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발코니
2020년 04월 06일(월) 00:00
‘지옥’의 이미지는 어느 종교에서나 비슷하다. ‘희망과 구원이 없는, 영원한 고통과 형벌을 주는 곳’이 바로 지옥이다. ‘죽으면 모든 게 끝난다’고 여겨 오던 사람들은 ‘죽어도 결코 끝나지 않는 고통’이라는 생각에 전율했고, ‘천재적이지만 사악한’ 이 개념은 사람들의 무의식 깊숙한 곳에 각인됐다. 이탈리아의 위대한 시인 단테도 ‘신곡’의 ‘지옥’ 편에서 “이곳으로 들어가는 모든 자여, 희망을 포기하라”고 지옥문을 묘사했을 정도다.

하지만 지옥은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에겐 기쁨과 환희를 가져다주는 장소이기도 하다. 위대한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천국의 매력에 대해 “저 아래 지옥에서 저주받고 고문당하는 이들의 고통을 내려다볼 수 있는 멋진 발코니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천국의 발코니는 ‘저주받은 자들이 지옥에서 받는 형벌을 바라보면서 더 큰 즐거움을 맛볼 수 있도록, 천국의 성자들에게 주어진 선물’이라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엔 ‘반문명적 성범죄’를 저지른 20여 만 명이 들어가야 할 규환지옥(叫喚地獄)이 거대한 아가리를 벌리고 있다. 미성년자 등을 협박해 성 착취 동영상을 찍고 텔레그램에 유포한 이들 ‘최악의 범죄자’들은 살아 있는 동안 ‘현실의 감옥’과 ‘영원한 사회적 낙인’이라는 지옥의 형벌을 피할 수 없는 처지다.

문제는 디지털 공간에서 자행된 잔혹한 범죄 행위에 뒤늦게 놀라고 한탄하며 단죄를 요구하는 우리들은 천국의 발코니에 자리 잡고 형벌의 고통을 관람하는 ‘구원받은 자’가 아니며, 오히려 공범에 가깝다는 점이다. 디지털 공간의 은밀한 구석에서 벌어지는 처참한 성범죄에 대해 무지와 무관심으로 일관한 우리, 그리고 범죄의 심각성을 알고도 침묵했던 우리 모두는 공범이나 다름없다는 이야기다.

무려 20여 만 명이 참여한 거대한 성범죄 소굴의 탄생을 막아 내지 못한 것, 그리고 이들의 범죄 활동을 묵인함으로써 수많은 피해자를 만들어 낸 것은 결국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의 책임이다. 모두가 어울려 사는 공동체에서 천국의 발코니에 편히 앉을 수 있는 성자는 과연 몇 명이나 될까.

/홍행기 정치부장 redplane@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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