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어
2020년 01월 20일(월) 00:00
우리 음식 가운데 호불호(好不好)가 뚜렷이 갈리는 음식이 홍어다. 코끝을 톡 쏘는 후감(嗅感)은 웬만한 음식과는 견줄 수 없을 만큼 강렬하다. 바로 이 맛 때문에 누구는 홍어를 먹는다고 하고, 또 누구는 아예 손사래를 치기도 한다. 마름모꼴에 납작한 몸통, 돌출된 주둥이와 작고 찢어진 눈은 홍어만의 독특한 외양(外樣)이다.

나주 영산포는 홍어의 집산지이다. 내륙의 포구였던 영산포는 조선 중기까지만 해도 남도 물류의 중심지였다. 남도에서 생산된 농수산물은 영산 조창을 통해 전국 각지로 출하되었다. 흑산도 근해에서 잡힌 홍어 또한 내륙 수운을 타고 영산포에 이송됐는데, 이 기간 발효가 이루어졌다. 홍어의 맛을 업그레이드시키는 자연 조미료와 같은 게 바로 삭힘의 과정이다. 매운맛에도 순한 맛과 보통의 맛이 있듯이 홍어 또한 숙성 정도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이번 주에는 우리의 고유 명절인 설날이 들어 있는데, 홍어는 남도 사람들이 제사상에 올리는 대표적인 음식이다. 아무리 산해진미라 해도 홍어가 빠지면 ‘먹잘 것 없다’는 말도 있다. 음식의 가짓수와는 별개로 홍어가 올라오면 “상이 참 걸었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걸쭉한 막걸리에 묵은 김치와 홍어 및 삶은 돼지고기를 곁들인 ‘삼합’의 맛을 최고 별미로 친다.

이뿐만 아니라 홍어는 눈, 코, 입, 혀, 목 넘김 등 오감을 자극한다는 것이 홍어 예찬론자들의 찬탄(讚歎)이다. 붉은 속살과 독특한 냄새, 쫄깃한 식감, 씹는 맛, 부드러운 넘김 등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맛은 고상함과 품위에만 깃들어 잇는 게 아닌가 보다. 날것의 건강함과 범속의 비루함에도 진미가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홍어를 통해 알게 된다.

바야흐로 모든 것이 어수선한 시절이다. 정치·사회 각 분야에서 이기심에 물든 볼썽사나운 모습이 눈에 띈다. 비리에 물든 추악한 냄새가 진동하고, 정제되지 않는 오염의 말들도 넘쳐 난다. 이는 선거 시즌에 접어들면서 더욱 확산되는 추세다. 하지만 잘 삭혀야 제 맛을 내는 홍어처럼 부패한 정치인이 아닌, 잘 발효된 정치인이 많이 나왔으면 한다.

/박성천 문화부 부장skypark@kwangju.co.kr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