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는
2021년 01월 01일(금) 06:00
지난해에는 전 세계가 코로나로 힘든 한 해를 보내야 했다. 사망자가 쏟아지자 기사 대신 ‘부고’ 알림만으로 면을 가득 채운 신문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뉴욕 타임즈가 지난 5월 미국의 코로나 사망자 10만 명 중 1천 명의 부고로 1면을 채웠던 것이다. 또 다른 신문은 코로나로 인해 스포츠 경기가 열리지 않자 스포츠 면을 하얗게 비운 ‘백지 편집’을 하기도 했다.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2017년 헌법재판소의 주문을 현대사 최고의 명문장으로 꼽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 모두 그 내용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문 편집 또한 마찬가지다. 절로 무릎을 탁 치게 하는 제목과 뉴스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레이아웃이 조화를 이룬 편집은 독자들의 기억에 오래 남는다. 지난해 최고의 편집으로 평가받는 ‘오늘도 3명이 퇴근하지 못했다’는 그 대표적인 예다.

2017년 탄핵 당시 ‘헌법, 대통령을 파면했다’, 2016년 총선 당일에 네 가지 총선 결과를 보여준 뒤 제시한 ‘내일 아침 어떤 신문을 받아보시겠습니까?’, 2015년 터키 해변에서 갈 곳 없는 시리아 난민 아이가 숨지자 ‘세살 아이 받아 준 곳 천국밖에 없었다’ 등도 종이신문의 존재 이유를 말해 주는 멋진 편집이다.

우리나라 조선업이 세계 1위라는 사실을 다섯 글자로 표현한 ‘조선은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약체 오만에 패했을 때 ‘오만이 아니라 자만에 졌다’, 맨홀 뚜껑 절도범이 기승을 부리자 ‘강철 심장 고철 도둑’ 등은 해학과 풍자가 넘치는 제목으로 10년 넘게 회자되고 있는 작품들이다. 2019년 한국이 U-20 월드컵에서 결승에 진출하자 골든볼 수상자 이강인의 이름을 활용해 만든 ‘2강 in’, 프로야구 정규 시즌에서 2위를 한 SK가 한국시리즈에서 두산을 꺾고 우승했을 때의 ‘SK 뒤집다 KS’ 등의 제목도 절묘한 언어의 조탁으로 빚어낸 탁월한 작품이다.

소크라테스·히포크라테스 등 수천 년 전의 철학자나 의학자를 불러내야 간신히 위안을 얻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우리는 지금 ‘테스 형’이 살았던 시대 사람들보다 행복한 것일까? 새해에는 멋진 편집으로 코로나에 지친 독자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하고 싶다.

/유제관 편집1부장 jkyou@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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