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후의 당신에게
2019년 10월 11일(금) 04:50 가가
벌써 조별 토론은 다 끝났는지, 강당에 들어갔을 때는 조별 발표가 한창이었습니다. 여기저기 낯익은 얼굴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신비스럽게 검푸르던 백두산 천지, 중국 여행에서 처음으로 삼겹살이 나왔던 집안의 조선족 식당. 삼겹살을 앞에 놓고 엄청난 집중력으로 먹어 치우던 모습. 당장 알프스 소녀 하이디가 뛰어나올 것 같은 목가적인 압록강변의 북녁 땅. 사실은 오랜 기근 때문에 나무들을 다 베어 내고 옥수수를 심어서 그렇게 보이는 걸 알면서도, 평화롭고 한가한 스위스의 전원 풍경이 떠올라 당황스러웠던 기억들. 낯익은 얼굴들은 기억 저 멀리로 달음박질치며 달아나던 순간들을 다시 생생하게 떠올려 주었습니다.
사실, 이번처럼 중학생들과 며칠 동안 같이 생활해 본 건 처음이나 다름없습니다. 이 나이 되도록 미혼이라 자식을 키운 경험도 없으니 그럴 수밖에요. 발표하는 걸 바라보며 생각했습니다. 저 나이 때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살았을까? 잠시 40년 전의 나로 돌아가, 고1이었던 1979년 9월 당시의 나를 떠올려봤습니다.
10·26 박정희 대통령의 암살, 부마항쟁, 12·12 사태, 80년의 짧은 봄 그리고 광주. 한 달 뒤면 몰아칠 엄청난 회오리 바람을 아무도 모른 채, 평온한 하루하루가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어수선하고 시끄러웠다고 해도 당시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는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학교와 집을 반복하는, 그날이 그날 같은, 단조롭기 짝이 없는 생활이었으니 그럴 만도 합니다.
조별 발표가 끝나자 저에게 마무리 발언을 부탁하더군요. 기억하지 못할 거 같아 다시 여기다 옮겼습니다.
“여러분들을 보며 나의 중학생 시절을 기억해보려고 했는데 별로 기억나는 게 없다. 여러분들은 이번 여행을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는 곳에 기록해두기 바란다. 그래서 여러분이 20대, 30대 혹은 40대가 되어서 꼭 그때의 기록을 보고 중학생이던 자신을 떠올리기 바란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50대가 되면 중학생들과 함께 이번 코스 그대로 여행해 보기 바란다.”
대충 이런 요지였습니다. 한번 상상해보세요. 40년 전 중학생이던 내가 갔던 그곳을, 당시의 나와 같은 중학생들과 함께, 50대의 내가 그대로 되짚어 가는 걸. 중학생인 자신과 50대의 자신이 대면하는 역사적인 여행이 되지 않을까요.
미처 못한 말들은 여기서 마저 하려고 합니다.
“그날이 오면 어쩌면 여러분들은 KTX를 타고 광주에서 대련까지 한번에 갈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한반도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이 사회가 수십 년 퇴보할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는 젊은이들에게 절망뿐인 현실을 넘겨주는 기성세대가 되었다. 하지만 이 사회는 지난 40년간 우리가 애써 땀 흘려 만든 세상이다. 87년의 민주화 항쟁, 98년의 IMF, 2002년 월드컵…. 우리는 경제적으로 온 세계가 부러워하는 나라를 만들었고, 대중문화 역시 온 세계가 한류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환호한다. 그러나 지금의 20대는 희망이 없다고 한다. 여기가 너희들이 시작하는 곳이다. 그러니 부디 본격적인 인생의 출발선에 들어선 너희들의 모습을 잊지 말고 기억하기 바란다. 그리고 40년이 지난 뒤에 이제 막 인생을 시작하던 자신을 만나, 50대 중반을 훌쩍 넘긴 자신과 더불어 찬찬히 그리고 꼼꼼하게 살펴보기 바란다.”
우리가 원했던 세상이 무엇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 이 모습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이건 아니라고 내팽개치고 도망칠 수도 없습니다. 저는 중학생인 당신을 보며 뭔가를 놓치고 지금껏 살아온 나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투자하는 대상은 중학생인 당신이 아니라, 40년 뒤 기성세대가 되어서 이 글을 보고 있을 당신일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이번 여행은 당신의 삶에서 오래도록 기억될 것입니다. 내가 잃은 그 뭔가를 당신은 잃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인생을 시작하는 당신의 모습을 선물합니다. 부디 잊지 않고 잘 간직하길 바랍니다.
2059년 9월의 어느 날에 이 글을 읽고 있을 당신에게 무한한 사랑을 보내며 이만 줄입니다.
“여러분들을 보며 나의 중학생 시절을 기억해보려고 했는데 별로 기억나는 게 없다. 여러분들은 이번 여행을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는 곳에 기록해두기 바란다. 그래서 여러분이 20대, 30대 혹은 40대가 되어서 꼭 그때의 기록을 보고 중학생이던 자신을 떠올리기 바란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50대가 되면 중학생들과 함께 이번 코스 그대로 여행해 보기 바란다.”
대충 이런 요지였습니다. 한번 상상해보세요. 40년 전 중학생이던 내가 갔던 그곳을, 당시의 나와 같은 중학생들과 함께, 50대의 내가 그대로 되짚어 가는 걸. 중학생인 자신과 50대의 자신이 대면하는 역사적인 여행이 되지 않을까요.
미처 못한 말들은 여기서 마저 하려고 합니다.
“그날이 오면 어쩌면 여러분들은 KTX를 타고 광주에서 대련까지 한번에 갈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한반도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이 사회가 수십 년 퇴보할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는 젊은이들에게 절망뿐인 현실을 넘겨주는 기성세대가 되었다. 하지만 이 사회는 지난 40년간 우리가 애써 땀 흘려 만든 세상이다. 87년의 민주화 항쟁, 98년의 IMF, 2002년 월드컵…. 우리는 경제적으로 온 세계가 부러워하는 나라를 만들었고, 대중문화 역시 온 세계가 한류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환호한다. 그러나 지금의 20대는 희망이 없다고 한다. 여기가 너희들이 시작하는 곳이다. 그러니 부디 본격적인 인생의 출발선에 들어선 너희들의 모습을 잊지 말고 기억하기 바란다. 그리고 40년이 지난 뒤에 이제 막 인생을 시작하던 자신을 만나, 50대 중반을 훌쩍 넘긴 자신과 더불어 찬찬히 그리고 꼼꼼하게 살펴보기 바란다.”
우리가 원했던 세상이 무엇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 이 모습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이건 아니라고 내팽개치고 도망칠 수도 없습니다. 저는 중학생인 당신을 보며 뭔가를 놓치고 지금껏 살아온 나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투자하는 대상은 중학생인 당신이 아니라, 40년 뒤 기성세대가 되어서 이 글을 보고 있을 당신일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이번 여행은 당신의 삶에서 오래도록 기억될 것입니다. 내가 잃은 그 뭔가를 당신은 잃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인생을 시작하는 당신의 모습을 선물합니다. 부디 잊지 않고 잘 간직하길 바랍니다.
2059년 9월의 어느 날에 이 글을 읽고 있을 당신에게 무한한 사랑을 보내며 이만 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