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 끈을 매는 당신에게
2021년 07월 26일(월) 06:00

박용수 광주동신고 교사·수필가

혹시 신발 끈을 매고 계시나요. 무작정 매지는 않겠지요. 오늘은 어디로 정하셨나요. 약속도 없이 나서는 길은 아니시온지요.

거울 앞에서 서성거린 적이 있습니다. 유리창 앞에서 멍하니 서서 어디 갈까 망설여 본 적이 저도 있답니다. 눈과 비 때문에 바람 때문에 망설인 것이 아니라 그냥 그렇게 망설였답니다. 그것도 자주 말입니다.

오늘은 누굴 만날까 그리운 이를 그려보지요. 반겨줄 누군가, 말을 걸어올 누군가가 있다면 천 리 길도 마다하지 않겠는데, 이리저리 그이를 찾아 보지요. 무엇이 그리 바쁜지 만나자는 사람은 없고, 그래서 망설여지나요. 그래요, 그리운 이가 보고 싶으면, 때론 그 골목길을 그 대문 앞을 빙빙 돌아보다 돌아온 적이 있으시지요. ‘무담시’ 생전 그가 자주 다니는 장소에 가서 서성거리기도 하지요.

어디 봄이 그리 쉬 오던가요. 거기 가서 국밥 한 그릇 해야지, 산책도 해야지. 그 언덕에 무슨 꽃이 필 때지 하고 경험이 쌓이면 조금씩 홀로 사는 법을 터득해 가지요. 혼자가 아닌 홀로, 그러면서 발맘발맘 내공을 쌓는 게지요.

겨우내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눈보라가 긋고, 소나기가 멈추기를 기다리고, 그렇게 견뎌 내는 게지요. 그냥 피는 꽃이 어디 있던가요.

늘 유리창 앞에 서면 생각이 많아지지요. 하모니카를 불어 보거나 뜬금없이 책을 읽거나 무얼 만들어 보기도 하지요. 내가 잘못 살았나, 왜 살지? 자신에게 가혹한 채찍을 가할 때도 있지요. 하지만 어디 그걸로 해소되던가요. 자신을 돌아보는 일처럼 값진 일도 없지만, 과유불급, 지나침은 아니함만 못하답니다.

창문 밖 풍경을 오래도록 보고 있으면, 그렇게 기다리고 견디다 보면, 어느 순간 안으로 가슴으로, 무언가가 자연스럽게 흘러든답니다. 꽃이 조용히 피어나듯, 과육이 안으로 익어가듯 혼자 사는 법, 세상을 읽는 내면의 눈을 뜨는 게지요.

신발 끈을 어느 정도 매셨는지요. 또 누가 자식 자랑하던가요. 캐나다도 가고 호주도 가고들 했다고요. 아들 내외가 불러서 친척이 불러서 갔다 왔다고 자랑하지만, 그것 역시 헛헛함의 표시라는 걸 잘 아시잖아요. 어디 그것으로 채워질 마음이라면 우주선을 타고 달나라라도 갔겠지요.

바다보다 넓고 하늘보다 높은 것, 인간의 공허감과 허전함이라는 빈 가슴이지요. 그러니 그런 걸로 채워질 것이 아니라는 걸 잘 아시잖아요. 그러니 아셨지요, 눈치채셨지요. 채우기보다 마음을 좁혀보세요. 내려놓아 보세요. 낮게 좁고 아래로 말입니다. 당신은 지금 아주 행복하고 충분히 부자라고 속삭여주세요. 지금도 젊고 여전히 잘살고 있다고 말입니다.

‘4촌(村) 3도(都)’라는 신조어 잘 아시고 계시지요. 저는 ‘4생(生) 3무(無)’로 살아갑니다. 제 생각이니 사전에는 당연히 없지요. 4일은 생물과 지내고, 3일은 무생물과 논답니다. 3일 동안 산이나 들판을 걸어보세요, 사람이 그리워진답니다. 4일간만 사람과 어울려 보세요, 자연이 소중해진답니다. 그렇게 자연 속으로 사람 속으로 안겨 보세요, 아주 낮게 아래로 말입니다.

멀리 갈 필요도 높이 볼 필요도 없지요. 다리도 아프고 눈도 좋지 않고, 그래서 낮게 가깝게 보는 연습을 한답니다. 작은 것들 속에서 우주를 보는 것은 선물입니다. 발견하고 느끼고 깨닫는 시간, 노년에 얻은 두 번째 시각인 마음의 눈이지요. 두 번째 태어나 세상을 보는 내면의 세계, 사유의 세계이지요.

바빠서 내가 잘나서 놓쳤던 것들,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젊음이 빠져나간 틈새로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지요, 경쟁하며 살다 보면 결코 볼 수 없는 것들 말입니다. 이제 작은 것에 스며들어 보세요. 물결이 돌 밑으로 스미듯이, 나무뿌리가 바위 밑으로 웅크리듯이, 염색이 천에 스며들 듯이, 봉숭아 물이 손톱에 물들 듯이, 바람이 문틈으로 들락거리듯이 자연스럽게 낮은 곳으로 배어들어 보세요. 사랑이란 물병은 꼭 챙기고 말입니다.

오늘 당신은 어디로 걷고 있는지요. 약속도 없이 ‘멜갑시’ 나서는 길은 아니시온지요.

거울 앞에서 서성거린 적이 있습니다. 유리창 앞에서 멍하니 서서 어디 갈까 망설여본 적이 있답니다. 자주 그것도 오래 말입니다. 그러니 갈 곳 없이 신발 끈을 매는 이는 바로 나를 가리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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