시처럼’읽히는 짤막한 글들은 울림이 크다.

‘일월 산문’부터 ‘십이월 산문’까지 펼쳐지는 다채로운 글들은 계절의 감각을 자연스레 느낄 수 있으며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져 우리의 삶을 이야기한다.

‘오월산문-바둑이점’은 얼굴에 큰 점이 있는 걸 마뜩잖아하는 사람에게서 초상화를 그려달라는 청을 받은 화가 이야기로 글을 풀어나간다. 아마도 화가는 점을 그대로 그릴 수도, 그리지 않을 수도 없어 고민에 빠질 터다. 시인은 그 사람의 옆으로 가서 스케치를 시작해, 점이 보이지 않는 한 쪽 얼굴을 그리겠다고, 별이 많은 밤에 바닥에 누워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그림을 그릴 수도 있을 거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점처럼’ 찍혀있는 상처들을 대할 때 자신과 타인의 상처를 어떻게 직면하거나 애써 외면해야하는지 조용히 질문을 던진다.

세상을 떠난 허수경 시인과 얽힌 글도 애틋하다. ‘선물’을 주제로 쓰인 글에서 저자는 ‘수경 선배’의 고향 진주로 여행을 떠나 진주중앙시장에서 진주비빔밥을 먹고, 그녀가 다녔던 고등학교에 가 교문과 담벼락 사이로 ‘사람을 기다리는 표정을 짓다 돌아온 후’ 선배의 시집을 읽는다. 그에게는 진주비빔밥도, 학교 앞에서 한가하게 발을 옮기는 시간이 모두 선물이었고, 무엇보다 많은 사람이 함께 받은 그의 ‘시’는 “사람은 좋아하는 이에게 좋아하는 것을 건네는 법이기에” 가장 좋은 선물이었다고 말한다.

유리공장을 탐방하고 글을 써 달라는 청탁을 받은 이야기가 담긴 ‘다시 노동에게’는 담담한 시인의 시선을 느낄 수 있는 글이다. 영하 10도가 넘는 날씨지만 가마 쪽으로 몇 걸음만 걸어가면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로 뜨거운 공기가 몰려오는 곳에서, 도시락을 펴고 단 몇분만에 점심 식사를 마치는 그들의 일상을 지켜보며 “세상이 노동에게 어느 한번 친절한 적이 없었으니 노동이 그리고 노동자가 세상에 친절하지 않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글을 맺는다.

또 박두진 시인과 조지훈 시인의 우정을, 두 사람이 나눈 유명한 시 ‘완화삼’과 ‘나그네’를 통해 들려주는 글 ‘벗’을 비롯해 ‘혼자 밥을 먹는 일’, ‘장마를 기다리는 마음’ 등 소소하고 따뜻한 이야기가 아름다운 문체에 담겨 있다.

<달·1만4800원>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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