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과 ‘로컬’
2020년 01월 20일(월) 00:00

[최유준 전남대 호남학과 교수]

작년에 한국에서 1000만 관객 동원을 달성하고 칸영화제 황금종려상까지 수상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새해에도 화제를 이어 가고 있다. 봉준호는 ‘살인의 추억’ ‘괴물’ ‘설국열차’ ‘옥자’와 같은 영화들로 이미 세계적 감독의 반열에 올랐지만, ‘기생충’은 해외에서 평단의 반응을 넘어 광범위한 대중적 반응을 이끌어 내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정점을 찍고 있는 듯하다.

한편으로 이 영화와 관련한 봉준호의 촌철살인 해외 인터뷰 멘트들이 화제가 되고 있다. 아카데미상 수상 가능성에 대한 미국 매체의 질문에 답했던 그의 일갈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국제 영화제’가 아니라 ‘로컬 영화제’라는 것이다. 외국어 영화에 대한 배타성으로 악명 높은 미국의 아카데미 시상식에 대한 비판적 언급이었는데, 그런 비판에 응답하기라도 하듯이 다음 달에 있을 아카데미 시상식은 ‘기생충’을 유력한 작품상 후보로 올려놓은 상태다.

‘오스카상’이라는 별칭과 함께 한국의 대중에게도 영화상의 대명사로 간주되어 왔던 아카데미 시상식을 ‘로컬 영화제’로 일축한 봉준호 감독의 두둑한 배짱이 작품상 수상 이상의 의미를 던져 주는 듯하다.

하지만 그가 말한 ‘로컬’의 의미는 좀 더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그는 지난 5일 미국에서 열린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외국영화상’ 수상 소감으로, 자막 읽기를 꺼려하는 미국의 영화 관객들을 향해 “자막이라는 1인치의 장벽을 넘으면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그의 생각을 요약하자면, 미국의 영화판이 ‘로컬’에 머무는 것은, 다른 ‘로컬(들)’에 대한 포용이 없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프로야구의 챔피언 결정전이 ‘한국시리즈’인 데 비해 미국 프로야구의 경우는 ‘월드시리즈’인 데서도 볼 수 있듯이, 20세기 이래로 미국은 스스로 ‘세계’의 대표를 자처해 왔다.

인종박람회와도 같은 미국 사회에서 외견상의 다민족·다문화 풍경이 그와 같은 환상을 정당화한다. 하지만 미국은 이른바 백인 앵글로색슨 개신교도(‘WASP’)가 주도하는 사실상의 ‘로컬’ 사회라는 사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이 영화 관객들의 영어 이외의 언어에 대한 배타성으로 나타난다는 점을 봉준호 감독이 새삼스레 지적한 셈이다.

자신이 ‘지역’에 위치한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한 채 스스로 ‘세계’를 대표한다는 식의 관점을 일컬어 우리는 ‘제국주의적’이라고 말한다. ‘국제적’(international) 혹은 ‘전 지구적’(global)인 것과 ‘지역적’(local)인 것 사이에는 변증법적 관계가 있다.

미국의 관객들이 영화 ‘기생충’에서 그려지는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을 갖는다는 사실은 한국인들 자신에게도 지역적 삶에 대한 성찰을 불러일으킨다. 케이팝과 한류의 인기가 그렇듯 한국의 문화가 전 지구화의 물결 속에서 세계로 확장될수록 그 원심력에 상응하여 내적으로 향하는 문화적 구심력도 동시에 발휘되는 것이다.

20세기는 유럽이나 미국이 곧 ‘세계’ 그 자체인 시대였다. 그것은 예컨대 20세기의 한국이나 일본에서도 ‘음악의 아버지’나 ‘음악의 어머니’는 유럽인이어야 했던 이유가 될 것이다.

21세기의 초엽에서 우리는 그러한 서구 중심주의적 혹은 미국 중심주의적 시대의 종말을 지켜보고 있다. 모든 ‘중심주의적’ 세계관에 대한 비판의 의미에서건, 구체적 장소에 기반한 감성 공동체 구성의 의미에서건, ‘로컬’은 새로운 시대를 표상하는 핵심어 가운데 하나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지역적 보편성’ 혹은 ‘구체적 보편성’의 요구에 대한 한 가지 해답을 봉준호 감독과 그의 영화 ‘기생충’이 예시해 보여 주는 것이다.

영화 ‘기생충’의 극적 내용에서도 ‘로컬’의 변증법을 읽어 볼 수 있을 것이다. 계급화된 사회에서 빈자가 기생충일까, 부자가 기생충일까. 중앙집중화된 사회에서 ‘중심’이 기생충일까, ‘주변’이 기생충일까.

헤겔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이 설파하듯 우리는 서로에게 기생한다. 그 사실을 망각할 때 파국이 일어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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