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중 전남대 호남학과 교수 ‘전남대 비나리패의 문예운동’ 펴내
2021년 08월 18일(수) 23:30 가가
“80년대 시대의 질곡에 맞섰던 청년들의 모습”
지역 문예운동 전개했던 시 동아리 ‘비나리패’
‘들불야학’ 등 집단창작, 동인집 5권출간 등 조명
김경윤·임동확·이형권·송광룡 등 시인 배출
지역 문예운동 전개했던 시 동아리 ‘비나리패’
‘들불야학’ 등 집단창작, 동인집 5권출간 등 조명
김경윤·임동확·이형권·송광룡 등 시인 배출
80년 5월 광주 민중항쟁 이후 우리 사회는 변화를 갈망하는 민중들의 목소리가 봇물처럼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군부독재 서슬이 퍼렇던 시대였지만 민주화에 대한 열망마저 꺾을 수는 없었다. 그 가운데 젊은이들의 열정과 목소리는 어둠 속 한줄기 빛처럼 사회 곳곳으로 스며들었다.
84년 창립된 전남대 국문과 시창작 동아리 ‘비나리패’는 시대의 질곡에 맞섰던 문예운동 산실이었다. 삶으로의 예술 또는 운동으로서의 예술을 주장했던 이들은 민중들 요구에 부응하고 지식인으로서의 사명감을 비나리패라는 문예운동을 통해 구현했다.
사전적 의미의 비나리는 “우리 전통의 공동체 문화의 민요양식”으로 규정된다. 삶과 노동, 예술의 일체성을 추구한다는 데 방점이 놓여 있다.
최근 비나리패의 역사와 의미 등을 다각도로 조명한 책이 발간돼 눈길을 끈다.
정명중 전남대 호남학연구원 호남학과 교수가 펴낸 ‘전남대 비나리패의 문예운동’(문학들)이 그것. 발간 배경에 대한 질문에 정 교수는 “로컬 담론이 부상하고 있지만 ‘지역문학’ 연구의 관점에서조차 이들의 활동이 누락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말했다.
“감히 판단하건대 비나리패는 상당한 족적을 남겼다. 80년대 말까지 일종의 동인시집인 다섯 권의 ‘비나리글마당’을 출간한다. 그러나 80년대 그들의 자취는 점차 기억에서 사라지는 듯하다. 앞으로 주류 또는 정통(?) 문학사의 견지에서 이들의 활동이 적절히 평가(재발견)될 기회가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정 교수는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비나리패 움직임이 포착되지 않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혹여 민중문학이나 리얼리즘 사조의 아류 정도로 취급해준다 해도 감격스러운 일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정 교수 자신도 한때 비나리패 회원으로 활동한 적이 있다.
그는 “오늘날 관점에서 보면 비나리패 활약이나 지향점은 보편적인 ‘프레임’을 넘어선다”며 “이들은 창립 이후 공동창작을 시도했던, 당시로서는 꽤 이색적인 족적을 남겼다”고 말했다.
모두 6편의 공동창작시는 문학사 관점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부분이다. 특히 ‘들불야학’ 같은 작품은 오월시동인집에 실리기도 했다. 또한 이들은 5권의 시집, 한 권의 시선집을 출간할 만큼 창작에도 열정적이었다. 이십대 청춘들은 ‘구원의 노래, 해방의 몸짓’이라는 모토를 내걸고 암울한 80년대를 그렇게 건너온 것이다.
당시 비나리패의 선언문에는 암울한 시대에 맞고자 청년들의 열망과 당돌함이 투영돼 있다.
“우리 전통의 공동체 문화의 민요양식인 비나리는 개인적 체험이 민중적 체험으로 보편화되어 민족의 삶을 예술로서 표현하고 집적시켜온 우리 고유의 문학전통이며 삶에 대한 의지와 정서가 관념적으로 분해되지 않고 비는 사람의 의지가 객관화되어 왜곡된 허상 없이 오직 인간의 능력을 스스로 다지기 위해 울려 퍼지는 구원의 노래이며 해방의 몸짓이다.”(‘삶의 터전으로서의 노래와 해방의 메시지’ 중에서)
비나리패에 참여했던 이들 가운데 다수는 누구나 알아주는 시인으로 성장했다. 김경윤, 임동확, 이형권, 윤정현, 송광룡 등은 자신만의 문학적 성취를 일군 문인들이다. 이들은 공허한 구호보다는 삶에 뿌리를 두는 구체성에서 문예운동의 활로를 찾았다. 정 교수는 “비나리패는 시 창작 외에도 학습, 시평, 농촌봉사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다”며 “동학동민혁명 격전지를 순례하며 역사인식과 아울러 담대한 문예운동을 펼쳤다”고 말했다.
이번 책은 대체로 시평의 외양을 하고 있다. 전문적인 시 연구자가 아니기에 조심스러운 측면도 있었던 듯하다.
정 교수는 “그들의 작품을 옳게 이해하고 정당하게 파악한 것인지 자신하기 어렵다. 책을 읽다가 터무니없는 대목들이 눈에 띌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필자가 과문하다는 증거”라고 몸을 낮췄다.
책에는 비나리패 결성 과정, 비나리라는 명칭 의미, 민요를 비롯한 전통예술에 대한 비나리패 관심 등이 담겨 있다. 아울러 장시, 연작시, 공동창작시에 대한 부분과 경향성 등도 다뤘다. 그렇다고 저자는 비나리패 작품을 무작정 상찬만은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서 보고자 했던 것은 그들의 예술적 성취만은 아니었다. 어쩌면 이는 필자보다 더 전문적인 식견과 혜안을 갖고 있는 자의 몫일 것이다. 반면 필자는 그들에게서 ‘시대의 질곡에 맞섰던 자들의 모습’을 읽어내고 싶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사전적 의미의 비나리는 “우리 전통의 공동체 문화의 민요양식”으로 규정된다. 삶과 노동, 예술의 일체성을 추구한다는 데 방점이 놓여 있다.
최근 비나리패의 역사와 의미 등을 다각도로 조명한 책이 발간돼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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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명중 교수 |
정 교수는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비나리패 움직임이 포착되지 않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혹여 민중문학이나 리얼리즘 사조의 아류 정도로 취급해준다 해도 감격스러운 일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정 교수 자신도 한때 비나리패 회원으로 활동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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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시집 ‘가자 피 묻은 새떼들이여’ 출판모임(1984) |
모두 6편의 공동창작시는 문학사 관점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부분이다. 특히 ‘들불야학’ 같은 작품은 오월시동인집에 실리기도 했다. 또한 이들은 5권의 시집, 한 권의 시선집을 출간할 만큼 창작에도 열정적이었다. 이십대 청춘들은 ‘구원의 노래, 해방의 몸짓’이라는 모토를 내걸고 암울한 80년대를 그렇게 건너온 것이다.
당시 비나리패의 선언문에는 암울한 시대에 맞고자 청년들의 열망과 당돌함이 투영돼 있다.
“우리 전통의 공동체 문화의 민요양식인 비나리는 개인적 체험이 민중적 체험으로 보편화되어 민족의 삶을 예술로서 표현하고 집적시켜온 우리 고유의 문학전통이며 삶에 대한 의지와 정서가 관념적으로 분해되지 않고 비는 사람의 의지가 객관화되어 왜곡된 허상 없이 오직 인간의 능력을 스스로 다지기 위해 울려 퍼지는 구원의 노래이며 해방의 몸짓이다.”(‘삶의 터전으로서의 노래와 해방의 메시지’ 중에서)
비나리패에 참여했던 이들 가운데 다수는 누구나 알아주는 시인으로 성장했다. 김경윤, 임동확, 이형권, 윤정현, 송광룡 등은 자신만의 문학적 성취를 일군 문인들이다. 이들은 공허한 구호보다는 삶에 뿌리를 두는 구체성에서 문예운동의 활로를 찾았다. 정 교수는 “비나리패는 시 창작 외에도 학습, 시평, 농촌봉사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다”며 “동학동민혁명 격전지를 순례하며 역사인식과 아울러 담대한 문예운동을 펼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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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교수는 “그들의 작품을 옳게 이해하고 정당하게 파악한 것인지 자신하기 어렵다. 책을 읽다가 터무니없는 대목들이 눈에 띌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필자가 과문하다는 증거”라고 몸을 낮췄다.
책에는 비나리패 결성 과정, 비나리라는 명칭 의미, 민요를 비롯한 전통예술에 대한 비나리패 관심 등이 담겨 있다. 아울러 장시, 연작시, 공동창작시에 대한 부분과 경향성 등도 다뤘다. 그렇다고 저자는 비나리패 작품을 무작정 상찬만은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서 보고자 했던 것은 그들의 예술적 성취만은 아니었다. 어쩌면 이는 필자보다 더 전문적인 식견과 혜안을 갖고 있는 자의 몫일 것이다. 반면 필자는 그들에게서 ‘시대의 질곡에 맞섰던 자들의 모습’을 읽어내고 싶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