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렌이 부르는 달콤한 독배의 노래
2020년 04월 13일(월) 00:00

[심옥숙 인문지행 대표]

벌써 3개월째, 육안은커녕 웬만한 현미경으로도 보기 어렵다는 바이러스 횡포에 모든 것이 휘둘리는 일상이다. 이 정도면 과연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말이 여전히 유효한 것인가 묻고 싶어진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흐트러졌던 일상이 당연히 제자리로 되돌아갈 것이라는 생각은, 속도 없고 근거도 없는 기대였음이 드러나는 요즈음이다. 이런 가운데 그래도 얻는 깨달음이 있다면 반복과 습관으로 여기던 일상이 평안해서 ‘일상적’일수록 사실은 고마운 일이라는 것이다. 사람은 익숙한 궤도를 벗어나지 않는 단순하고 명료한 일상을 통해서 오늘처럼 내일도 우리의 삶이 지속될 것이라는 믿음을 얻는다.

지금의 전 지구적인 재난 상황을 개인의 힘만으로 해결할 수는 없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평범하고 평화로운 개인적 삶의 일상은 공동체적 합의를 통해서 더 견고하게 회복될 수 있다. 그리고 이 합의를 만들어 내는 일을 우리는 선거라는 이름으로 행한다. 문제는 이런 선거철에 사이렌들의 요란하고 화려하며 자극적인 노래가 더 거세진다는 것이다. 이 노래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는 트로이 전쟁의 영웅 오디세우스를 통해서 가늠할 수 있다.

그리스 고전 ‘오디세이아’의 주인공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후에 단 한 가지만을 목표로 한다. 가족이 있는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의 소망은 전쟁 때문에 떠나온 집, 그리고 가족과 나누던 일상을 되찾는 일이었다. 하지만 오디세우스는 신들의 노여움으로 10년 동안 바다를 떠돌면서 온갖 고난을 겪어야 했다. 그중 하나가 사이렌이 부르는 노랫소리의 유혹을 견디어 내는 것이었다. 사이렌은 반은 독수리이고 반은 사람의 모습인 바다의 요정들로, 지중해에 살면서 지나가는 뱃사람들을 거부하기 힘든 유혹적 노래로 유인한다. 사이렌의 노래는 너무나 아름답고 치명적이어서 듣는 순간부터 뱃사람들은 정신없이 노래가 들려오는 곳으로 스스로 다가가서 목숨을 잃곤 했다. 아름다운 노래가 이끄는 방향은 죽음으로 가는 길이었던 것이다.

이런 사이렌 이야기를 전해 들은 오디세우스는 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한다. 마침내 사이렌의 노래가 들려오자 그는 선원들에게 미리 준비한 밀납 귀마개로 귀를 막게 한다. 단 한 사람, 오디세우스 자신은 귀를 막는 대신 몸을 기둥에 단단히 묶어 두도록 했다. 오디세우스 같은 영웅마저 사이렌의 노래에 귀를 막는다면 그 노래가 얼마나 달콤하며 그 달콤함이 어떻게 죽음의 파멸을 부르는가를 증언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과연 노래의 주술은 너무나 강해서 오디세우스 또한 사이렌을 쫓아 바다로 뛰어들고 싶은 마음에 몸부림을 치지만, 이를 미리 알고 있던 선원들은 그를 더 강하게 결박한다. 이렇게 해서 오디세우스는 사이렌이 부르는 노래의 마법을 이겨 내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반면에 오디세우스를 유혹하지 못한 사이렌은 치욕감을 이기지 못해 죽음을 택한다. 사이렌의 노래가 유혹하는 힘을 잃으면 사이렌 또한 존재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사이렌은 신화 속 사이렌의 의미와는 달리 경보음의 뜻으로 쓰인다. 경보음을 뜻하는 사이렌은 속임수와 유혹의 노래로 사리 분별력을 빼앗고 죽음의 길로 몰아넣는 것과는 반대로 눈앞에 벌어지는 위험한 상황을 알려 주는 역할을 한다. 1819년 프랑스의 투르라는 발명가가 위험을 경고하는 장치에 사이렌 노래의 상징을 뒤집어 사용하기 시작한 데서 유래했다.

사람 사는 데에 사이렌의 노래가 없는 곳이 없지만, 특히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선거철에는 작정하고 나서는 사이렌의 노래가 유독 더 요란해진다. 저마다 자신들의 노래야말로 가장 아름답고 진실한 노래라고 목청을 높인다. 하지만 이들의 노래가 달콤한 속임수는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를 위해서 행해야 하는 책무다. 듣기에 달달하고 매혹적이라고 해서 독배의 노래에 무작정 홀리는 것처럼 자신의 미래에 가하는 어리석고 어리석은 일이 있겠는가. 사이렌의 유혹에 따른 선택은 건강하고 평화로운 일상의 주인이 가는 길은 아니기 때문이다. 덧붙이자면, 사이렌의 노래는 기꺼이 속임수에 홀리고 유혹당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만 치명적인 힘을 발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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