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 책]오래된 우표 사라진 나라들
2019년 09월 06일(금) 04:50 가가
오래된 우표로 밝혀내는 역사의 수수께끼
비에른 베르예 지음·홍한결 옮김
비에른 베르예 지음·홍한결 옮김
“우리는 거센 폭풍에 휘말려 밴디먼스랜드 북서쪽으로 떠내려갔다. 위치를 측정해보니 남위 30도 2분이었다. 선원 열두 명은 과로와 식중독으로 죽었고, 남은 선원들도 극도로 쇠약한 상태였다.”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구절이다. 몇 문단 위에는 배가 난파하고 주인공 걸리버가 어느 해안으로 표류해 목숨을 건지는 장면이 나온다. “그곳은 리리퍼트라는 나라로, 15센티미터밖에 안 되는 소인들이 살고 있었다.”(본문 중에서)
오늘날 사용되는 형태의 우표가 처음 발견된 건 1840년이다. 당시 영국의 교육자이자 발명가였던 로렌드 힐이 우표를 고안했다. 로렌드 힐은 영국의 여왕인 빅토리아 여왕의 초상화를 도안으로 활용했다. 이 기념비적인 우표 ‘페니 블랙’은 검은색의 1페니짜리였지만, 2007년 40만 달러에 거래됐다.
한때 존재했지만 지금은 지도상에서 사라진 나라들이 적지 않다. 서구 열강의 식민지배가 빈번했던 시기, 두 번의 세계대전을 치르며 각국의 경계선이 수시로 변경됐다. 세계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하고 참혹했던 19세기 중반에서 20세기 중반에 이르는 근현대가 그 시기였다.
우표는 존재하는 어떤 사료보다 특정 국가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명징하게 보여준다. ‘우표’라는 작은 창을 통해 세계 역사의 현장을 조명한 책이 발간됐다. 건축가이자 희귀한 우표 수집가인 비에른 베르예가 펴낸 ‘오래된 우표, 사라진 나라들’은 한때는 존재했지만 지금은 사라진 근현대 시대 나라를 불러낸다. 저자는 옛 지도, 당시를 살았던 증인들의 기록, 후대 역사가의 해석 등을 토대로 생생한 역사를 펼쳐낸다.
“저는 사용하지 않은 새 우표에는 별 흥미가 없습니다. 손을 많이 탄 우표, 세월이 묻어나는 우표일수록 제겐 귀중합니다…. 오래 전 지구 어느 한 구석에서 누군가가 먼저 느꼈던 인상들이 스쳐가고, 저도 함께 그 느낌에 젖어봅니다.”
책에는 역사에서 사라진 50여 개의 나라들이 등장한다. 내전과 내전을 거듭하다 파멸한 보야카 왕국, 포격 흔적 외에 남아 있는 것이 없는 양시칠리야왕국, 간유 공장으로 쓰이다 화산 폭발로 무인도가 된 사우스셰틀랜드제도도 있다. 전염병이 창궐하고 아사자가 속출했던 아프리카의 ‘비아프라’, 가스누출로 2800여 명의 사망자와 20만 명의 피해자를 낳았던 인도의 ‘보팔’도 있다.
안타까운 것은 열강의 교묘한 술책으로 평화롭던 나라가 원주민들과 함께 사라진 나라도 있다. 티에라델푸에고에 거주했던 야간족이라는 부족은 그 희생양이다. 이들은 세계에서 가장 남쪽에 살았고 수백 년에 걸쳐 다른 부족들도 이곳에 정착했는데, 그 가운데는 유목민족인 셀크남족도 있었다고 한다.
“영국인 정착민들이 양 떼를 풀밭에 풀자, 원주민들은 이게 웬 떡이냐며 대대적인 사냥에 나섰다. 이는 대학살의 단초가 되었다. 그러나 영국 군대는 학살에 적극 참여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학살은 주로 농장주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현상금은 원주민 한 명당 위스키 한 병 또는 1파운드였다.”
그러나 한가지 의문이 있다. 과연 우표는 역사적 진실만을 담아낼까? 여기에는 다분히 정치적 속내 또한 담겨 있다는 게 저자의 인식이다. 당시 패권을 쥐고 있던 권력가들은 우표 발행을 매개로 영토 소유권을 주장했다.
칠레 군대는 새 도시를 점령할 때마다 소인부터 만들어 우표에 찍었다. 모든 우표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초상화를 도안으로 했다. 영국은 한때 오렌지자유국(남아공 지역에 있었던 나라)을 침입해 수만 명의 목숨을 잃게 했다.
저자는 불과 135년(1840~1975) 사이에 사라진 나라가 50개라며 그만큼 격동의 시대였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얻은 진실이 있다. “나라를 새로 세우는 이유가 무엇이건 간에 불변의 진리가 하나 있습니다. 며칠이든 100년이든 얼마 동안은 꿍꿍이가 먹혀들지만, 그 뒤엔 늘 몰락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필연입니다.”
<흐름출판·2만5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저는 사용하지 않은 새 우표에는 별 흥미가 없습니다. 손을 많이 탄 우표, 세월이 묻어나는 우표일수록 제겐 귀중합니다…. 오래 전 지구 어느 한 구석에서 누군가가 먼저 느꼈던 인상들이 스쳐가고, 저도 함께 그 느낌에 젖어봅니다.”
책에는 역사에서 사라진 50여 개의 나라들이 등장한다. 내전과 내전을 거듭하다 파멸한 보야카 왕국, 포격 흔적 외에 남아 있는 것이 없는 양시칠리야왕국, 간유 공장으로 쓰이다 화산 폭발로 무인도가 된 사우스셰틀랜드제도도 있다. 전염병이 창궐하고 아사자가 속출했던 아프리카의 ‘비아프라’, 가스누출로 2800여 명의 사망자와 20만 명의 피해자를 낳았던 인도의 ‘보팔’도 있다.
안타까운 것은 열강의 교묘한 술책으로 평화롭던 나라가 원주민들과 함께 사라진 나라도 있다. 티에라델푸에고에 거주했던 야간족이라는 부족은 그 희생양이다. 이들은 세계에서 가장 남쪽에 살았고 수백 년에 걸쳐 다른 부족들도 이곳에 정착했는데, 그 가운데는 유목민족인 셀크남족도 있었다고 한다.
“영국인 정착민들이 양 떼를 풀밭에 풀자, 원주민들은 이게 웬 떡이냐며 대대적인 사냥에 나섰다. 이는 대학살의 단초가 되었다. 그러나 영국 군대는 학살에 적극 참여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학살은 주로 농장주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현상금은 원주민 한 명당 위스키 한 병 또는 1파운드였다.”
그러나 한가지 의문이 있다. 과연 우표는 역사적 진실만을 담아낼까? 여기에는 다분히 정치적 속내 또한 담겨 있다는 게 저자의 인식이다. 당시 패권을 쥐고 있던 권력가들은 우표 발행을 매개로 영토 소유권을 주장했다.
칠레 군대는 새 도시를 점령할 때마다 소인부터 만들어 우표에 찍었다. 모든 우표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초상화를 도안으로 했다. 영국은 한때 오렌지자유국(남아공 지역에 있었던 나라)을 침입해 수만 명의 목숨을 잃게 했다.
저자는 불과 135년(1840~1975) 사이에 사라진 나라가 50개라며 그만큼 격동의 시대였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얻은 진실이 있다. “나라를 새로 세우는 이유가 무엇이건 간에 불변의 진리가 하나 있습니다. 며칠이든 100년이든 얼마 동안은 꿍꿍이가 먹혀들지만, 그 뒤엔 늘 몰락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필연입니다.”
<흐름출판·2만5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