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이 완성한 ‘다음 세대’ 위한 디자인 도시
2019년 10월 30일(수) 04:50
도시 디자인, 행복한 도시 풍경의 완성 <6> 핀란드 헬싱키 <상>
세계 디자인 수도 유네스코 선정 디자인 창의도시
랜드마크 ‘오디도서관’ 등 시민 아이디어 적극 반영
시민들의 의견을 반영한 헬싱키시 공공 자전거.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책을 읽을 수 있는 도서관.


핀란드 국적기 핀에어에 탑승했을 때 도트 무늬종이컵과 냅킨에 눈길이 갔다. 한국에도 알려진 디자인 브랜드 마리메꼬와 콜라보한 것으로 간단한 디자인이지만 임팩트가 있었다. 새삼스레 핀란드가 디자인 강국으로 꼽힌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헬싱키는 국내 여행자들에게 러시아 등 유럽의 다른 도시를 방문할 때 이용하는 경유지로 인기가 높은데 최근에는 장기 체류형 관광객도 늘고 있다. 헬싱키 반타 공항에 도착하면 한국어 표지판이 방문객을 맞는다.

인구 65만명의 헬싱키는 지난 2012년 세계 디자인수도로 선정된 후 ‘디자인’을 도시 핵심 전략으로 삼고 있다. ‘Design Thinking Evolution’을 모토로 일관된 정책을 추진중인 헬싱키는 2014년 유네스코 선정 디자인 창의도시로도 이름을 올렸고 2017년부터 2021년까지 디자인을 기반으로 한 도시 전략을 완성할 예정이다. 헬싱키의 정책은 디자인을 만드는 기본적인 데이터를 공개하고 알토대, 헬싱키대 등 지역 디자인 관련 대학들과 협업을 통한 장기적 비전 마련, 초중고교의 디자인 교육 강화, 전세계인들이 발길이 끊이지 않는 세계적인 디자인축제 ‘헬싱키 디자인 위크’ 행사 등을 모두 아우른다.

그 중에서도 ‘CDO(Chief Design Officer)’ 제도는 헬싱키 디자인 정책의 근간이 된다. 지난 2016년 도입한 ‘CDO’는 헬싱키 디자인 정책을 총괄하는 자리다. 아쉽게도 현지 취재중엔 공모가 진행중이어서 패이비 히에타넨 헬싱키시 디자인 매니저를 통해 헬싱키 디자인 정책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시 도시계획국에 소속돼 활동하는 CDO는 디자인과 도시 건축물을 결합하고 연결시키는 등 도시 디자인 전반의 큰 그림을 그리는 자리다. 헬싱키시는 해마다 유입인구가 늘고 있어 주거 공간을 비롯한 다양한 건물을 짓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이 때 단순히 건축물만 짓고 마는 게 아니라, 인프라가 삶의 질을 방해하지 않도록 디자인적 요소를 가미해 사람들이 행복하고 지속가능한 삶을 향유할 수 있도록 적극 개입하는 게 미션이다.

패이비 히에타넨 매니저는 헬싱키 디자인 정책의 핵심으로 시민이 참여하는 ‘코 디자인(Co-design)’을 꼽았다. 참여형 예산 제도 등을 통해 시민 아이디어가 적극적으로 반영돼 현실속에서 구현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녀는 대표적인 사례로 헬싱키 중앙도서관 ‘오디(Oodi)’를 소개했다. 핀란드가 러시아로부터 독립한 지 100주년을 기념해 지난해 문을 연 오디 도서관은 20년전 구상하기 시작, 10년간의 본격적인 준비를 거쳐 독립 기념일을 하루 앞둔 지난해 12월 5일 문을 열었고 9월말 현재 200만명이 방문한 명소가 됐다.

오디도서관은 시민들이 함께 만들어간 공공 프로젝트였다. 2008년 설문조사를 시작으로 시민들은 공간 구성과 배치 등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고, 논의 과정을 통해 시민들의 제안이 적극 반영됐다. 시민들은 도서관 이름 공모와 디자인 최종 결정에도 참여했다. ‘오디’는 핀란드어로 ‘송시(頌詩)’라는 뜻이다.

중앙역에서 도보 5분 거리 교통 요지에 자리한 도서관을 찾아간다. 국회의사당이 보이고,클래식 공연 등을 진행하는 헬싱키 뮤직센터와 카이스마 현대미술관도 바로 옆에 있다. 평일 오후, 3층 규모의 도서관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8만여권의 장서가 구비된 3층은 햇빛이 쏟아지는 창이 인상적이다. 자유롭게 배치된 의자와 나무 계단에 앉아 책을 읽거나 컴퓨터를 하는 이들이 눈에 띈다. 테라스 발코니 역시 사람들로 가득하다.

2층은 기존 도서관과 다르게 꾸며져 있다. 게임방, 악기 작업실 등 8개의 스튜디오와 3D 프린터, 재봉틀, 커팅기 등이 갖춰진 공간에서는 시민들의 다양한 활동이 이뤄지고 있으며 예약만 하면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밤 10시까지 불을 밝히는 도서관은 밤이면 또 다른 모습을 연출한다.

자전거 이용률을 높이기 위해 헬싱키시가 운영하기 시작한 공용 자전거와 거치대의 디자인 등을 결정하는데도 시민들의 의견이 적극 반영됐다. 관련 부서에서는 시민들을 초대해 다양한 디자인의 자전거를 직접 탑승하게 하고 온·오프라인의 다양한 툴을 활용해 의견을 수합해 최종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기여를 한 게 시민들과 기관의 연결고리로 역할을 한 7명의 멤버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시민 가운데 선발된 이들은 시민 참여를 유도하고, 시민을 위한 맞춤형 디자인이 제공될 수 있도록 매개자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시는 현재 시민을 위한 ‘서비스 디자인’의 강화를 위해 의견 수렴 범위를 저소득층, 알콜중독자 등 소외 계층으로까지 확장하는 연구를 강화하고 있다.

시민들이 자주 찾는 시청 역시 도시의 얼굴 중 하나다. 1800년대 독일 건축가에 의해 설계된 건물을 활용하는 헬싱키 시청은 소박한 규모로, 지난해 역시 시민들의 의견을 반영해 리모델링을 진행했다. 미디어 작품 등이 설치된 1층 오픈 공간에서는 다양한 행사가 열리며 ‘도시 발전’과 관련된 기획은 무료로 대관해 준다. 청사의 사물함, 음료수대, 종이컵, 외투 보관 열쇠 등 작은 소품에도 디자인적 요소가 가미돼 인상적이다.

“헬싱키의 아이덴티티를 만드는 것이 바로 헬싱키 디자인 정책의 핵심입니다. 사회가 급변하고 패러다임이 바뀌면 도시 공간들도 변화합니다. 디자인적 요소, 건축물과 결합하는 방식도 바뀌어야죠. 트렌드를 따라가는 게 아니고 미래 트렌드를 예측하고 준비해야합니다.”

헬싱키 시는 시내 전역에서 열린 ‘디자인 위크’ 행사 중 학생들을 위한 워크숍을 시청에서 진행하는 등 특히 ‘다음 세대’를 위한 디자인 교육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헬싱키=글·사진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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