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정원’
2020년 08월 12일(수) 00:00
“대숲은 거닐 때 들리는 소리는 일품이다. 남도의 풍광을 극적으로 만드는 대나무 숲의 매력은 소리에 있다. 잎이 무성한 여름도 좋지만, 겨울철 대나무의 소리가 훨씨 인상적이다. 죽설헌의 아름다움은 사람의 손길이 느껴지지 않는 자연스러움에서 온다.”(윤광준의 ‘내가 사랑한 공간들’중에서)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태풍 ‘장미’가 북상하던 날, 나주 금천면의 죽설헌(竹雪軒)을 찾았다. 사진이 제대로 나올까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비 내리는 정원은 어떨까’하는 기대감이 발걸음을 재촉했다. 아니나 다를까. 우산을 쓰고 숲속을 거니는 느낌은 특별했다. 먹구름 낀 하늘과 빽빽하게 들어선 대나무, 부채처럼 펄럭이는 파초가 어우러진 풍경은 웅장하면서도 신비로웠다. 특히 조븟한 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눈앞에 펼쳐지는 다양한 수종(樹種)의 향연은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한국화가 시원 박태후 화백(64·조경가)이 머무는 죽설헌이 주목을 끄는 이유는 50년 간 혼자 일궈낸 개인 정원이라는 점이다. 평소 나무와 꽃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원예학교 졸업 후 농촌지도소에서 일하며 틈틈히 아껴 모은 돈으로 1만3천 여 평에 이르는 정원을 꾸몄다. 특히 한국 고유의 정원을 꿈꾼 박 화백은 모든 나무와 꽃을 직접 가꾸며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차별화된 정원’을 탄생시켰다. 말 그대로 시간과 자연, 화가의 열정으로 빚어낸 대지미술이다.

사실, 일반인들에게 ‘화가의 정원’은 로망의 대상이다. 독특한 미적 안목을 지닌 작가들의 정원은 작품에 영감을 불어넣는 원천이 될 수 있어 한번쯤 들여다 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랑스 지베르니의 ‘모네의 정원’이 대표적이다. 파리 근교의 작은 마을인 지베르니는 클로드 모네가 1883년부터 1926년 사망할 때까지 43년간 머물며 창작활동을 펼친 곳이다. 저택과 정원, 수련 연못이 꾸며진 모네의 집을 중심으로 마을 곳곳에 들어선 갤러리와 패션샵, 카페, 레스토랑에는 연중 수십 여 만명의 관광객이 다녀간다.

국내에선 한국화 거장 운보 김기창 화백의 ‘운보의 집’이 자랑할 만 하다. 지난해 둘러본 운보의 집은 평일인데도 많은 인파로 활기가 넘쳤다. 운보가 지난 2001년 88세로 세상을 떠날때까지 22년간 거주하며 말년을 보낸 이 곳은 한국의 ‘100대 정원’이자 드라마 ‘선샤인’ 등의 촬영무대로 더 유명해졌다. 특히 잔디정원에는 국보급 야외 자연석들이 분재들과 조화를 이루고 있고, 조각공원에는 유명 작가들의 다양한 조각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한때 소유권과 운영방식을 둘러싼 논란이 있었지만 충북도가 관리권을 맡은 후 ‘청주시티투어’의 거점공간으로 키우고 있다.

최근 전남도가 올해 처음으로 주최한 ‘제1회 전라남도 예쁜 정원 콘테스트 공모전’에서 순천 별량에 위치한 ‘화가의 정원’이 대상을 수상했다. 전남도는 ‘전라남도 예쁜정원’ 명판과 함께 편의시설을 확충한 후 민간정원으로 등록, ‘블루투어’와 연계한다는 방침이다. 머지 않아 ‘죽설헌’ 등 남도의 아름다운 정원들이 지역의 랜드마크가 되길 기대한다.

<제작국장·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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