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2040] 광주의 오월은 이미 끝났다는 사람들에게-오태화 위민연구원 운영위원·대학생
2021년 11월 15일(월) 05:00
광주에는 오월이 되면 유난히 비가 많이 내린다는 말이 있다. 자식을 잃은 서러움, 가족을 잃은 아픔이 겹쳐 하늘을 움직였던 것일까. 맑은 하늘을 보면서도 깊은 한숨이 나오는 계절이 바로 광주의 오월이다. 태어나지도 않았던 시대에 벌어진 비극은 그렇게 필자에게도 천형처럼 ‘살아남은 자의 아픔’을 짊어지웠다. 광주의 아픔은 그렇게 세대를 넘어 피와 역사와 공기로 계승되었다.

최근 들어 부쩍 광주 사람임이 서러워질 때가 많다. 오월이 되면 유난히 쓰라렸던 가슴이, 찬바람이 불고 입동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아리다. 역사의 광주와 현재의 광주가 공유하고 있는 슬픔이 상당한 이들에게, 조롱당하는 기분은 참담할 뿐이다. 하물며 비극의 주범을 억지로 들먹여 애써 가라앉힌 분노를 자아내고 자신의 반려견을 활용해 조롱하는 모습은 분노를 넘어 허탈감마저 자아낸다. 그러나 필자를 진정으로 서럽게 하는 것은 광주의 오월이 이미 끝났다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이번 일을 겪으며 많은 이들이 광주가 아직 용서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광주가 아직도 오월을 들먹이며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며, 언제적 오월 이야기가 아직도 나오느냐고 묻는다. 광주가 언제쯤 과거에서 벗어나 현실을 살 수 있느냐고 묻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은 전혀 다르다. 광주는 용서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아직 사과받지 못했다. 참담한 학살의 주범에게도, 심지어 책임 있는 어느 장본인에게도 사과는 없었다. 용서는 사과와 치열한 뉘우침이 선행되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광주가 오월을 먼저 꺼내든 적도 없다. 오월을 혐오하는 이들을 품에 안고 싶었던 이들이 계절마다 광주의 오월을 조롱함으로써 5·18 민주화운동을 정치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광주가 언제쯤 과거에서 벗어날 것이냐고 묻는다.

하지만 광주의 오월은 과거가 아닌, 끝나지 않은 현재이기에 광주는 현재에도 여전히 오월을 살아가고 있다.

최근 유독 격해지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혐오와 멸시는 우리 사회의 혐오 인지 감수성이 얼마나 무너져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척도이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분노에 가득 차 있는지, 갈등 조절에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심지어 정치를 삶의 모든 상식을 결정하는 척도로 삼고 사고의 편협성에 갇혀 버린 이들도 너무나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80년 광주가 입은 상처만큼이나 우리 사회에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들이 많이 남아 있는 것이다.

광주 사람으로서, 광주 정신의 수많은 계승자 중 한 사람으로서 필자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 아픔으로 다가온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비극적 영광’을 두고 영광만을 강요하고, 비극을 애써 가리는 모습은 온당치 못하다. 심지어 그것을 정치의 구호로 삼아 혐오자들의 결집에 활용한다면 그것은 광주를 넘어 대한민국의 비극이다. 우리 사회 전반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슬픔과 영광의 양면성을 재조명하고, 광주 정신이 우리 사회의 바탕이 되는 중요한 민주 정신임을 강조해야만 한다. 우리 사회에서 과학과 역사가 정치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바란다. 과학과 역사는 어느 시대에나 정치의 중요한 논쟁거리였지만, 정치라는 주관적 영역이 과학과 역사라는 객관적·합의적 영역을 조정하려 해서는 안 된다. 광주 5·18 민주화운동이라는 명확한 역사 앞에서 겸허한 정치가 이뤄지기를 소망해 본다.

광주의 오월은 이미 끝났다는 사람들에게 호소한다. 죽음과도 같은 상처를 입은 이를 치유하기 위한 노력을 충분히 기울이기도 전에 왜 상처가 낫지 않았느냐 몰아치는 태도는 온당치 못하다. 하물며 그 상처가 가족을 잃은 이의 단장과도 같은 아픔이며, 자신의 삶을 잃어버린 이들의 신음임에야 말할 것도 없다. 부디 광주의 비극적 영광을 혐오하고 조롱하는 태도를 거둬 주시라. 현재에도 숨 쉬고 있는 역사의 상처를 외면하지 말고, 광주의 오월을 죽어 버린 역사로 밀어 넣지는 말아 주시라. 역사의 판결을 두려워하고 역사 앞에서 겸허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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