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호미술상’ 이의 있습니다
2020년 12월 30일(수) 08:00

박 진 현 제작국장·문화선임기자

지난 2016년 4월, 국내 미술계의 시선은 온통 강원도 양구군에 있는 박수근미술관으로 쏠렸다. 양구 출신 박수근(1914~1965년) 화백의 예술혼을 기리기 위해 제정한 ‘제1회 박수근미술상’ 수상자로 황재형(68) 화백이 선정됐기 때문이다. 당시 황 화백이 1회 수상자로 선정되자 미술계 전반에는 이를 반기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보성 출신으로 중앙대 미대를 졸업한 그는 1983년 별 인연이 없는, 물설고 낯선 태백시에 작업실을 마련했다. 대학 시절 견학 간 삼척탄광에서 광산 노동자들의 척박한 삶에 강렬한 인상을 받은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황 화백은 광부들이 짊어진 노동의 무게를 직접 느껴 보기 위해 탄광살이를 하기도 했다. 이후 ‘아버지의 자리’, ‘탄천의 노을’ 등 대표작들을 쏟아 냈다.

많은 미술인들이 부러워한 것은 그에게 제공된 수상 특전이었다. 상금 3천만 원과 상패뿐만 아니라 박수근미술관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두 차례 주어지는 수상작가전이 그것이다. 단지 의례적인 시상에 그치지 않고 대규모 전시회를 통해 수상자의 예술 세계를 다각도로 조명한다는 건 당사자에게는 상금보다도 훨씬 값진 선물일 터. 실제로 박수근미술관에서 열린 수상작가전은 무려 1년 가까이 열려 주말 연휴나 휴가철에는 전국에서 관람객들이 일부러 찾아올 정도였다.

사실, 박수근미술상이 탄생되는 데에는 치밀한 준비 작업이 있었다. 서민들의 애환을 따뜻한 인간애로 표현한 박 화백의 작품 세계를 기리는 취지에 맞게 양구군과 한국수자원공사 그리고 서울디자인재단 등이 수년간 머리를 맞대고 시상제 방식을 찾아 낸 것이다. 미술상 전체를 조율하는 운영위원회와 역량 있는 작가를 연구·발굴하는 추천위원회, 마지막으로 심사위원회를 거치는 3단계 심사는 현재 미술계에서 시상제의 좋은 전형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편 지난 11월3일 대구미술관에서는 ‘이인성미술상’ 운영 20주년을 기념하는 뜻깊은 전시회가 개막됐다. ‘위대한 서사’라는 제목으로 내년 1월까지 열리는 이 전시에는 광주 출신 황영성 화백을 비롯해 김종학·이강소·김구림·최병소·이상국·정종미 등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역대 수상자들의 작품이 선보이고 있다.

이인성미술상은 한국 근대 미술사에 큰 업적을 남긴 서양화가 이인성(1912~1950)의 숭고한 예술 정신을 기리고 한국 미술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지난 2000년 대구시가 제정한 상이다. 이 때문에 역대 수상자들은 당대 이 화백이 그랬던 것처럼 한국 근현대 미술사의 흐름 안에서 각 시대를 대변하며 그들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특징을 지닌다. 올해는 추천위원회의와 심사위원회 심사를 거쳐 제주의 강요배(68) 작가를 최종 수상자로 선정해 상금 5천만 원과 대구미술관 초대전 개최 특전을 제공했다. 국내 최고 수준의 상금과 엄격한 심사 영향 때문인지 매년 이인성미술상 공모에는 전국에서 많은 지원자들이 몰린다.

대구에 이인성미술상이 있다면 광주에는 ‘오지호미술상’이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광주와 대구에서 비슷한 시기에 왕성한 활동을 펼친 한국 서양화단의 거목을 기리는 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미술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다르다. 거장의 예술 정신과 미술인들의 창작 의욕을 고취하기 위한 ‘오지호미술상은 ‘이중섭미술상’(1988년 제정, 상금 1천만 원)에 이어 두 번째로 1992년 창설됐지만 40년이라는 ‘전통’에 비해 상(賞)의 위상이나 영향력은 갈수록 퇴색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광주시 사업을 광주예총이 주관하면서 ‘광주시 문화예술상’이라는 타이틀로 매년 국악·문학 등 다른 장르의 수상자와 함께 시상하다 보니 미술상의 ‘존재감’을 잘 살려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기부 행위를 금지하는 공직선거법 때문에 상금(1500만 원)이 중단되면서 현재는 상장(상패) 수여와 수상작가전 개최의 혜택만 제공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수상작가전 개최 혜택도 사실상 허울뿐이라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올해 선정된 ‘2020 광주시문화예술상’의 ‘오지호미술상’ 본상 수상자인 서양화가 양재형 씨의 경우만 봐도 그렇다. 단돈 400여 만 원(도록 제작 포함)의 비용으로 작가가 직접 전시장을 찾아내 일정 기간 안에 개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미술인들의 창작 의욕을 꺾는 ‘허울 좋은’ 수상작가전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것이다. 양구군과 대구시가 미술관의 큐레이팅으로 수상기념전을 기획해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물론 미술상의 위상이 상금과 부상의 많고 적음에 의해 결정되는 건 아닐 터이다. 하지만 오지호미술상이 국내 미술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높이고 수상자의 창작 의욕을 키우는 본래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선 상의 권위를 상징하는 실질적인 혜택이 수반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오지호미술상을 ‘광주문화예술상’에서 분리해 브랜드화하고 대구시처럼 공립미술관에게 운영을 맡겨 내실을 꾀할 필요가 있다.

마침 올해는 오지호(1905~1982) 화백이 태어난 지 115주년이 되는 해다. 한국 화단에 남긴 그의 ‘위대한 유산’이 빛을 잃지 않도록 지금부터 오지호미술상의 본질적인 의미와 가치를 되돌아봐야 할 때다. 그것은 곧 거장에 대한 예우이자 예향 광주의 미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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