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봄날의 약속’
2021년 05월 24일(월) 04:10

박용수 수필가·광주 동신고 교사

5월 하늘을 바라보며 가슴을 펴고 마음껏 웃고 싶다. 산천은 여전히 너무 맑고 푸르러 크게 한번 목청껏 울고 싶어지는 5월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 사랑해야 할 것, 꼭 지켜야 할 것, 받아내야 할 것과 바쳐야 할 것이 분명한 5월.

5·18민주화운동 41주년 기념 공연, ‘2021 애꾸눈 광대-어느 봄날의 약속’은 41년 전 봄날 이야기다. 아니 남아 있는 자들이 누군가에게는 꼭 받아내야 하고, 또 다른 이에겐 반드시 지키고 바쳐야 할 이야기다. 80년 5월 전남도청에서 가난하고 순수한 고등학생과 젊은이들이 왜 군부에 맞서 싸웠고 어떻게 장렬하게 스러져 갔는가를 보여 준다. 눈보다 더 희고 꽃보다 더 붉은 이들의 고결한 정신과 뜨거운 사랑을 그리고 있다.

시시각각 계엄군이 조여 오는 극한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의연하게 맞서 싸우는 그들의 신념과 용기를 통해 그들은 왜 그곳에서 최후까지 남을 수밖에 없었고, 더불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게 해 준다.

후반부는 최후 항쟁지였던 전남도청 지하실의 다이너마이트와 관련된 문용동 전도사, 고등학생 시민군 안종팔·문재학 군 이야기를 통해 시민군들의 고뇌와 사랑을 담아내고 있다.

의견의 차이는 있어도 싸울 때는 분명했던 그들이 마지막 항쟁 직전 다짐한 약속, 최후의 보루 도청을 지키다가 죽으면 혼으로나마 돌아와 서로 만나자는 약속은, 어찌 보면 빚진 우리들에게 잊지 말아야 할 약속은 아니겠느냐고 되묻는 것 같다.

“폭도들에게 알린다. 너희들은 완전히 포위됐다. 투항하라. 투항하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투항하라.”

탱크와 헬리콥터, M60 기관총으로 무장한 특수 훈련을 받은 특전사, 공수부대원들의 협박에도 의연히 맞설 수 있는 정신과 용기.

“시민 여러분,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우리를 잊지 말아 주세요. 우리를, 우리를 절대 잊지 말아 주세요.”

그들과 맞서 끝까지 싸울 수 있었던 힘은 잊히지 않으리라는, 역사는 끝내 기억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5월이 되면 되살아난다. 건물에서 나무에서 도로에서 벽에서 땅과 하늘에서 되살아나는 것들, 그럼에도 우린 깜빡깜빡 잊고 살아간다. 잊고 살아갈수록 우린 더 많은 빚을 지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5월, 치열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상황에서도 연극을 관통하고 있는 핵심은 사랑이다. 화염과 총성이 난무하는 절박한 상황 속에서 삶보다 정의를, 분노보다 사랑을 선택하며 살아간 광주 사람들 이야기, 작은 영웅들의 이야기다.

5·18 때 전남도청을 지키다 붙잡혀 고문 후유증으로 숨진 김영철 열사의 딸 연우 씨의 죽은 자를 다시 불러내는 장면에서의 안무는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고 서늘하다.

망월 묘지에 가면 그들이 이웃처럼 가족처럼 안장되어 있다. 우리들이 꿈꾸는 세상은 아직도 멀고 멀었다. 짐승보다 못한 전두환과 그 잔당들이 사죄하고 용서를 빌 용기조차 없이 비굴하게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훌쩍 41년이 지나가고 있다. 아마 그들 모습이 잊히는 게 두려운가 보다. 애꾸눈 광대는 그들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여태 외눈으로 이 빚을, 이 삶을 붙잡고 있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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