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정원사
2020년 10월 06일(화) 00:00
A 교수는 오래전부터 꿈꿔 온 ‘제2의 인생’을 살기 위해 정년을 채우지 않고 60세 즈음에 교단을 떠났다. 퇴직 후 국도변의 문 닫은 건물 한 쪽을 빌려 개인 공간을 마련하고, 시민들과 고전을 함께 공부하는 모임을 꾸렸다. 책들로 가득한 내부 공간에는 은은한 다향(茶香)이 배어 있다. 그는 이곳을 찾아오는 이들에게 녹차를 대접한다. 새 잎이 돋는 봄에 참새 혓바닥 같은 찻잎을 채취한 뒤 손수 덖어 만든 차다.

40대의 B씨는 옥상을 개인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는 아파트 최상층에 일부러 입주했다. 그리고 그 옥상에 천체망원경을 설치했다. 밤하늘이 맑은 날이면 장비를 세팅한 뒤 성운과 성단을 장시간 촬영한다. 옥상에 마련된 개인 천문대가 있어 그는 언제든 맘만 먹으면 별을 볼 수 있게 됐다. 이전에는 퇴근 후 차량에 장비를 싣고 광주에서 1~2시간 떨어진 외진 곳을 찾아 나서야 했다. ‘아마추어 천문가’인 그는 그동안 촬영한 사진을 모아 조만간 천체 사진전을 열 계획이다.

추석 연휴 기간 동안에, 문요한 정신과전문의가 최근 펴낸 ‘오티움’(위즈덤하우스)을 읽었다. 저자는 라틴어 ‘오티움’(otium)에 대해 ‘내 영혼에 기쁨을 주는 능동적 여가 활동’”이라 설명하며 ‘나만의 오티움’을 찾으라고 강조한다. 책을 읽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가 활동으로 ‘녹차’와 ‘별’에 몰입하고 있는 A교수와 B씨가 떠올랐다.

한겨울을 견디고 움튼 찻잎과 수십~수백억 광년의 시공을 질러 온 별빛은 두 사람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오티움’일 것이다. 삼각돛에 바람을 가득 품은 요트를 직접 몰고 지구를 일주하거나 숲속에서 자연인처럼 주말을 보내는 일, 악기를 배워 연주하거나 자신이 디자인한 나무 공예품을 직접 만들어 보는 일 등등. 사람들은 누구나 저만의 ‘오티움’을 꿈꿀 것이다.

수년간 많은 사람을 만나 ‘오티움’을 살펴본 저자는 “그들에게 여가는 삶의 정원이었고 그들은 인생의 정원사였다”며 이렇게 말한다. “나는 당신도 삶의 정원에 좋아하는 꽃씨와 묘목을 심기를 바란다. 이 세상에 내가 길러낸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송기동 문화2부장 song@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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