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와 생명
2020년 08월 31일(월) 00:00
광주 양림동 호남신학대학교와 이웃한 야트막한 동산에는 미국인 선교사 묘역이 있다. 구한말 기독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광주에 왔던 선교사와 그 가족들 유해가 묻힌 곳이다. 광주 지역 선교(宣敎)의 산파역이었던 유진 벨 선교사를 비롯해 의료 선교를 펼쳤던 오웬, 한센병 환자들의 어머니로 불렸던 셰핑 등 23명의 선교사들이 잠들어 있다.

19세기 말 양림동은 ‘풍장터’ ‘여시골’ ‘도깨비골’ 등으로 불렸다. 당시만 해도 풍장(風葬)의 풍습이 남아 있어, 광주읍성과 가까운 양림산은 시체를 나무에 걸어 육탈(肉脫)시키는 장례가 성행했다. 이 때문에 시신이 썩는 냄새가 진동하고 밤이면 날짐승과 여우들의 울음소리가 산자락을 뒤덮었다고 한다.

그런 죽음의 땅 양림동이 최근 근대 문화유산의 보물 창고로 바뀌었다. ‘광주의 예루살렘’이라는 종교적인 수사를 넘어 가장 뜨거운 문화의 중심지로 변모했다. 선교사들은 기독교 전파 외에도 의료와 봉사, 교육과 나눔을 통해 버려진 땅을 생명의 땅으로 만들었다. 그뿐 아니라 3·1 만세운동을 지원함으로써 우리가 국권을 되찾는 데도 일조했다.

코로나19 확산세가 거센 가운데 일부 교회가 방역 조치 거부 및 대면 예배 강행으로 몰매를 맞고 있다. 광주에서도 광화문 집회에 참석한 교인들이 검사를 미루거나 동선을 숨긴 탓에 집단 감염이 늘어났다. 기독교의 본질은 이웃의 생명을 살리고 복의 근원이 되는 데 있다. 양림동에 들어온 푸른 눈의 이방인들, 그들의 희생이 아름다운 건 자신을 버리고 가난하고 병든 이웃을 위해 헌신했기 때문이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는 말씀을 신행일치(信行一致)의 삶으로 보여 준 이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그러나 지금 일부 교회의 몰지각한 행태는 기독교가 바이러스 전파의 온상이라는 부정적인 여론을 확산시키고 있다. 현장 예배 강행은 죽어 가는 이웃의 고통에는 하등의 관심을 갖지 않는 ‘율법주의’ 신앙으로 보인다. 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는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유대인들과 제사장들, 그리고 교권주의자들 아니었던가.

/박성천 문화부 부장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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