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 위 사투 끝 쌍둥이 출산
2020년 08월 12일(수) 18:20
구례 양정마을 마취총 구조 암소
주인 “대견스럽다” 눈시울 붉혀

지난 11일 구례 양정마을에서 침수된 축사를 탈출해 지붕 위로 피신한 암소가 구조된 직후 송아지를 출산, 젖을 물리고 있다. <구례군 제공>

“뱃속 새끼를 살리려고 지붕에서 이틀동안 악착같이 버텼나봐요.”

지난 11일 구례군 구례읍 양정마을에서 침수된 축사를 사투 끝에 탈출해 지붕 위로 피신했던 6살 된 암소가 지붕 위에서 아무 것도 먹지 못한 채 이틀동안 버텼다가 출산, 쌍둥이를 품에 안았다.

지난 10일 하루종일 퍼부은 폭우로 인근 서시천이 범람하면서 축사에 물이 차오르자 어미 소는 축사를 탈출했다.

물길에 떠내려가며 버둥거리다 가까스로 지붕 위에 발이 닿았을 터였다. 두 마리의 새끼를 품고 있던 어미 소는 더는 떠내려가지 않으려 굳게 서서 매섭게 쏟아지는 비를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다.

비가 그치고 물이 빠질 때까지 꼬박 이틀간 먹이 한 줌, 물 한 모금 제대로 먹지 못하면서도 악착같이 버텨냈다.

비가 그치자 사람들이 몰려와 지붕 위에 함께 있던 다른 소를 구조하기 시작했지만 이 어미 소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의 손을 거부하며 끝까지 지붕 위를 지키려 해 구조대는 결국 마취 총을 쏴야 했다.

마취 약에 취해 밤새 몽롱해 하던 어미 소는 모두가 잠든 시각, 홀로 깨어나 그제야 두 마리의 새끼를 낳았다.지치고 힘든 몸으로 출산하느라 마지막 남은 힘까지 짜냈을 어미 소이지만 새끼 걱정에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했다.

잘 마른 건초가 놓인 축사 한쪽에 새끼가 웅크려 있자 무사한지 살펴보려는 듯 다가가 냄새를 맡아보거나 혀로 핥아주며 모성애를 드러냈다.

이 모습을 지켜본 주인 백남례(61) 씨는 안쓰러운 마음에 눈시울을 붉혔다. 백 씨는 “이 녀석이 지붕 위에서 얼마나 힘들었을지 생각하면 너무 안쓰럽다”며 “살아 돌아와 준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쌍둥이까지 무사히 출산하다니 너무 대견하다”고 말했다.

/구례=이진택 기자 lit@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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