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의 변용과 낙(樂)
2020년 02월 24일(월) 00:00

[최유준 전남대 호남학과 교수]

존경하는 동료 교수의 번역서 출간을 기념하는 작은 모임에 다녀왔다. 광주의 어느 독립서점에서 마련된 소박한 자리였다. 코로나19 국내 확진자 수가 늘면서 예정된 여러 행사들이 줄줄이 취소되고 있는 상황에서, 많지 않은 인원이나마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건재함 그 자체가 주는 작은 감동이 있었다. 수년 전 책의 번역 초고를 제자들과 매주 그곳 독립서점에서 함께 읽었다는 사연을 담은 그의 짧은 출간 소감 역시 마음을 울렸다. 작은 만남들에 의해 의미화 되고 역사화 되는 장소들, 만남이 꺼려지는 요즈음 더욱 절실하게 다가오는 이야기다.

이날의 책은 스피노자의 정치 철학 고전 텍스트를 라틴어 대역으로 꼼꼼하게 한글로 옮긴 노작(勞作)이었다. 페이지를 넘기는데 본문의 첫 단어가 라틴어 ‘아펙투스’(affectus)라는 점이 눈에 들어 왔다. 최근 ‘감성 연구’ 분야에서 부각되어 온 개념이기 때문인데, ‘아펙투스’는 책에서 ‘정서’(情緖)라는 말로 번역돼 있었지만 영어 단어 ‘어펙트’(affect)가 그렇듯 그 문자적 의미는 ‘영향을 미치거나 받는 것’이다. 다만 그 ‘영향’은 이성적이거나 정신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몸의 변화, 신체의 ‘변용’(變容)과 관련된 감성적 차원의 것이다. 이날의 출판 기념 모임이 내게 준 긍정적 ‘영향’ 또한 무엇보다 내 몸이 밝고 즐거운 정서 상태로 ‘변용’되었다는 것에 있었다.

물론 정서적 영향이 늘 긍정적인 방식으로 작용하는 것만은 아니다. 정서적 소통은 공동체 속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데 파편화와 무한 경쟁을 부추기는 이 사회의 신자유주의적 질서는 서로에게 적대적이고 부정적인 정서를 확산시키는 구조적 요인이 된다. 하지만 모든 적대와 경쟁이 사라진 이상적 공동체를 그려볼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슬픔이나 분노와 같은 부정적 정서를 기쁨이나 즐거움과 같은 긍정적 정서로 전환시킬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우울증에 빠지지 않고 밝고 즐거운 정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까?

이와 같은 물음은 자칫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비판 의식을 무력화할 수 있어 주의해야 하지만, 어쩌면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일지도 모른다. 오래 전 유교 문화의 선조들은 ‘예’(禮)와 더불어 이원적 개념으로 설정한 ‘악’(樂)이라는 단어 속에 이 질문과 대답을 담아 두었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음악’(音樂)이라고 부르는 대상이나 행위와 관련이 깊지만, 훨씬 넓은 개념적 맥락 속에 있다. 요컨대 ‘악’은 자신의 삶을 공동체의 맥락 속에서 예술화하는 심미적 대화의 기술이자, 그러한 대화를 통해 경험하는 정서적 즐거움(낙)이며 신체의 긍정적 변용이다.

비관적이고 때론 섬뜩하기까지 한 뉴스로 넘쳐나는 요즈음, 한국인은 전반적으로 부정적 정서에 빠져 있는 듯하다. 며칠 전 무의식적으로 그 집단적 우울감에 젖어 있던 내가 한 순간에 긍정적 정서로의 신체 변용을 경험한 적이 있다. 대학원 후배인 동료 학자로부터 정성을 들인 SNS 초대장이 전해진 순간이었는데, 그가 포함된 아마추어 기타 중주단이 어느덧 20주년을 맞아 기념 연주회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연주는 잘 못하는 게 함정’이라는 진담 섞인 농담도 볼 수 있었다. 웹 포스터 표지의 아름다운 기타 그림은 뜻밖에도 중주단 멤버인 부부의 아이들이 그려 준 것이라고 했다. 최근 부쩍 불안정해진 대학 강사 생활 중에도 한결같이 자기 삶의 ‘낙’을 찾아가는 그와 그의 음악 친구들의 긍정적 에너지에 나는 쉽게 공명(共鳴)했고 생활의 활력을 되찾을 수 있었다.

멀리 서울에서 열리는 음악회라 참석을 장담하기는 어렵지만 그들이 바쁜 일상 너머에서 준비하고 있는 이벤트 소식은 이미 내게 감동과 긍정적 ‘영향’을 주었다. 일상 너머에서 다른 방식으로 말을 거는 심미적이고 대안적인 대화들이 우리의 삶을 예술적으로 만든다. 어두운 터널 같은 코로나바이러스 사태 속에서도 주변의 소박한 장소들에서 혹은 가상의 공간에서라도 서로에게 다른 방식으로 말을 걸 수 있기를, 그 속에서 서로에게 긍정적 ‘정서’를 전달하고 심미적 대화의 ‘낙’(樂)을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코로나 백신이 개발되고 양산되기 전까지 그것이 우리 신체를 변용시키는 최선의 백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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