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주사 비밀을 살짝 알려 드릴까요?
2021년 08월 10일(화) 01:30 가가
운주사에 가십니까. 와불님을 뵈러 가십니까. 천불천탑을 보러 가십니까. 아니면 당신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가십니까.
세상일이 꼭 운주사 이야기 같지요. 삶은 못 이룬 한바탕의 꿈인지 모릅니다. 누구나 마음이 답답해지면 찾아 나서는 곳이 운주사랍니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당신에게 운주사는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하지요. 누구나 운주사 창건에 대해 한마디씩 하지요, 운주사는 모르는 사람도 없지만 딱히 아는 사람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혹시 운주(雲住)가 무슨 뜻인지 모르시진 않으시지요. 천불동에 가고 계시다니, 당신도 아마 구름 속을 걷고 싶은 모양입니다.
저도 그랬답니다. 그곳에서 나고 자란 저도 늘 와불님만 뵈러 갔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몰골이 앙상해 ‘거지탑’ 또는 ‘송장탑’이라고 부르는 입구의 부처님만 뵙고 온답니다. 누군가 나뒹구는 탑신을 떡시루처럼 그냥 얹어 놓은 것 같은, 아무리 봐도 형편없이 앙상한 뼈만 드러낸 채 낭떠러지 위에서 위태롭게 버티고 서 있는 탑, 저를 닮은 부처님 말입니다.
천불동에 들어서면 골짜기마다 부처님마다 이끼가 옷에 묻을 듯 푸른 전설이 들려오지요. 대부분은 미완의 슬픈 이야기들이지요. 와불과 명당탑 설화가 그렇고, 연장 바위와 도선 국사 이야기, 석조불감 문짝 이야기가 그러하지요.
그 이야기의 근원을 찾아서 국문학자는 떠도는 전설을, 고고학자들은 발굴 작업과 기호 해석을, 사학자들은 역사와 배경을, 건축학자들은 구도와 배치를 붙들고 용맹 정진하였지요. 하지만 누구도 속 시원한 해답을 듣지 못했지요.
이들은 주로 학자들입니다. 지식과 학문은 능통하지만, 중요한 불경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요. 그러니 본질에서 헛나갔던 것은 너무 당연하지요.
먼저 묘법연화경에 나오는 견보품탑을 보면 대요설 보살의 요청으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분신하시어 시방세계에 설법하는 모든 부처를 모이게 한 후 사부중과 함께 모두 허공에 있게 하신 후, 허공에서 묘법연화경을 설하는 공중 법회를 엽니다. 운주사는 바로 그 공중의 장면을 지상에 재현해 놓은 것입니다. 운주사 보배탑에는 석가여래와 다보여래가 계시고 기타 부처들은 사부중을 뜻한답니다. 칠성바위의 배열 상태는 북두칠성을 기준으로 하여 우리와 반대가 되는 쪽에서 보는 북두칠성으로 이는 천불천탑 공간이 지상이 아니라 하늘, 곧 공중에 있음을 나타내기 위함이지요. 또 공사바위는 한자를 달리하여 ‘공중의 운주사’의 준말로 운주사가 지상이 아니라 북두칠성보다 높은 하늘 허공중에 있음을 나타낸답니다.
실패탑 역시 하늘 천(天)자의 조형물로 원반형 석탑이 아니라 자형상의 조형물입지요. 그리고 그 누구도 풀지 못한 기하학적 문향에 대해서도 세존께 궁전을 받들어 올리는 대목의 화성유품을 근거로 하나하나 풀어내고 있습니다.
자! 운주사를 한 바퀴 돌아 나오시나요. 집안 대대로 불심이 깊은 박춘기 선생님의 ‘내가 보는 운주사 와불이 사라진다’의 극히 일부 이론만 소개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고 운주사의 궁금증이 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저는 믿지만 당신은 믿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이 책을 일독하시면 많이 도움이 되실 것 같습니다.
조금 가벼워졌습니까. 부처님의 목소리를 들으신 게지요. 우리 안에 부처님도 예수님도 있다고 합니다. 공중에 떠 있는 운주사, 엄청나지요. 무엇보다 마음이 있어야 세상이 보이고 운주사도 보일 겝니다. 운주(雲住)는 액면대로 ‘구름 속에 머물다’라는 뜻이랍니다. ‘세존께서 구름 속에 머무르시며 설법을 하다’라는 의미이지요.
운주사에 가고 싶은 마음만 있어도 당신은 이미 구름 속에 머물고 있는 거랍니다. 주말 어느 때라도 한번 그 구름 속에서 부처님의 거룩한 가르침을 들어 보시지요. 그리고 세상사 고달픔에서 벗어나 잠시 마음속에서 천 개가 되도록 탑을 하나둘 세워 보지 않으시렵니까.
세상일이 꼭 운주사 이야기 같지요. 삶은 못 이룬 한바탕의 꿈인지 모릅니다. 누구나 마음이 답답해지면 찾아 나서는 곳이 운주사랍니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당신에게 운주사는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하지요. 누구나 운주사 창건에 대해 한마디씩 하지요, 운주사는 모르는 사람도 없지만 딱히 아는 사람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혹시 운주(雲住)가 무슨 뜻인지 모르시진 않으시지요. 천불동에 가고 계시다니, 당신도 아마 구름 속을 걷고 싶은 모양입니다.
이들은 주로 학자들입니다. 지식과 학문은 능통하지만, 중요한 불경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요. 그러니 본질에서 헛나갔던 것은 너무 당연하지요.
먼저 묘법연화경에 나오는 견보품탑을 보면 대요설 보살의 요청으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분신하시어 시방세계에 설법하는 모든 부처를 모이게 한 후 사부중과 함께 모두 허공에 있게 하신 후, 허공에서 묘법연화경을 설하는 공중 법회를 엽니다. 운주사는 바로 그 공중의 장면을 지상에 재현해 놓은 것입니다. 운주사 보배탑에는 석가여래와 다보여래가 계시고 기타 부처들은 사부중을 뜻한답니다. 칠성바위의 배열 상태는 북두칠성을 기준으로 하여 우리와 반대가 되는 쪽에서 보는 북두칠성으로 이는 천불천탑 공간이 지상이 아니라 하늘, 곧 공중에 있음을 나타내기 위함이지요. 또 공사바위는 한자를 달리하여 ‘공중의 운주사’의 준말로 운주사가 지상이 아니라 북두칠성보다 높은 하늘 허공중에 있음을 나타낸답니다.
실패탑 역시 하늘 천(天)자의 조형물로 원반형 석탑이 아니라 자형상의 조형물입지요. 그리고 그 누구도 풀지 못한 기하학적 문향에 대해서도 세존께 궁전을 받들어 올리는 대목의 화성유품을 근거로 하나하나 풀어내고 있습니다.
자! 운주사를 한 바퀴 돌아 나오시나요. 집안 대대로 불심이 깊은 박춘기 선생님의 ‘내가 보는 운주사 와불이 사라진다’의 극히 일부 이론만 소개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고 운주사의 궁금증이 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저는 믿지만 당신은 믿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이 책을 일독하시면 많이 도움이 되실 것 같습니다.
조금 가벼워졌습니까. 부처님의 목소리를 들으신 게지요. 우리 안에 부처님도 예수님도 있다고 합니다. 공중에 떠 있는 운주사, 엄청나지요. 무엇보다 마음이 있어야 세상이 보이고 운주사도 보일 겝니다. 운주(雲住)는 액면대로 ‘구름 속에 머물다’라는 뜻이랍니다. ‘세존께서 구름 속에 머무르시며 설법을 하다’라는 의미이지요.
운주사에 가고 싶은 마음만 있어도 당신은 이미 구름 속에 머물고 있는 거랍니다. 주말 어느 때라도 한번 그 구름 속에서 부처님의 거룩한 가르침을 들어 보시지요. 그리고 세상사 고달픔에서 벗어나 잠시 마음속에서 천 개가 되도록 탑을 하나둘 세워 보지 않으시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