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 법안
2020년 06월 03일(수) 00:00
‘1호’라는 말에는 순서상 첫 번째라는 의미를 넘어 상징성이 있다. 이 때문에 국회 개원과 함께 ‘1호 법안’ 발의자라는 타이틀을 차지하기 위한 국회의원들의 신경전이 치열하다.

21대 국회 법안 접수 첫날인 그제 55건의 법안이 발의됐다. 더불어민주당이 37건, 미래통합당이 18건의 법안을 내놨다. 1호 법안의 주인공은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의원이었다. 박 의원은 보좌진을 4박5일 동안 밤샘 대기시킨 결과 ‘사회적 가치법’을 21대 국회 1호 법안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보좌관 ‘뻗치기’(무한정 대기)에 대한 뒷말이 나오기도 했다. ‘경쟁 제일주의를 지양하고 사람의 가치를 지향한다’는 법안의 취지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그것이다.

1호 법안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은 이전에도 치열했다. 20대 국회에선 민주당 박정 의원이 보좌진을 오랫동안 대기시킨 끝에 지역구인 파주를 경제특구로 지정하는 법안을 발의했다.18대 국회 때는 한나라당 이혜훈 의원이 밤을 지새우며 기다렸다가 종합부동산세 개정안을 1호 법안으로 제출했다.

공을 들인 것에 비해 1호 법안들의 통과 성적은 좋지 않았다. 18대와 19대 1호 법안은 다른 법안에 포함되는 형식으로 폐기됐고 20대 1호 법안도 부처 간 의견 조율이 안 돼 자동 폐기됐다.

21대 국회에선 우리 지역 국회의원들도 경쟁적으로 1호 법안 발의에 나서고 있다. 양향자 의원(광주 서구을)은 역사적 사실을 왜곡·폄훼할 경우 최대 징역 7년이나 벌금 5000만 원을 부과하는 ‘역사왜곡금지법’을 자신의 1호 법안으로 발의했으며 이개호 의원(담양·장성·영광·함평)도 5·18왜곡처벌법 개정안 발의에 나섰다. 주철현 의원 등 전남 동부권 초선 의원 5명은 20년 숙원인 여순사건특별법을 1호 법안으로 공동 발의하기로 했다.

지난 20대 국회에서만 2만3000건의 법안이 발의됐지만 이 가운데 1만5000건이 폐기됐다. 1호 법안의 주인공에 집착하기보다는 실현 가능한 법안을 내놓고 통과시키는 노력이 중요하다. 국민이 간절히 바라는 것도 바로 그런 ‘일하는 국회’일 것이다.

/장필수 제2사회부장 bungy@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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