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미술관의 천국, 제주도를 가다
2019년 08월 20일(화) 04:50 가가
90여 박물관·미술관, 문화 제주의 실핏줄
본태박물관·아라리오뮤지엄·왈종미술관
관광객이 찾는 대표 사립미술관
이중섭·제주현대미술관 등과 연계
아트투어 코스로 자리잡아
광주·전남 28곳 예산 부족 운영난
기부문화·세제혜택 등 지원방안 필요
본태박물관·아라리오뮤지엄·왈종미술관
관광객이 찾는 대표 사립미술관
이중섭·제주현대미술관 등과 연계
아트투어 코스로 자리잡아
광주·전남 28곳 예산 부족 운영난
기부문화·세제혜택 등 지원방안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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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해 화제를 모은 본태 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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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왈종 작가가 운영하는‘왈종 미술관’ 전시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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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왈종 작가가 운영하는‘왈종 미술관’ 전시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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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리오 뮤지엄 탑동시네마의 소장품인 코헤이 나와 작 ‘사슴가족’. |
언제부턴가 제주도는 미술의 섬으로 불린다. 어느 곳을 가든지 각양각색의 박물관과 미술관들을 볼 수 있으니 그럴 만하다. 제주의 역사를 보여 주는 자연사박물관에서부터 동심을 설레게 하는 곰인형박물관 등 줄잡아 90여 곳이나 된다. 특히 개인이나 민간재단이 운영하는 사립미술관은 독특한 콘텐츠와 테마로 제주도의 문화지형을 풍성하게 한다.
제주 구도심에 들어선 아라리오 뮤지엄 탑동시네마는 비엔날레 전시장을 보는 듯 하다. 옛 탑동 시네마 극장을 리모델링한 전시장에는 앤디 워홀의 ‘메릴린 먼로’와 배의 길이가 21m나 되는 인도 작가 수보드 굽타의 ‘배가 싣고 있는 것을 강은 알지 못한다’ 등이 설치돼 시선을 압도한다.
지난 2013년 서귀포에 둥지를 튼 왈종미술관 역시 제주도를 찾는 관광객들이 빠지지 않고 들르는 곳이다. 20여년 전 제주에 정착한 이왈종 작가는 ‘제주생활의 중도와 연기’를 주제로 작업을 하면서 제주의 매력에 푹 빠졌다. 작업실로 활용하던 기존 주택을 철거한 후 조선 백자에서 모티브를 지은 3층 건물이다. 설계는 스위스 건축가 다비드 머큘로와 한국 건축가 한만원이 맡았다. 작가가 직접 가꾼 꽃과 나무, 조각 작품들이 즐비한 정원을 지나 만나는 미술관 1층에서는 그의 작품을 모티브로 한 미디어아트를 감상할 수 있다. 주전시장인 2층으로 오르는 계단과 자투리 공간에도 어김없이 그의 작품들이 걸려 있다.
이들 사립미술관은 제주도립미술관, 이중섭 미술관, 도립 김창열 미술관, 제주현대미술관 등 굵직한 공립미술관과 함께 제주의 아트투어 코스로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이들 미술관은 전국의 여타 사립미술관들에 비해 사정이 나은 편이다. 본태박물관은 ‘현대’라는 든든한 지원자가 있고 아라리오 뮤지엄 시네마 역시 모기업인 천안 아라리오 백화점의 후원을 받아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상당수의 사립미술관은 개인의 사재를 털어 운영해야 할 만큼 심각한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다. 열정과 헌신으로 미술관을 건립했지만 변변한 수익모델이 없는 상황이 장기화 되면서 전시비용, 인건비 등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8년 1월 문화체육관공부의 ‘전국 문화기반 시설총람’에 따르면 전국에 있는 미술관은 모두 251개(국·공립 68, 사립 168, 대학 15). 이 가운데 광주는 10개(국·공립 2, 사립 7, 대학 1), 전남은 29개(국·공립 6, 사립 21), 전북은 18개(국·공립 6, 사립 12)가 운영중이다.
한때 ‘잘 나갔던’ 강원 강릉시의 참소리 축음기 에디슨 박물관이나 제주 서귀포의 아프리카 박물관, 서울 종로구 명륜동의 짚풀생활사 박물관이 운영난을 겪은 케이스다. 지난 2010년 출간된 ‘뮤지엄을 만드는 사람들’에는 사립미술관장 28명의 굴곡진 스토리가 생생하게 담겨 있다.
한국 최초의 사립미술관인 토탈미술관의 노준의 관장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노 관장 부부는 1978년 경기도 장흥으로 이사해 ‘디자인 교육관’을 세우려고 계획했다. 하지만 정부는 디자인 교육관 계획에 ‘호화 별장세’를 부과하는 등 비협조적이었다. 건물 부지 중 일부가 농지였는데 농지를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조항에 ‘레미콘 공장’은 있었지만 ‘미술관’이 없어 포기해야 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10년 후, 가까스로 ‘준 박물관’으로 미술관을 건립했지만 계속된 경영적자로 인해 번번이 미술관은 존폐기로에 섰다. 그럼에도 무명의 젊은 예술가가 자신의 미술관에서 개최한 전시회를 발판삼아 외국으로 진출할 땐 그간의 고충을 날릴 만큼 보람을 느꼈다. 이런 매력에 빠져 지금까지 미술관을 접지 않고 운영하게 됐다는 노 관장의 스토리는 새삼 사립미술관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한다.
국내에선 처음으로 전국의 사립미술관 26개를 대상으로 4년간 자료조사와 인터뷰를 한 최병식 경희대 교수는 “이들이야 말로 이 시대 문화투사 이자 등불과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IMF때 박물관이 부도가 나서 빚쟁이들에게서 유물을 지키기 위해 유물을 모두 트럭에 싣고 2년 가까이 방랑생활을 했던 관장, 앞이 보이지 않는 관장이 무모하게 꿈꾸고 일군 박물관, 폐교된 학교에 세운 박물관 등 오로지 박물관의 설립과 운영을 위해 자신들의 삶을 희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상당수의 운영자들이 일단 작품 소장과 전시 기능만으로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운영된다는 ‘낭만적인’ 생각을 갖고 뛰어든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즉, 학예사 인건비, 전기료, 수도료 같은 경상비용이 예상외로 많이 들어가는 만큼 설립전에 반드시 정확한 비용을 산출하고 아트숍 운영, 입장료 현실화, 후원회 유치 등 다각적인 수익사업이나 후원 프로그램을 운영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최 교수는 “사립박물관(미술관)들이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국·공립 미술관 못지 않는 문화적 기여와 지역사회 공헌을 하고 있다”면서 “개인이 재산을 털어 운영비를 충당하는 방식은 한계를 지닐 수 밖에 없는 만큼 기부 등에 대한 세제혜택을 주는 등 지원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제주=글·사진 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