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겁지는 않았어도 욕보이지 않고 견뎌온 시간
광주 출신 조성국 시인 ‘나만 멀쩡해서 미안해’ 출간
조대 교지 ‘민주조선’ 창간 멤버
2020년 01월 21일(화) 00:00
“미안함과 부채감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큰 죽음을 두번 봤습니다. 한번은 고등학교 때 5·18을 통해서 큰 죽음을 봤고 다른 한번은 대학 때 친구인 이철규의 죽음을 봤어요. 살아남았지만 아픔과 미안함은 항상 밑바닥에 남아 있어요.”

광주 출신 조성국 시인이 등단 30년 만에 세 번째 시집 ‘나만 멀쩡해서 미안해’(시인수첩)을 펴냈다.

“염주마을에서 나고 자랐다”는 시인의 말처럼 그는 광주 토박이이다. 그의 삶과 시를 규정하는 것은 어쩌면 다음의 이력일지 모른다. 1989년 조선대학교 재학 중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경찰 수배를 받다 숨진 채 발견된 이철규 열사와 함께 조선대 교지 ‘민주조선’을 창간했다. 1990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하면서 발표한 시의 제목이 ‘수배일기’였다.

“80년대 후반 조선대 재학시절 문학서클 ‘석혈’에 가입해 활동했습니다. 그즈음 조선대는 박철웅 총장에서 첫 민선 총장인 이돈명 총장으로 교체되는 시기였어요. 1·8항쟁을 계기로 학내 민주화 바람이 거세게 불면서 학생과 학내 구성원의 의사를 대변할 수 있는 민주적 이고 자주적인 교지의 필요성이 강하게 대두됐어요. 그렇게 해서 조선대 교지인 ‘민주조선’이 창간되기에 이릅니다.”

당시 편집위는 첫 호에 북한바로알기 운동, 반미 내용 등을 수록했다. 그로인해 그는 국가보안법 저촉으로 도피생활을 해야 했고, 이철규 열사는 얼마 후 광주 제4수원지에서 의문의 주검으로 발견됐다.

이번 시집에는 역사의 한복판을 건너온 청춘의 열정과 좌절이 고스란히 투영돼 있다. 이면에는 오랜 시간이 흘러도 벗어날 수 없는 부채감과 미안함이 드리워져 있다. 어쩌면 그는 뜨겁지는 못했어도 욕보이지 않고 지난 시절을 견뎌왔는지 모른다.

시인은 이전까지 두 권의 시집을 펴냈다. 등단 17년 만에 펴낸 ‘슬그머니’와 ‘둥근 진동’이 바로 그것. 그는 “시가 생각만큼 잘 써지지 않았다”며 그럼에도 “마음 가는 게 이것 뿐”이어서 시를 쓴다는 것이다.

고재종 시인은 추천의 글에서 “풍경과 인사(人事) 속에서 어떤 절정의 순간을 포획하는” 시적 형상화에 대해 재질이 있다고 언급했다. 이번에도 시인은 자신을 둘러싼 풍경과 사람들에 비낀 사연들을 농축된 토속 언어로 형상화했다. 지난 시대의 아픔과 부채감도 있지만, 작품집에는 소외감, 자연과 인간의 관계,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 등 층위가 다양하다.

시인은 서서히 세월에 밀려나는, 그래서 잊혀 가고 묻혀 가는 구석의 풍경들을 살뜰히 들여다본다. “안침진 뒤울안”에 “낭창낭창 휘어”지는 “은방울꽃대”(‘구석에서 생긴 일’)에, “고매(古梅)향 걸터앉은 툇마루/호듯호듯 끓는 볕살”(‘저녁 목소리’)에, “연못가의/ 돼지막 헛간을 개조한 집”(‘사라진 집터, 삐뚤빼뚤 배롱나무꽃만 돋는’)에 시선을 드리운다.

또한 “폐가에서 주워 온 아랫목구들장을 빈 마당 디딤돌로/갖다 놓”기까지 한다. 뿐만 아니라 누구도 눈길 주지 않는 구석을 애잔한 눈으로 들여다본다.

“앞으로도 시는 계속 쓸 겁니다. 딱히 정해진 것은 없지만 시는 가장 맘이 가는 부분이고 저의 존재 이유니까요.”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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