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예술제 최고상] 산문-하늘나라로 간 콜린 [이서우 <월광기독학교 5학년>]
2021년 07월 22일(목) 21:15 가가
나는 태어난지 한달이 지나고 할아버지가 사시는 고흥으로 내려가 7년을 살았다.
아빠 엄마의 일 때문에 그런것도 있었고 내가 아토피가 심해 공기 좋은 곳에서 할아버지가 키우고 싶으셔서 나를 맡아 키우셨다.
내가 살던 시골 집은 산으로 빙 둘러싸여 있고 아침이면 새소리가 들리고 대나무 바람소리도 들리는 그런 곳이다.
내가 광주에서 태어나서 고흥으로 내려간 날. 딱 한 달이 지나 우리 집에 콜린이 왔다 보더콜리, 양치기 개로 유명한 영리한 개다. 이름은 비슷하게 ‘콜린’이라고 내가 지어 줬다.
콜린은 거의 나와 함께였다. 할아버지와 내가 운동을 갈 때면 콜린은 항상 우리 앞을 달려가다가도 뒤를 보며 기다렸다가 또 달렸다. 우리 집이 마을과 떨어져 있어 할아버지가 늦게 들어오실 때면 현관문 앞에서 할머니와 나를 지켜줬다. 그래서 난 무섭지 않았다.
이렇게 난 콜린과 7년을 함께하며 추억을 쌓았다. 초등학교 입학을 위해 광주로 올라온 날, 할아버지와 헤어진것도 슬펐지만 우리 콜린과 헤어지는게 너무 슬펐다. ‘혹시 나를 잊어 버리면 어떡하지?’ 걱정도 되었다. 헤어질 때 꼬리를 흔들며 나를 보던 콜린의 눈빛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광주로 올라 와 학교를 다니며 난 방학이 시작되면 바로 시골로 내려 갔다. 영리한 콜린은 나를 잊지 않았다. 여름방학 때 고흥에 태풍이 몰아쳐 콜린과 대피해 콜린과 하루를 같은 공간에서 잤던 기억도 생생하다. 콜린은 그때 잔뜩 겁을 먹었었다. 할머니 몰래 참치 통조림을 주다가 걸려 혼나고 구운 생선을 통째로 갖다 줘서 혼나고 겨울엔 내 이불을 몰래 갖다줘서 할아버지가 콜린집을 따뜻하게 다시 지어줬다. 이렇게 난 방학이면 고흥으로 내려가 콜린과 함께했다.
어느 날 삼촌이 불쌍한 개 한 마리를 데리고 왔다. 못 먹어서 삐쩍 말라 있었다. 주인이 없이 버려진 개였다. 할아버지는 나에게 콜린이 또다른 가족이 생겨 심심하지 않겠다며 콜린 옆에 집을 지어줬다. 역시 내가 이름을 지었다. ‘또리’였다. 또리와 콜린은 함께 잠을 자고 함께 밥도 먹었다. 방학이 끝나고 광주로 올라와도 이제 콜린이 외롭지 않을 것 같아 다행이었다.
5학년, 할머니 생신을 맞아 방학이 아닌데도 시골을 가게 됐다. 평상시와 다르게 콜린이 힘이 없었다. 할아버지는 콜린이 나이가 들어서 그런다고 했다. 설상가상으로 또리가 아프기 시작하더니 광주 동물병원으로 가게 됐다. 난 삼촌에게 꼭 또리를 살려 주라고 했다. 하지만 우리 집 근처에 사는 시골 동네 어른들은 안락사를 시켜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삼촌은 광주에서 또리를 수술시켜 순천으로 옮겨 입원을 시켰다. 우리 콜린도 안절부절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삼촌에게 꼭 또리를 살려달라고 말하고 광주로 왔다. 다행히 삼촌에게 동영상이 하나 왔다. 털이 다 깎여있는 또리였지만 다시 건강해진 또리였다. 그런데 또리 옆에 있어야 할 콜린이 영상에 보이지 않았다.
“삼촌, 콜린 어디 있어요?” 삼촌은 대답이 없었다. 난 할아버지께 전화했다.
“할아버지 콜린이 안 보여요. 사진 찍어서 보내 주세요”
할아버지는 갑자기 콜린도 병원에 있다며 말을 얼버무셨다. 난 할머니께 전화했다. 할머니는……콜린이 나이가 많이 먹어 편안하게 하늘나라로 갔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나랑 자주 갔던 산책로 옆에 콜린을 묻어 주었다고 했다. 난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눈물이 계속 났다.
우리 콜린이 또리를 살려주고 자기가 죽은 것만 같았다. 2021년 6월 27일이 콜린을 마지막으로 본것이었다. 처음으로 알았다. 이별이 이렇게 슬픈것인줄……
나의 모든 사진 속에 함께 한 우리 콜린!
콜린아! 그동안 내가 없을 때
할아버지, 할머니 지켜줘서 고마워!
콜린아! 엄마 없이 내가 시골에서 외로웠을 때 내 곁에서 친구해 줘서 고마워!
콜린아! 우리 가족으로 살아줘서 고마워 사랑해!
난 지금도 눈물이 많이 난다.
아빠 엄마의 일 때문에 그런것도 있었고 내가 아토피가 심해 공기 좋은 곳에서 할아버지가 키우고 싶으셔서 나를 맡아 키우셨다.
내가 살던 시골 집은 산으로 빙 둘러싸여 있고 아침이면 새소리가 들리고 대나무 바람소리도 들리는 그런 곳이다.
콜린은 거의 나와 함께였다. 할아버지와 내가 운동을 갈 때면 콜린은 항상 우리 앞을 달려가다가도 뒤를 보며 기다렸다가 또 달렸다. 우리 집이 마을과 떨어져 있어 할아버지가 늦게 들어오실 때면 현관문 앞에서 할머니와 나를 지켜줬다. 그래서 난 무섭지 않았다.
어느 날 삼촌이 불쌍한 개 한 마리를 데리고 왔다. 못 먹어서 삐쩍 말라 있었다. 주인이 없이 버려진 개였다. 할아버지는 나에게 콜린이 또다른 가족이 생겨 심심하지 않겠다며 콜린 옆에 집을 지어줬다. 역시 내가 이름을 지었다. ‘또리’였다. 또리와 콜린은 함께 잠을 자고 함께 밥도 먹었다. 방학이 끝나고 광주로 올라와도 이제 콜린이 외롭지 않을 것 같아 다행이었다.
5학년, 할머니 생신을 맞아 방학이 아닌데도 시골을 가게 됐다. 평상시와 다르게 콜린이 힘이 없었다. 할아버지는 콜린이 나이가 들어서 그런다고 했다. 설상가상으로 또리가 아프기 시작하더니 광주 동물병원으로 가게 됐다. 난 삼촌에게 꼭 또리를 살려 주라고 했다. 하지만 우리 집 근처에 사는 시골 동네 어른들은 안락사를 시켜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삼촌은 광주에서 또리를 수술시켜 순천으로 옮겨 입원을 시켰다. 우리 콜린도 안절부절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삼촌에게 꼭 또리를 살려달라고 말하고 광주로 왔다. 다행히 삼촌에게 동영상이 하나 왔다. 털이 다 깎여있는 또리였지만 다시 건강해진 또리였다. 그런데 또리 옆에 있어야 할 콜린이 영상에 보이지 않았다.
“삼촌, 콜린 어디 있어요?” 삼촌은 대답이 없었다. 난 할아버지께 전화했다.
“할아버지 콜린이 안 보여요. 사진 찍어서 보내 주세요”
할아버지는 갑자기 콜린도 병원에 있다며 말을 얼버무셨다. 난 할머니께 전화했다. 할머니는……콜린이 나이가 많이 먹어 편안하게 하늘나라로 갔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나랑 자주 갔던 산책로 옆에 콜린을 묻어 주었다고 했다. 난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눈물이 계속 났다.
우리 콜린이 또리를 살려주고 자기가 죽은 것만 같았다. 2021년 6월 27일이 콜린을 마지막으로 본것이었다. 처음으로 알았다. 이별이 이렇게 슬픈것인줄……
나의 모든 사진 속에 함께 한 우리 콜린!
콜린아! 그동안 내가 없을 때
할아버지, 할머니 지켜줘서 고마워!
콜린아! 엄마 없이 내가 시골에서 외로웠을 때 내 곁에서 친구해 줘서 고마워!
콜린아! 우리 가족으로 살아줘서 고마워 사랑해!
난 지금도 눈물이 많이 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