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의 강
2020년 02월 17일(월) 00:00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하데스 왕국에는 모두 다섯 개의 강이 있다. 아케론(슬픔), 코키투스(탄식), 플레게톤(정화), 레테(망각), 스틱스(증오)가 그것이다. 이 가운데 레테의 강은 망자가 죽음의 신 하데스가 관장하는 명계(冥界)로 들어가기 전에 건너야 하는 강이다. 이곳의 강물을 마신 망자는 과거의 모든 기억은 물론 전생의 번뇌를 잊게 된다. 레테의 강을 망각의 강이라 부르는 이유다.

루비콘강은 이탈리아 북부 아드리아해로 흐르는 강이다. 로마제국 당시 이곳에는 불문율이 있었다. 파견된 군대가 루비콘강을 건너 로마로 돌아올 때는 반드시 무장을 해제해야 한다는 원칙이 그것이다. 기원전 49년 카이사르는 군대를 해산하고 오라는 폼페이우스와 원로원의 명을 따르지 않고 로마로 진격한다. 오늘날 어떤 일이 돌이킬 수 없이 진행된 상황을 ‘루비콘강을 건넜다’라고 하는데, 이는 당시 카이사르가 루비콘강을 건넌 데서 연유한다.

자유한국당이 최근 새보수당 등과의 합당을 의결하고 당명을 ‘미래통합당’으로 결정했다. 제1야당으로서의 외연을 확대하고 총선 승리를 위한 전략 차원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새보수당은 자유한국당과의 통합 전제 조건으로 ‘탄핵의 강을 건너자’는 등 3원칙을 제시한 바 있다.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해야 보수의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작금의 한국당 행태는 정당정치의 본질을 벗어난 데다 비상식적이다.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을 창당한 것도 모자라 ‘5·18 망언’의 주역 이종명 의원 등 일부 의원을 꼼수 제명 후 이적시켰다. 그뿐 아니라 위성정당의 시·도 당 가운데는 주소가 한국당 시·도 당사와 같은 곳도 있고, 어떤 곳은 창고를 당사로 등록하기도 했다.

제1야당이 ‘탄핵의 강’을 어떻게 건넜는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그 강이 레테의 강처럼 쉽게 잊힐 망각의 강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설령 탄핵의 강을 건넜다 해도 선거라는 ‘민심의 강’이 놓여 있다. 작금의 위성정당 창당은 정치 희화화라는 여론의 역풍을 불러올 수 있다. 보수의 정당성과 혁신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오로지 승리만을 위해 루비콘강을 건넌 것은 아닐까.

/박성천 문화부 부장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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