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대의 미학
2020년 01월 14일(화) 00:00 가가
침침한 등잔 불빛 아래 다섯 사람이 저녁을 먹고 있다. 메뉴는 빵이 아니라 감자다. 남루한 옷차림이나 조촐한 저녁거리로 미뤄 볼 때 그다지 넉넉하지 않은 살림임을 짐작할 수 있다. 빈센트 반 고흐가 1885년 4월에 그린 작품 ‘감자를 먹는 사람들’이다. 어두운 화면 속 이들 다섯 인물들의 표정과 동작은 생생하다. 등을 돌린 어린아이를 중심으로 탁자에 둘러앉은 네 명의 어른들이 감자를 나누고 차를 따른다.
어두운 분위기인데도 작품에서 따뜻한 느낌을 받는 까닭은 작품 중앙 상단에 자리한 등불 때문일 것이다. 촛불은 전기 발명 이전 수천 년 동안 사용해 온 생활용품이다. 자연스럽게 초를 꽂아 놓는 촛대 역시 발달해 왔다. 촛대에는 종교적인 의미도 가미됐다. 일곱 갈래로 이뤄진 촛대인 ‘메노라’(Menorah)는 유대 민족의 정체성을 보여 주는 상징적인 물건이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 미제라블’에서 충동적으로 성당 은접시를 훔쳐 달아나다 잡힌 장발장에게, 신부는 은촛대를 내주며 ‘자네 영혼은 내가 사서 하느님께 바쳤다’고 말한다.
촛대는 장인의 손길을 거치면서 생활용품에서 예술 작품으로 변모한다. 저마다의 촛대에는 만든 이와 사용한 이의 스토리텔링이 스며들 수밖에 없다. 성진기(78) 전남대 철학과 명예교수는 1980년대 초 독일 베를린대학에서 연구교수로 있을 때 ‘빛’과 ‘온기’를 선물하는 촛대에 매료됐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40여 년간 500여 점의 촛대를 수집했다. 나무, 자기, 돌, 유리, 금속 등 촛대 재료가 각기 다르고 똑같은 디자인도 없다. 다양한 모양의 촛대를 보고 있노라면 따뜻한 온기가 전해지는 듯싶다.
성 교수의 애장품 촛대 200여 점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회가 오는 31일까지 광주시 남구 사동(중앙로 110번길 29-4) ‘황톳길 사동’에서 열리고 있다. 새해 초,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에 온기를 전하는 작은 촛대 같은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 미소보다 눈물을 더 많이 섞어 만든/ 빛보다 그림자를 더 많이 섞어 만든/ 촛불의 눈길로 은은하게 나를 바라보다가/ 또 하나의 촛불을 건네주었다 .”(정호승 ‘촛불의 그늘’중)
/송기동 문화2부장 song@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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