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이라는 마법
2019년 09월 06일(금) 04:50
3박 4일로 잡아 놓은 휴가가 반토막에 반토막이 나버렸다. 이런 저런 일들이 생기면서 2박 3일로 줄고 다시 급기야 1박 2일로 줄었다. 이러다가 8월달엔 하루도 쉬지 못할 거 같았다. 그나마 남은 1박 2일도 연기처럼 사라질 것 같아 만사 제쳐 두고 일단 절을 나왔다. 나오긴 했는데 아무런 계획도 없이 무작정 나왔으니 어디서 하룻밤을 보낼지 막막했다. 8월, 관광지나 피서지는 사람들로 미어터질 것이 분명하니 갈 수 없다. 그렇다고 절에서 시달리다가 다시 절에 가서 쉰다는 건 말이 안된다.

모든 것이 다 모여 있는 서울로 간다면 볼거리도 많고 만날 사람들도 있으니 좋긴 하다. 그러나 내게 주어진 시간은 하룻밤이 전부. 서울은 너무 멀다. 선택의 폭은 좁았다. 나는 가까운 도시의 호텔로 방향을 잡았다.

밤은 빨리 찾아왔다. 아무 생각 없이 침대에 누운 채 한참을 있다가 케이블 TV를 틀어 여기저기 채널을 돌렸다. 영화 ‘캐스트 어웨이’(Cast Away)를 하고 있었다. 극장에서 봤던 기억이 나서 새삼스러웠다.

무인도에 홀로 표류된 톰 행크스를 ‘나 홀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무인도에 홀로 버려진 주인공 ‘척 놀랜드’는 배구공에게 말을 걸기도 하고 버럭 화를 내기도 했다. 배구공이 그와 대화할 수 있을 리 없다. 그럼에도 그는 배구공에게 윌슨이라는 이름까지 붙혀 주었다. 윌슨은 그의 둘도 없는 단짝이었다.

그도 홀로, 나도 홀로. 졸지에 무인도에 표류된 그와, 팔자 좋게 호텔방에서 뒹구는 나를 비교하는 것이 정말이지 말도 안되는 일이긴 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어처구니없었다. 그에겐 무척 미안했지만 내 마음 속에서는 그와의 깊은 공감대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내가 홀로인 것은 익숙한 것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함이었다. 절, 방, 거리,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들. 손에 익고 마음에 익으면 편안해야 하는데 어째서 짐이 되어서 벗어나고 싶은 건지 알다가도 모를 노릇이었다. 이런 잡다한 생각들을 하면서 ‘나 홀로’인 척 놀랜드를 보고 있자니 굳이 집 나와 ‘나 홀로’ 낯선 호텔방에서 TV나 보고 있는 내 모습이 보인다. 내가 보고 있는 건 척 놀랜드가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기를 쓰고 익숙함에서 탈출하여 침대 위에 널브러져 있는 나 자신이었다.

배구공 윌슨과 너무나도 리얼하게 대화하는 척 놀랜드를 보다가, 나는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배구공은 그냥 배구공이다. 배구공은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도 아닐 뿐더러 심지어 살아 있는 생물은 더더욱 아니다. 그저 물건일 뿐이다. 그럼에도 그에게 그 배구공은 윌슨이라는 이름을 가진 인격체다. 물건이 졸지에 대화 가능한 인격체로 변신했다. 마술 같은 일이다. 마치 그가 배구공에게 마법이라도 부린 것 같다. 그가 그랬던 것처럼 나 역시 내 주변의 모든 것, 친지, 동료, 신도들에게 마법을 걸었다. 그것은 익숙함이라는 이름의 마법이었다.

그의 마술은 오직 그 자신에게만 먹히는 마술이다. 오직 그에게만 배구공은 인격체로 보인다. 왜냐하면 그가 인격체로 보고, 인격체로 생각하고, 인격체로 상대하기 때문이다. 배구공을 인격체로 만든 것은 바로 척 놀랜드 자신이었다. 그러니까 사실 그는 배구공이 아니라 자신에게 마법을 걸었던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 삶의 터전에서 내가 한 일은 세상을 향해 나의 감정들을 덧대고 또 덧대는 일이었다. 그가 배구공에게 버럭 화를 내기도 하고 홧김에 배구공을 바다에 버렸다가 다시 찾아서는 미안하다고 우는 것처럼, 나도 내가 덧씌운 그런 감정들에 내가 휘청거렸다. 내게 원인을 제공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것이 나를 즐겁게 한다고 생각했고, 그 사람이 나를 짜증나게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건 마법에 내가 속아서 자신에게 눈이 멀어 버린 것이다. 그에게서 느꼈던 묘한 동질감은 이것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고 싶어하는 진정한 이유는 자신에게 걸린 마법을 풀고 싶은 내면의 울림 때문이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면, 바로 그 때가 내 안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이다.

지혜로운 자는 자신이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자신을 바라본다. 지혜롭진 않지만 자신에게 솔직한 사람은 그 자리를 떠나고 나서야 겨우 자신을 볼 수 있다. 스스로에게도 솔직하지 못한 사람은 영영 자신에게 건 마법을 풀지 못한다. 어리석음이란 다른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중현 광주 증심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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