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사태로 보는 한국의 붕당(朋黨) 정치
고 광 만 호남역사문화연구소 상임대표
2019년 10월 10일(목) 04:50
요즘 조국(祖國)은 완전히 둘로 쪼개진 느낌이다. 검찰 개혁을 외치는 진보 세력은 서울 서초동 검찰청 앞에서 촛불을 켜고, 거기에 맞서 보수 세력은 광화문 앞에서 반대 시위를 벌이며 한 달 이상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왜 이렇게 한 사람의 장관 임명이 국민들을 소모적인 논쟁의 장으로 끌어들여 시끄럽게 하는가? 그 이유는 내년 국회의원 총선을 앞두고 보수 세력과 진보 세력 양 진영 간 사활을 건, 피 터지는 정권 싸움이기 때문이다.

역사를 보면 붕당의 시작은 1575년(선조 8년) 김효원의 이조전랑(吏曹銓郞) 추천 문제로 대립하면서 시작되었다. 김효원과 뜻을 같이 한동인은 신진 사림의 관료들이었고, 심의겸과 뜻을 같이 한 서인은 원로 사림의 관료들이었다. 이때 사림의 동서분당은 후에 사색당쟁(四色黨爭)으로 발전해 동인은 다시 남인과 북인으로 갈라지고, 서인은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져 국정을 혼란하게 하고 국력을 크게 소모시켰다.

동인은 주로 영남 세력으로 퇴계 이황의 사상을 따랐고, 서인은 주로 기호 세력으로 율곡 이이의 사상을 지지했다. 광해군 때는 북인이 정권을 잡았으나, 인조반정 후에는 서인들이 정권을 장악했고 여기에 남인들이 도전했다. 이후 몇 차례 바뀌긴 했으나 기본적으로는 서인이, 그중에서도 강경파인 노론이 주도권을 가졌다. 붕당은 관직의 높고 낮음이나 속해 있는 관청과는 상관이 없고, 주로 정치적인 입장이나 학맥에 따라 갈렸다.

훈구 세력에 의해 선비들이 화를 당하는 사화를 겪었던 사림의 붕당 정치는 특정 붕당이 권력을 독차지하기 위해 다른 붕당의 사람들을 모조리 제거하는 옥사로 전개되기도 했다. 조선의 몇몇 임금들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붕당 정치를 이용하기도 했다. 제19대 임금인 숙종은 붕당을 번갈아가며 몰아내는 환국 정치(換局政治)를 펼쳤는데, 이로 인해 붕당 간의 경쟁이 더욱 심해졌다. 영조와 정조 때는 이런 폐단을 없애기 위해 붕당에 관계없이 두루두루 인재를 등용하는 탕평책을 펴기도 했지만 붕당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했다.

일제는 조선의 이러한 당쟁의 폐단이 있을 때 우리를 침략하였고 우리나라를 식민 지배하면서 붕당을 조선의 특징이자 망국의 원인으로 꼽았다 한다. 나라의 이익보다 자기 붕당의 이익을 우선하고 단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해방 후 이승만의 자유당 정부가 들어서면서 자연적으로 야당인 민주당은 신익희, 조병옥 선생을 중심으로 세력을 결집하게 되었다. 그 후 자유당은 박정희의 공화당, 전두환의 민정당, 노태우의 민자당, 김영삼의 신한국당, 이명박의 한나라당, 박근혜의 새누리당이 지금의 자유한국당으로 이어져 어찌 보면 지역적으로 흡사 조선의 동인 세력으로 볼 수도 있겠다. 또한 윤보선, 장면의 민주당에서 신민당, 민주한국당, 통일민주당과 평화민주당, 김대중의 새정치국민회의, 새천년민주당, 노무현의 열린우리당, 민주당,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정부의 더불어민주당으로 이어져 서인 세력으로 볼 수도 있겠다.

위기 뒤에 찬스이고,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했다. 외양간이 허술해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아까운 소를 잃었으면 즉시 반면교사로 삼고 법과 제도를 고쳐야 한다. 이번 기회에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해 좌파 우파를 떠나 국론을 통합하고 검찰 개혁의 핵심인 고위 공직자 비리 수사처와 검·경 수사권 조정 법이 하루속히 국회에서 통과되어 호시탐탐 한반도를 노리는 일본을 비롯한 주변 강대국에게 무시 받지 않고, 세계 11위의 경제 대국에 걸맞은 대접을 받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바란다. 그 기대를 우리 스스로의 자긍심으로 만들었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그것이 바로 이순신 장군의 호국충절의 정신이고, 김구 선생과 안중근 의사가 염원했던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 독립’을 실현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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