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도 출신 손장섭 화백, 광주시립미술관서 초대전
2019년 11월 13일(수) 04:50 가가
거대한 나무·민중의 소리·자연풍경 등 3부로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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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향교 은행나무’ |
이성부(1942~2012) 시인은 시 ‘손장섭’에서 오랜 친구 손장섭(80) 화백에 대해 이렇게 노래했다. “그대/혼자서 끓는 가슴으로/가슴 버린 사람들의 흔적 찍어 가나니/ 부딪치며 싸우며 살 부벼 일으키나니/(중략)//오, 더 간절하게 눈 감거라/ 온 세상의 타는 불꽃들/ 모두 그대의 가슴이 될 때까지”라고.
광주시립미술관(관장 전승보)에서 열리고 있는 ‘손장섭, 역사가 된 풍경’(2020년 2월2일까지)전은 민중미술의 대부로 60년 화업을 이어온 손화백의 작품 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귀한 전시다. 미술관은 해마다 미술계에 큰 영향을 끼친 원로·작고작가를 선정, 초대전을 열고 있다. 완도 출신으로 30여년 전부터 파주에서 작업하는 손화백은 그룹전에 간혹 작품을 선 보인 적은 있지만 오롯이 자신의 작품만으로 광주에서 개인전을 여는 건 50여년 만이다.
3부로 구성된 전시의 첫 파트는 ‘거대한 나무-신목(神木)’이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압도적인 느낌을 받는다. 녹색 벽면에 자리한 거대한 나무들은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광주향교 향나무, 용문사 은행나무, 완도 장좌리 나무, 태백산 주목 등 그가 화폭에 풀어낸 전국 각지의 나무들은 헐벗은 줄기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우뚝’ 서 있다.
그의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손장섭의 색’이라 불릴 만큼 독특한 색감이다. 흰색 물감을 섞어 나이프로 찍어바르며 만들어낸 탁한 색감은 묘한 느낌을 주며 작품에 깊이를 더하고 신비감을 부여한다.
“어느 날 새벽에 나무를 바라보는데 줄기가 하얗게 보여 그 신비로운 기운을 잊을 수 없어 나무를 그리게 됐어요. 특히 음나무의 특성을 알고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음나무는 어릴 때는 가시로 자기를 보호하지만 크면 그 가시가 다 없어져요. 이렇게 다 컸는데 가시가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은 거죠. 인생사도 똑같은 것 같습니다. 나무나 사람이나 세월을 겪으며 사는 것은 다 똑같아요. 무엇보다 나무는 ‘줄기’가 중요해요. 이파리가 있으면 그 진가를 알기 어렵죠. 그래서 잎이 다 떨어진 나무들을 그립니다.”
손화백은 우리시대의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 냉철한 역사의식도 잊지 않았다. 그 작품들은 두번째 섹션 ‘민중의 소리-역사의 창’에서 만날 수 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4·19 시위가 벌어지고 있던 현장에 나가 그 모습을 직접 그린 ‘사월의 함성’(1960)은 4·19를 다룬 가장 오래된 그림이다. 또 ‘현실과 발언’ 창립전에 출품했던 ‘기지촌 인상’, 80년 오월을 그린 ‘오월 함성’ 등도 눈길을 끈다.
“당시는 추상과 목우회풍의 사실주의가 유행이었는데 현실을 그림으로 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림으로 강렬한 발언을 하는 것, 그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두 직장이 있으니 제가 모임의 회장을 맡았구요.”
‘자연풍경’ 섹션은 그가 담아낸 대한민국의 풍광이다. ‘땅끝에서 청산도까지’, ‘해남 땅끝’ 등 남도의 풍경을 비롯해 금강산, 독도 등을 만날 수 있다. 그밖에 직장이었던 동아일보를 그만두고 술로 나날을 보낸 날의 풍경을 담은 ‘자화상’, 고등학생 시절 그린 수채화 작품 등도 눈길을 끈다.
전시장 마지막에 만나는 영상물은 그리 길지 않지만 손 화백의 육성으로 작품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의미있다. 학비가 없어 미술대회 나가 상을 받아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에 다닌 이야기, 귀농하는 아버지를 따라 기차를 타고 내려가다 그림을 그려야한다는 생각에 서울역에서 몰래 도망친 사연, 대학 학비를 벌기 위해 월남전에 지원하고 전투수당을 받았지만 송금한 돈을 친구가 가지고 도망간 이야기, 나무에 빠지게 된 사연, 민중미술을 하며 겪은 일 등을 만날 수 있다.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