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금융과 문화산업-김정수 광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 경영본부장
2021년 11월 09일(화) 02:30
‘오징어 게임’의 인기가 전 세계를 흔들고 있다. BTS나 블랙핑크 등 아이돌 문화로 대표되는 한류가 이제는 콘텐츠 전반으로 확장되어 ‘K-콘텐츠’(K-contents)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 콘텐츠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이를 두고 미국의 싱크탱크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의 한 연구원은 영국의 전설적 록 그룹 비틀스의 성공적인 미국 진출을 뜻하는 ‘브리티시 인베이전’(British Invasion·영국의 침공)에 비견하기도 했다.

하지만 K-콘텐츠가 글로벌 시장에서 유례가 없는 주목을 받고 있는 것과는 달리 국내 콘텐츠 기업들은 대부분은 영세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국내 콘텐츠산업의 총 매출액은 2015년 기준 100조 원을 돌파하였지만 90% 이상 기업들이 매출 10억 원 이하, 종업원 수 10인 이하, 자본금 10억 원 이하로 영세하다.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에서 1조 원 이상의 부가가치를 창출했다는 소식에도 국내 콘텐츠업계가 웃을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253억 원이라는 제작비를 투자받아서 국내 연기자들과 국내 제작 인력이 국내에서 제작했지만 대부분의 부가가치는 글로벌 기업인 넷플릭스에게 돌아가 정작 국내 콘텐츠산업의 성장으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지적에 일부에선 넷플릭스의 글로벌 콘텐츠 유통망과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투자와 콘텐츠의 창의성을 보장하는 제작 환경이 콘텐츠의 성공을 이끌었다는 점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얘기한다. 콘텐츠의 경쟁력에 있어서 유통망과 함께 충분하고 안정적인 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논리다.

실제로 콘텐츠 산업은 매체 즉 플랫폼에 대한 의존도가 강해 방송은 방송사, 영화는 대형 유통 배급사, 게임은 주로 메이저 퍼블리셔(publisher)가 주도하는 산업이다. 또한 기획에서부터 수익을 창출하는 시점까지 제작하는데 드는 막대한 시간과 비용, 그리고 투자 결과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투자 유치는 콘텐츠의 성공과 직결되어 있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를 표방하는 광주가 이러한 콘텐츠산업의 현실과 오징어 게임의 성공에서 주목해야 하는 지점은 바로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투자 유치가 콘텐츠의 성공을 이끈다는 점이다. 그리고 지역 콘텐츠 기업의 성장을 위한 ‘콘텐츠 금융’이다. 과거 선물거래 회사에서 외환 트레이더로 재직 중 IMF체제 하에서 국내 수출입 기업들의 외환 리스크 관리를 하면서 다양한 형태의 ‘무역 금융’ 을 직접 경험했다. 당시 현장에서 무역 금융의 효과를 직접 목격하고 경험한 기억은 무역 금융과 같은 콘텐츠 금융을 만들어 지역의 콘텐츠산업에 적용할 수 없을까라는 의문으로 이어졌다.

가령 대표적인 무역 금융 방식인 신용장 제도는 수출기업이 외국의 수입업체와 수출 계약을 맺고 상대방 거래 은행에서 신용장을 받으면 국내 은행에서 수출에 필요한 자본을 저리의 이자로 대출해 주는 제도다. 이를 우리 지역의 콘텐츠 기업들에게 적용하여 해외 유통사나 글로벌 플랫폼과 계약을 체결하고 신용장을 받은 콘텐츠기업에게 지역의 금융기관이 낮은 금리로 제작비를 대출하는 지원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단순한 지원금의 형태보다 지역의 콘텐츠가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유도하면서 제작 비용을 지원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오징어 게임’에서 보듯이 오늘날 글로벌 콘텐츠시장은 콘텐츠 자체의 경쟁력만 갖춘다면 새로운 활로를 얼마든지 개척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유튜브, 넷플릭스 등 기회의 장에서 수많은 성공 사례가 만들어지고 있다.

이를 두고 혹자는 외국이 깔아 놓은 판에 우리는 그저 콘텐츠만 제공할 뿐이라고 자조 섞인 넋두리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좋은 콘텐츠와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자본력을 갖출 수 있다면 그 판을 우리가 먹을 수 있다. 즉 외국이 깔아 둔 판에서 돈은 우리가 벌어 오는 것도 가능하다. 이를 위해 콘텐츠 금융을 바탕으로 우수한 지역 콘텐츠 기업에게 안정적인 성장 기반을 마련해 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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