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를 빛낸 대표적 인물
2020년 09월 14일(월) 00:00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우석대 석좌교수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우석대 석좌교수

옛날의 책을 읽다 보면 새로운 내용들을 많이 알게 된다. 근래에 자주 읽는 책으로는 지봉 이수광(1563∼1628)의 ‘지봉유설’과 성호 이익(1681∼1763)의 ‘성호사설’이다. 모두가 알고 있겠지만 이 두 책이야말로 조선시대 ‘지식의 보고’에 해당되는 대표적인 책이다. 조선의 역사·학문·철학·문학·인물에 대한 지식에서 온갖 풍속이나 사물에 대한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가르쳐 주는 백과사전 같은 책인 셈이다.

‘성호사설’은 성호의 해박한 지식과 실사구시적인 논리가 가득 담겨 있는 책이다. 이 때문에 다산 정약용도 가장 좋아하여 즐겨 읽었으며, 그로 인해 다산은 성호의 학문을 계승하겠노라는 목표를 세우고 학문에 정진하여 조선 최고의 학자에 이를 수 있었다. 성호야 벼슬을 버리고 일생을 재야에 은거하며 학문에만 생을 걸었던 학자였으나, 지봉 이수광은 일찍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판서라는 높은 벼슬살이를 했던 관인 학자였으며 박학한 지식인이었다. 사신으로 중국에도 다녀와 견문도 넓었고, 책이라고는 읽지 않은 것이 없어 그의 높은 지식은 당할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더구나 이수광은 한때 3년 동안 전라도 순천부사라는 목민관 생활을 했던 인물이어서 서울 사람으로서는 비교적 전라도에 대하여 소상히 알고 있기도 했다.

순천의 옛날 이름은 ‘승평’(昇平)인데 이수광은 그곳에 있으면서 ‘승평지’(昇平誌)라는 순천의 역사와 문화를 제대로 밝혀 낸 귀중한 저서를 남기기도 하였다. 그런 이수광은 ‘지봉유설’에서 ‘인물’(人物)이라는 항목을 정해 놓고 조선의 대표적인 인물에 대한 자세한 기록을 남겼다. ‘인물’ 난의 작은 제목에는 ‘절의’(節義)라는 세부 조항을 두었는데, 그 조항에는 국란에 목숨을 바쳐 ‘절의’를 지킨 뛰어난 인물로 광주의 제봉 고경명을 거론하였다. “고경명의 호는 제봉이니 광주 출신이다. 임진왜란에 고향 집에 있었다. 여러 고을에서 왜구가 쳐들어왔다는 소문만으로 고을들이 무너진다는 말을 듣고, 비분강개한 마음이 일어나 원근 지역에 격문을 보내 의병을 모아 금산(錦山)에서 왜적과 싸우다가 패배하여 아들 고인후(高因厚)와 함께 전사했다(聚兵討錦山之賊 戰敗 與子因厚死焉)”라는 기록이 보인다. 이어 “큰아들 고종후(高從厚)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겠다고 맹세하고, 분연히 의병을 일으켜 진주(晉州)에서 왜적을 막다가 진주성이 함락되자 죽고 말았다. 아버지와 아들 세 사람이 모두 함께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두 번 있을 수 없는 일이니, 아아! 열사(烈士)다운 일이로다! (父子三人 同死國事 古今無二 嗚呼烈哉!)”라고 하면서 세상에 없는 높은 절의라고 칭송하였다.

참으로 짧고 간략하게 아버지와 두 아들이 함께 나랏일을 위해 목숨을 바친 찬란한 애국심을 의미 깊게 서술하였다. 한 집안에서 한 사람이 나라를 위해 죽어도 천하에 빛날 정의이고 의혼인데, 3부자가 함께 장렬한 죽음을 택했으니 그 얼마나 자랑스러운 애국자들인가. 나는 여러 차례 여러 곳에서 호남의 절의정신과 광주정신을 자랑스럽게 말할 때가 많다. 장흥고씨 3부자의 의병 정신과 애국심은 광주정신의 형성에 지대한 역할을 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고씨들은 광주를 중심으로 담양과 장흥 및 장성 등지에 모여 살면서 얼마나 많은 인재들을 배출했으며, 그들은 또 얼마나 투철한 애국심으로 나라를 지키고 고을을 빛나게 하는 데 역할을 담당했던가.

더구나 고경명은 왜적을 물리치려고 전투에 참가한 장군이기 이전에 문과에 장원급제한 당대의 수재였다. 게다가 학문도 높았지만 특히 시문학에 뛰어나 나라 전체에서도 크게 인정하던 대시인이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이수광 역시 다른 곳에서 고경명의 뛰어난 시를 많이 거론하면서 일세의 시인이었음을 강조하였다. 독재시대에 민족·민중 시인들이 시로써 독재에 항거했듯이, 대시인 고경명은 몸으로 왜적에 항거하다 목숨까지 바쳤으니 청사에 길이 빛날 일이다.

금산전투에서 아버지와 함께 목숨을 바친 고인후의 호는 학봉(鶴峯)이다. 그 후손들은 담양의 창평에 집성촌을 이루고 살아가는데, 학봉의 10대 종손(宗孫) 녹천 고광순은 한말 의병대장으로 왜놈들과 싸우다가 왜놈의 총탄에 쓰러진 탁월한 애국자였다. 뿌리 깊은 나무에 아름다운 열매가 맺듯, 제봉의 후손에 녹천 고광순이 있음은 더욱 빛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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