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은 당신에게
2021년 06월 15일(화) 05:00
옆 좌석 아주머니가 너무 목소리가 크다고 핀잔을 준다. 술집을 나오는데 어처구니없이 친구는 그 아주머니 편을 든다. 오랜만에 만나서인지 헤어진 기간의 틈새가 크다. 고샅에서 마주친 이웃이 모른 척한다. 마스크 좀 제대로 쓰라고 아들이 투덜댄다. 이웃도 아들도 참 우습고 서운하다.

이야기 도중 침이 튄 모양이다. 딸이 화들짝 놀라 물러서며 정색을 한다. 바람 좀 쐬려고, 바지를 꺼내 입는데, 아내는 내 배를 한심한 듯 보며 운동 좀 하란다. 툭 불거진 올챙이배를 자랑스럽게 보던 어머니의 눈길과 정반대다. 딸과 아내에게서 상처를 받는다.

좋게 말하면 될 텐데, 비꼬는 표정이나 비아냥거리는 말을 들으면 속이 상한다. 뻔히 내 편이라고 여겼는데, 냉정히 거리를 둘 때도 마찬가지다. 잘못을 되돌아보기보다 억울하고, 부끄럽기보다 화부터 난다.

상처는 주로 가까운 친구나 친척 그리고 가족이나 이웃에게서 받는다. 과민 반응하거나 가시 돋친 말에 커다란 상처를 받는다. 그 많던 참을성이나 아량은 사라지고 표정부터 일그러진다. 화풀이라도 하고 나면 괜찮아지련만 참고 있으려니, 부아가 치밀고 심지어 죽을 만큼 아프다.

대부분 작은 일에서 시작되고, 사소한 표정이나 말로 상처를 입는다. 거친 말과 얄미운 표정은 상대방을 날카롭게 후벼 낸다. 친할수록 가까울수록 상처는 깊고 더 아프다.

그래서 한동안 정신을 잃고 있다가 안정을 찾으면 더욱 큰 배신감이 생긴다. 때로는 앙갚음을 계획한다. 철저한 복수, 단단한 보복을 결심한다. 상처는 또 다른 상처를 만들고, 복수라는 이름으로 더 큰 상처를 낳는다.

심지어 자신에게 주기도 한다. 못났느니, 한심하다느니, 죽어야 한다느니 하는 독백은 자신에게 주는 상처이자 자신이 받은 상처이다.

삶에서 상처는 옷과 같아서 사람에 따라 훌훌 털고 벗어 버리기도 하고 단단히 조여 입기도 한다. 사람에 따라 화를 내며 분노하며 살아가는 이도 있고, 어느 정도 저항력이 생겨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이도 있다. 상처를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자기 발전의 계기로 삼아 성숙해지는 이도 있다.

상처에 맞서 싸우려면 먼저 운동량을 늘려 게으른 뱃살을 빼야 한다. 병균에 맞서는 항체를 만들려면 부정적인 시각이나 태도를 버리고 긍정적인 근육과 체중을 늘려야 한다. 무엇보다 웃음을 잃지 않고 낙관적인 태도로 세상을 살아가는 자세가 중요하다. 또한 정체되지 않게 끊임없이 변화 발전하는 삶을 택해야 한다. 썩느냐 새살이 되느냐의 전환점은 정체와 변화 사이에 있다. 자신을 바꿔야 새살이 돋고, 새살을 얻는 사람은 성숙해진다.

상처는 까맣게 탄 숯과 같다. 나무가 타고 남으면 숯이 된다. 한번 탄 숯은 요란하게 불꽃을 내지 않고 누구를 데지 않고도 은은하게 탄다. 글을 쓴다는 것도 오래전 흉터를 통해 과거의 통증을 기억해 내는 것, 그것을 끄집어내거나 상처를 다시 파내서 살이 되는 과정을 되살펴 보는 일이다. 작가는 상처를 현미경으로 예민하게 관찰하여 그 상처가 살이 될, 치료제를 제조하는 이들이다.

노인이 되면 면역력이 강해진다. 그래서 여간해서 상처가 생기지 않는다. 그만큼 견디는 힘이 강해진 것이다. 마을 노인들을 보면 누구나 자매 같고 형제 같다. 상처를 주고받다가 어느 연륜에 이르러서 상처 대신에 사랑을 주고받는 삶으로 전환한 이들, 그래서 행동도 비슷해지고 생김새도 닮아 버린 이들이다. 상처가 완숙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고받았고 그 상처와 싸웠겠는가.

사랑은 그냥 피지 않는다. 세찬 비바람과 눈보라를 견디고 꽃이 피듯 사랑의 꽃도 그렇게 혈흔이 낭자한 상처 위에서 핀다. 그래서 찬란하고 그래야 향기롭다.



/박용수 광주 동신고 교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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