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 단상
2020년 10월 05일(월) 00:00 가가
2000년대 초엽 남북 화해 무드 속에서 남측에 북한 가수들의 노래가 단편적으로 소개되었을 때, ‘트로트처럼 들린다’고 평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들에게 필자는 이렇게 반문하곤 했다. “한국인 전체의 음악 취향을 정확히 평균 낼 수 있다면 그 취향과 관련되는 음악이 어떤 장르일 것 같냐?”고. 그때나 지금이나 이 물음에 대한 답은 ‘트로트’다. 북한 음악이 트로트처럼 들렸다면, 그 이유 가운데 적어도 한 가지는 북한의 사회주의적 예술 정책 자체가 바로 ‘인민 취향의 평균’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당시 한국에서 음반 시장 5% 비중에 불과했던 음악 장르를 평균적 취향, 사실상 주류적 취향과 연결시켜 본 이유는 무엇일까?
음악 시장이 모든 계층의 음악 취향을 두루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음악 시장에서 음반 판매가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던 1990년대의 상황을 예로 들면 음악 시장은 음반 구매력이 있는 계층이나 세대를 타깃으로 움직였다. 당시의 주된 음반 구매층은 10대와 20대였고, 음악 시장과 연동된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방송 또한 그들의 취향을 반영하고 구매력을 자극하기 위한 무대로 기능했다. 음반이라는 매체가 유명무실해진 현재로서는 꿈같은 얘기지만, 이 시기에 신승훈이나 김건모, 서태지와 아이들 같은 인기 가수의 음반이 발매되면 기본적으로 수십만 장이 팔렸고 백만 장 판매고를 기록하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하지만 백만 장의 음반이 판매되었다 한들 그것이 사천만에서 오천만을 헤아리는 한국인들의 취향을 종합적으로 반영하는 것은 아닐 터.
주류 음반 시장의 수치로 잡히지 않는 음악 취향이 수면에 잠긴 빙산의 본체처럼 존재하고 있었다. 한편으로 음반 차트에 오르지 않는 수많은 ‘메들리 음반’의 무시 못할 판매량이 있었고, 고속도로 휴게소 등에서 거래되는 무수한 불법 복제 테이프들, 그리고 ‘행사 시장’이라고 불리는 크고 작은 라이브 무대들과 전국의 노래방에서 소비되는 노래들이 이러한 취향에 호소하고 있었다. 요컨대 뭉뚱그려 ‘트로트’로 셈할 수 있는 음악적 취향이 한국 대중 음악사에서 기본값으로(잠재적 대세로) 존재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시대적 상황에 따라 음악 시장이 그 취향에 좀 더 주목하기도 하고 외면하기도 했을 뿐.
그렇다면 최근의 ‘트로트 열풍’이라 할 만한 현상에 대해 우선적으로 던져야 할 질문은 왜 한국의 음악 시장이 현 시점에서 다시 트로트에 주목하는가 하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부분적 답변은 이미 제시된 듯하다. 음반 시장이 무력해짐에 따라 오늘날의 음악 시장은 음반 구매력이 있는 특정 세대나 계층에 호소할 필요가 없어졌다. 적응기가 있었지만 이제는 노년층들조차 SNS와 유튜브를 이용하여 공짜 음악을 들을 줄 안다. 사람들은 송가인의 앨범을 구입하기 위해 송가인의 노래를 듣는 것이 아니다. 대신 음악 시장에서 ‘행사 시장’에 해당하는 사적·공적(종종 지역 축제와 연계된) 라이브 무대의 비중이 매우 커졌다. ‘TV조선’의 오디션 프로그램 ‘내일은 미스트롯’의 사례에서 보듯 방송 미디어는 이러한 음악 시장 상황을 배경으로 가수 발굴에서 홍보나 매니지먼트에 이르기까지 전례 없는 독점적 권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이 점에서 ‘최근에는 젊은 층들도 트로트를 좋아하기 시작했다’는 식의 진단은 사실 여부를 떠나 부적절한 문제 설정에 입각해 있다.
오늘날의 젊은 세대들은 기술과 장인 정신에 대해 ‘리스펙’을 내보이는 일에 있어서 이전 세대들보다 편견이 없으며 일찍이 김연자의 ‘아모르 파티’나 홍진영의 ‘사랑의 배터리’처럼 ‘신박한’ 제목과 가사, 흥겨운 리듬의 음악에 호응해 줄 준비가 되어 있지만, 그것이 곧바로 트로트를 음악적 취향의 일부로 받아들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추석 연휴에 높은 시청률로 큰 화제를 일으킨 KBS의 ‘나훈아 음악회’에 대한 언론과 정치권의 뜨거운 반응에 고무된 나머지 젊은 층들까지 모두 ‘나사모’(나훈아를 사랑하는 모임)의 일원이 된 것처럼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나훈아의 추석맞이 대국민 메시지나 재론이 필요 없는 그의 가창력은 새삼 감동적이었지만, 그가 이번 음악회에 개런티를 받지 않고 출연하는 대신 가수의 공연권과 저작권에 대한 방송국의 권리 침해를 막겠다는 제스처를 보여주었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의 방식이 현실적인지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있지만, 방송국과의 관계에서 가수들의 자율성에 대한 좀 더 진지한 관심과 토론의 필요성을 시사한다는 점에서다.
그렇다면 최근의 ‘트로트 열풍’이라 할 만한 현상에 대해 우선적으로 던져야 할 질문은 왜 한국의 음악 시장이 현 시점에서 다시 트로트에 주목하는가 하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부분적 답변은 이미 제시된 듯하다. 음반 시장이 무력해짐에 따라 오늘날의 음악 시장은 음반 구매력이 있는 특정 세대나 계층에 호소할 필요가 없어졌다. 적응기가 있었지만 이제는 노년층들조차 SNS와 유튜브를 이용하여 공짜 음악을 들을 줄 안다. 사람들은 송가인의 앨범을 구입하기 위해 송가인의 노래를 듣는 것이 아니다. 대신 음악 시장에서 ‘행사 시장’에 해당하는 사적·공적(종종 지역 축제와 연계된) 라이브 무대의 비중이 매우 커졌다. ‘TV조선’의 오디션 프로그램 ‘내일은 미스트롯’의 사례에서 보듯 방송 미디어는 이러한 음악 시장 상황을 배경으로 가수 발굴에서 홍보나 매니지먼트에 이르기까지 전례 없는 독점적 권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이 점에서 ‘최근에는 젊은 층들도 트로트를 좋아하기 시작했다’는 식의 진단은 사실 여부를 떠나 부적절한 문제 설정에 입각해 있다.
오늘날의 젊은 세대들은 기술과 장인 정신에 대해 ‘리스펙’을 내보이는 일에 있어서 이전 세대들보다 편견이 없으며 일찍이 김연자의 ‘아모르 파티’나 홍진영의 ‘사랑의 배터리’처럼 ‘신박한’ 제목과 가사, 흥겨운 리듬의 음악에 호응해 줄 준비가 되어 있지만, 그것이 곧바로 트로트를 음악적 취향의 일부로 받아들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추석 연휴에 높은 시청률로 큰 화제를 일으킨 KBS의 ‘나훈아 음악회’에 대한 언론과 정치권의 뜨거운 반응에 고무된 나머지 젊은 층들까지 모두 ‘나사모’(나훈아를 사랑하는 모임)의 일원이 된 것처럼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나훈아의 추석맞이 대국민 메시지나 재론이 필요 없는 그의 가창력은 새삼 감동적이었지만, 그가 이번 음악회에 개런티를 받지 않고 출연하는 대신 가수의 공연권과 저작권에 대한 방송국의 권리 침해를 막겠다는 제스처를 보여주었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의 방식이 현실적인지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있지만, 방송국과의 관계에서 가수들의 자율성에 대한 좀 더 진지한 관심과 토론의 필요성을 시사한다는 점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