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2) 우울, 평온한 일상 밀어낸 바이러스 악몽

2020년 02월 27일(목) 00:00

키리코 작 ‘거리의 신비와 우울’

오래전 개봉했던 영화 ‘피아니스트’(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포스터는 주인공이 나치를 피해 간신히 목숨을 건진 후 맞닥뜨린 모습을 포착한 이미지다.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은 전쟁의 공포 속에서 모두 다 사라진 폐허의 도시에 혼자 덩그러니 놓인 장면은 내게 가장 처절하게 고독하고 불안한 순간으로 각인되어 있다.

코로나 19의 무서운 습격으로 지난 주말 도심지가 텅텅 비었다. 뉴스의 중심이 된 한 도시 풍경은 너무나도 비현실적으로 고요해서 영화 속 악몽 같기만 하다. 우리의 평온한 일상을 밀어낸 바이러스가 지금 온 나라를 한없이 우울하게 한다.

무서운 그림은 아니지만 보는 순간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휘둘리게 하는 그림이 있다. 이탈리아 출신의 조르지오 데 키리코(1888~1978)의 ‘거리의 신비와 우울’(1914년 작)은 건물, 거리, 사람, 기차의 화물칸, 그림자 등 모든 것이 숨을 죽이고 있는 듯 하지만 무슨 일이 금방이라도 일어날 것 같은 긴장이 가득한 그림이다.

과장되고 어긋난 원근법, 화면의 절반을 차지하는 건물에 드리운 긴 그림자, 밤인지 낮인지 알 수 없는 하늘과 거리의 노란 색조가 사실적이면서도 비현실감 가득한 분위기다. 소실점을 향해 가면서 굴렁쇠를 굴리고 있는 소녀,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의 긴 그림자가 불길하고 위험하다.

니체와 쇼펜하우어의 영향으로 형이상학적 심리를 회화에 표현하고자 했던 키리코의 시간과 공간에 대한 초월적인 분위기는 달리, 마그리트, 에른스트, 이브 탕기 등 초현실주의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20세기 초 유럽을 휩쓴 전쟁의 광기 앞에서 예술가들은 ‘예술은 거부하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예술을 해야 하는’ 시대적으로 모순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실을 뛰어넘어야 했을 것이다. 위기의 한가운데에 서서 현실을 극복해야 하는 오늘 우리들의 심정 또한 절박하고 때론 암담하다.

<광주시립미술관학예관·미술사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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