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은유
2021년 05월 03일(월) 03:00

박용수 광주동신고 교사

인생은 꽃길만이 아니지만, 정글도 아니다. 평지를 지나 산을 넘고 또다시 들판을 만나듯이 우리는 그렇게 미지의 세상을 자기 방식대로 건너고 있다. 봄과 여름의 싱그러움과 울창함, 가을 단풍과 설백의 겨울을 만끽하기도 하고, 사람들과 사랑을 나누며 상처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살아간다.

누구에게나 삶은 하루하루 신비로움의 연속이다. 그러나 그 일상이 순탄하기만 하면 신비로움도 반감될 것이다. 세상은 호기심 가득한 곳이지만 동시에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어서, 정글 속 비경에 빠져 있는 동안 뜻하지 않게 맹수를 만나고 지뢰를 밟기도 한다. 그런데도 앞으로 나아가는 자에게만 세상은 새로움을 보여주고 더 큰 호기심을 만나게 한다. 도전하고 나아가는 사람만이 자기 내면에 자신만의 진한 무늬를 새겨 넣을 수 있는 것이다.

탐험은 신비롭지만, 모험은 위험하기에 살면서 앞서 살아간 선각자들의 도움을 받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들이 곳곳에 남긴 삶의 지도, 어두운 동굴 속 횃불과 같은 망망대해에서 필요한 지도가 바로 삶을 응축한 은유이다.

‘소년이여 야망을 품어라.’ 그다지 믿지 않았지만 돌이켜 보면 그 시절 꾸었던 꿈으로 인해 지금의 내가 이곳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 때론 가난이, 때론 좌절이 꿈을 포기하거나 변경하라고 했을지라도 대부분 내가 선택해서 발을 들여놓은 곳에 내가 지금 있는 것이다.

‘사랑은 차가운 유혹, 눈물의 씨앗’과 같은 노래 가사는 사춘기를 넘는데 징검다리처럼 유용했다. 실연당해 절망에 빠졌을 때, 나를 다음 돌다리로 건널 수 있게 해준 은유는 콕 찌르는 직유와 달리 곡선적이고 여성적이어서 부드럽고 잔잔하게 내 등을 토닥여 주었다.

‘삶의 지혜는 종종 듣는 데서 비롯되고, 삶의 후회는 말하는 데서 비롯된다.’ 말은 마음의 소리여서, 말 한마디가 그 사람의 품성을 드러낸다. ‘품성이 말하고 품성이 듣는다’는 구절에 무릎을 절로 친다. 말로 실수를 하여 곤욕을 치른 다음에는 신중하게 말해야겠다는 은유로 되돌아본다.

‘스물에 게을러지지 않으려면 부모를 떠나야 하고, 마흔에 미련해지지 않으려면 부모를 떠나야 한다.’ 진정한 자립이 무엇인지 나를 후려친 은유이다. 이후 난 홀로서기에 심혈을 기울였던 것 같다. 삼인성호나 토사구팽, 구밀복검과 같은 인간의 내면에 감춰진 비수를 보여주는 은유는 갑옷이나 방패로 내 몸을 보호해주기도 하였다.

중년이 되면 귀가 순해진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성내지 아니하면 또한 군자가 아닌가.(人不知而不온 不亦君子乎)’ 공자의 인생삼락에는 유유자적하게 세상을 사는 법이 들어있다.

우리가 직접 부딪히고 깨져 가며 체험하는 것이 직유라면, 누군가의 말을 참고하여 조심조심 삶을 건너는 것이 은유다. 그래서 은유는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고 타인의 생각을 수용하고 포용하는 아량이 있어야 내게 온다.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에 난다’는 말처럼 늙고 몸이 쇠해지면 지혜로워진다. 제행무상, 무소유, 앞 강물은 뒷 강물에 밀려난다는 은유를 통해 세상을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안목을 갖는다. 완도 해안가 공동묘지에 우뚝 세워진 공수래공수거를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진리이고 또 진리이다.

삶의 은유는 때론 책 속에서, 속담이나 노래 가사에서, 심지어는 화장실 낙서에도 있다. 요즘은 술집에 가면 벽면을 주시한다. 누군가의 명언을 옮겨 적은 것도 있지만 간혹 자신의 삶을 명징하게 응축해 놓은 구절을 만나면 보물을 찾을 때보다 기쁘다.

만사에 감사하라. 돌이켜보니 불평 많은 삶이었다. 힘겨운 삶도 감사하게 살아간다면 훨씬 덜 힘들고 더 행복할 것이다. 무사히 인생의 강을 건널 수 있도록 선지자들이 곳곳에 그려 놓은 암각화, 어디에서는 어떻게 통과하고 또 어느 곳에 이르러서는 어떻게 하라는 지도가 삶의 은유이다.

빵이나 밥은 아니지만, 이런 은유들을 깊숙이 이해하고 체화하면 삶은 더욱 풍성하고 윤택해진다.

현자들이 남긴 그리고 사람들의 입에 회자하는 문구는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이 드러나 있다. 그들은 떠났지만, 그들이 세상을 꿰뚫어 보는 날카로운 사유는 천년이 지나도 우리 곁에 살아 숨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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