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환상전’ 냉장고, 우리 삶을 어떻게 바꿨나
2021년 08월 04일(수) 22:30
9월 26일까지 ACC 복합문화관
효율성 이면의 무분별한 소비·음식문화 등 조명

다양한 음식으로 가득한 냉장고.

연일 무더위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 폭염이 지속되면서 ‘시원한 것’에 대한 갈증, 집착 또한 강렬해진다. 시원한 커피 한 잔, 냉 콩국수, 달달한 수박화채와 같은 음식이 댕긴다. 이러한 음식들의 공통분모는 무엇일까? 바로 ‘냉장고’다.

여름이라는 계절과 가장 밀접한 사물을 꼽는다면 아마도 냉장고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처음 냉장고를 접했던 어른들은 ‘경물’(敬物)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집에서 모시는 귀한 제품이었던 셈이다. 냉장고는 등장 이래 제품 자체 거부감보다는 환상과 기대를 심어줬다. 지금은 이색적인 디자인과 컬러풀한 색상 등 다양한 형태의 냉장고가 출시되지만,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백색에 네모진 형태의 냉장고가 주를 이뤘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과 함께 냉장고의 변신 또한 변화무쌍하다.

냉장고는 우리 삶을 어떻게 바꿨는지를 조명하는 전시가 열리고 있어 눈길을 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전당장 직무대리 최원일)은 오는 9월 26일까지 복합문화관 3·4관에서 ‘냉장고 환상’을 주제로 기획전을 열고 있다. 특히 이번 전시는 아시아문화연구소가 지난 3년여 동안 연구, 수집한 자료를 다채로운 시각예술화 했다는 점에서 눈에 띈다.

‘냉장고 환상’은 그동안 우리가 인식하지 못했던, 편리와 효율성 탓에 잃어버린 중요한 무엇이 있음을 전제한다. 인구 증가, 자원고갈, 기후변화 등 위기와 맞물린 상황에서 냉장고에 의존한 식품 보관과 유통, 소비가 지속 가능할까, 라는 의문이 남는다. 이번 전시는 그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차가움을 다루는 인류 역사와 냉장의 진화, 음식과 생활문화 변천사 등을 조망한다.

전시장에서 가장 먼저 마주하는 부분은 ‘차가움의 연대기’다. 얼음과 냉장고와 관련된 정보와 지식, 이야기를 연표에 따라 구성했다. 얼음을 이용한 식재료 보관부터 냉각 기술의 발달 등이 일목요연하게 배치돼 있다.

‘차가움의 연대기’ 앞 전시장에서는 초창기 다양한 형태의 냉장고를 볼 수 있다. 일제시대 사용한 나무형태의 냉장고는 백색 바탕의 냉장고에 익숙한 이들에게 낯설게 다가온다. 나무 질감이 주는 거칠고 딱딱한 느낌은 차가우면서도 매끄러운 얼음과 사뭇 대조를 이룬다.

바로 옆에는 얼음을 모티브로 중국 준양 작가가 지난 2018년 11월 진행한 프로젝트가 소개돼 있다. 준양 작가는 고대 중국에서 겨울 동안 얼음 덩어리를 땅에 묻었다가 여름에 아이스크림으로 먹었다는 전설에 흥미를 느꼈다. 작가는 1㎥ 크기의 얼음 덩어리를 오스트리아 조각 공원 둑에 묻은 후 2019년 5월 19일 조각 공원 봄 축제를 맞아 얼음을 다시 꺼냈다. 이 프로젝트는 2020년 독일 빌라 메르켈 아트센터에서 재연됐으며 작가는 프로젝트 연계로 동화책을 만들었다.

일제시대에 나온 냉장고.
다음 전시장 주제는 ‘당신의 냉장고를 열어라’. 냉장고 이면에 드리워진 다양한 문제와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다. 종갓집, 청년 세대, 무연고자, 다문화 가정의 냉장고 이야기 등을 소재로 한 아시아문화연구소의 칼럼을 만난다. 냉장고를 바라보는 동시대 예술가들의 관점과 시각도 공유된다.

다음 전시장은 ‘거대한 냉장고 작은 세계’로, 이곳에선 냉장고와 음식을 둘러싼 다양한 문제와 쟁점을 다룬다. 냉동, 냉장 기술이 가져온 식품의 대량 생산과 유통, 무분별한 식재료 소비에 대한 폐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냉장고 없는 부엌’을 생각할 수 없을까? 대체로 사람들은 식재료 고유의 특성과 무관하게 냉장고에 보관하면 안전할 것이라 착각한다. 하지만 냉장고에 의존할수록 식재료 보존 정보나 과거로부터 내려온 일상적인 지식을 망각하게 된다.

마지막 전시장에서는 식재료 특성에 맞는 연구와 전통 지식을 활용한 식품 보관법, 식품 보관과 저장에 대한 실천 사례 등을 제시한다. 오랜 저장법인 발효와 연관된 자료, 작품 등을 만나는 재미도 쏠쏠하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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