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에서 니체를, 샤갈에서 제자백가를 읽다
2021년 09월 24일(금) 22:00
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 책
다정한 철학자의 미술관 - 이용법 이진민 지음
불현 듯 드는 생각. 철학과 미술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사유하게 한다는 것일 터다. 철학은 인생관, 세계관 등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사유가 밑바탕이다. 반면 시각예술인 미술은 느낌을 중시한다. 그러나 작품을 볼 때 다양한 생각을 하게 된다. 작가가 그림을 그린 이유는 무엇이며, 제목은 왜 그렇게 붙였을까 라고 궁금해한다. 그처럼 미술 또한 끊임없는 사유를 추동한다는 점에서 철학을 닮았다.

누구나 미술 작품 앞에서는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다.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그림 앞에서는 세상의 모든 생각이 가능하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미술은 철학이라는 공간에 불을 밝히는 ‘스위치’와 같은 것이다.

‘나는 철학하는 엄마입니다’의 저자 이진민 박사의 그림 속 철학 이야기를 묶은 책 ‘다정한 철학자의 미술관 이용법’은 친근하다. 철학을 잘 모르는 사람도, 그림을 잘 모르는 사람도 가볍게 즐길 수 있다.

저자는 철학을 일상의 말랑말랑한 언어로 바꾸는 일에 관심이 많다. 책을 쓰고 싶었던 터라 철학과 미술의 결합은 흥미로운 주제였다. 이번 책은 전작 ‘나는 철학하는 엄마입니다’와 같은 연장선의 결과물이다. 무엇보다 저자는 미술관이 철학하기에 가장 좋은 분야라고 강조한다. “모호하게 느껴지는 개념들을 벽돌 삼아 쌓아가는 논리의 성”이 철학인데, 벽돌 자체를 쥐기도 그렇지만 그것으로 성을 쌓는다는 것은 엄두를 못낼 일이다. 그러나 철학의 이런 장벽은 소통 방식을 바꾸면 얼마든지 허물 수 있다. 타인과 세상을 바라보는 방편 또한 철학이므로 생각을 유연하게 접근하면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그림’은 사유의 힘을 기르고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는 중요한 매개체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에서 ‘손’만 클로즈업해서 보면 어느 쪽이 신이고 어느 쪽이 인간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얼핏 부드럽게 수용하는 손끝은 신으로, 상대를 향해 다가가는 강렬한 손끝은 인간으로 상정된다. 그러나 전체적인 그림에서 보면 아담은 편안한 자세로 부드럽게 손을 뻗고 있고, 신은 천사들에 둘러싸여 있지만 곧게 손을 내밀고 있다.

또한 저자는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를 모티브로 “신은 죽었다”고 역설했던 니체를 떠올린다. 니체의 사유는 사실은 “신으로 상징되는 권위와 도덕”을 전복시켰다고 보는 편이 맞다는 것이다. 단순한 무신론이 아닌 오랫동안 이어온 이성과 도덕률에 대한 도전이 그와 같은 “신은 죽었다”라는 선언으로 귀결됐다는 논리다.

조선시대 책거리를 그린 그림은 서양 관점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균형과 조화를 보여준다.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원근법에선 느낄 수 없는 감동과 신비”를 자아내기 때문이다. 철학 역사 또한 마찬가지다. 책거리 그림들의 자유분방함이 학문탐구와 복을 기원하는 마음을 드러내듯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는 다양한 사상과 시선의 집합체다.

저자는 샤갈의 그림 ‘나와 마을’에서 시선의 마주침을 이야기한다. 시선의 마주침을 드러내기 위해 그려 넣은 흐릿한 선을 주목한다. “눈높이와 관점도 다르지만” 그렇게 보는 눈의 방향과 위치가 다름으로 아름답고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과 그림도 어떻게 보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호세 에스코페 작 ‘사과나무와 크로커스’(왼쪽)와 톰 시에라크 작 ‘빨간모자’
두 개의 사과그림을 예로 드는 저자의 사유는 사뭇 역동적이며 발랄하다. 호세 에스코페의 ‘사과나무와 크로커스’, 톰 시에라크의 ‘빨간 모자’는 각기 사과를 배경으로 하지만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전자는 칠흑 같은 어둠 속의 사과로 홉스의 자연 상태를 환기하지만, 후자는 평화로운 수확를 함의하는 로크의 자연 상태를 드러낸다. 같은 오브제이지만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그렇듯 전혀 다른 느낌으로 수용된다.

또한 저자는 클림트에게 의뢰한 오스트리아 빈 대학의 천장화가 포르노그래피라는 혹평을 받은 사연을 비롯해 천진한 시선이 돋보이는 파울 클레의 작품이 파시즘 광기를 뚫고 피어난 예술적 성취라는 점도 이야기한다. <한겨레출판·1만8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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