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 술률후 요나라 태조 부인…건국에 큰 공헌
2019년 08월 13일(화) 04:50

<초당대총장>

술률후(述律后, 879~953)는 요나라 태조 야율아보기의 부인이다. 2대 태종 야율덕광의 모친으로 요나라 건국에 크게 공헌했다.

이름은 평이고 거란 이름은 월매타다. 조상은 회골인으로 열네살에 야율아보기와 결혼했다. 그녀는 아보기의 고종사촌 누이였다. 젊어서부터 용맹하고 결단력이 있으며 임기응변이 뛰어나 남편은 군대를 출동시킬 때 그녀의 자문을 구했다. 자신이 직접 지휘하는 2만명의 기병 호위부대인 속산군을 거느렸다. 일찍이 남편이 당항 지역으로 출정하면서 진지를 지키게 하였다. 황두, 취박의 두 부족이 연합해 노략질하자 기습해 대파하니 그 명성이 여러 부족사이에 떨쳤다. 또한 남편을 설득해 거란의 일곱 부족장을 파림좌기로 초청해 술에 취하도록 한 다음 죽여 거란의 실권을 장악하였다. 913년 남편의 형제인 칼갈, 질랄, 안단 등이 반란을 일으켰다. 그녀는 속산군을 지휘해 칸의 지위를 상징하는 깃발과 북 등을 빼앗아 남편의 지위를 보전해 주었다. 916년 아보기가 대성태평천황제라 칭하자 그녀는 웅천대명지황후가 되었다. 한인 관료 한연휘를 중용하도록 건의했다.

아보기가 황제가 되었지만 통치체제나 관료기구가 엉성하기 그지없었다. 연나라 황제 유수광이 한연휘를 거란에 보냈는데 그는 아보기 앞에서 무릎 꿇고 절하기를 거부했다. 격노한 아보기가 들에서 말을 먹이도록 지시하였다. 술률후는 의당 예의를 갖추어 그를 기용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한연휘가 거란에 끼친 공은 컸다. ‘요사’는 그가 “도성을 세우고 궁전을 건설하고 군사관계를 바로 세우는 등 왕조의 초석을 닦는데 많은 공을 세웠다“고 평가하였다. 그는 직위가 중서령에 이르렀다.

917년 아보기가 유주를 공격하려하자 성급한 처사라며 반대했다. 조급하게 군대를 움직여 이기지 못하면 중국측의 비웃음을 사게 될 것이라는 논리였다. 자신이 낳은 세 아들 중 차남 야율덕광을 아꼈다. 장남 야율배를 중국 문화와 예술에 심취해 거란의 숭무정신을 상실한 유약한 인물로 생각했다. 자신의 질녀가 덕광의 아내가 되었기에 더욱 애정을 느꼈다. 그녀는 족장들에게 야율배와 야율덕광 중 한 명을 후계자로 선택토록 하였다. 그녀의 뜻을 눈치챈 족장들이 덕광의 말고삐를 잡고 충성을 맹세했다. 야율배는 동단국왕에 봉해졌다.

그녀는 아보기가 길림성 부여성에서 죽자 자신에게 순종하지 않는 족장이나 장수들의 처를 불러 말하기를 “나는 지금 과부가 되었는데 너는 나를 본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또 그 지아비들을 모아놓고 울면서 물었다. “너희는 돌아가신 황제를 생각하느냐?” 그들이 대답하기를 “돌아가신 황제의 은혜를 입었는데 어찌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녀는 “과연 그를 생각한다면 지하에 가서 그를 알현하시오”라고 말하고 모두를 처형하였다. 대신들을 참수해 순장한 후 이에 의문을 품은 관료들도 모두 사형에 처하였다. 유주 전투에서 귀순한 한인 관료 조사온도 순장을 강요받았다. 그는 “가까운 사이로 따지면 태후께서 제일 가까운데 왜 돌아가신 황제를 만나려하지 않으십니까”라고 말하였다. 말문이 막힌 그녀는 “국가에 주인이 없어 당분간 황제를 따라갈 수 없다”며 대신 자신의 오른손을 찍어내쳤다. 이로서 자신의 순장을 대체했다.

947년 야율덕광이 후진 수도 개봉을 점령한 후 귀국길에 죽었다. 그녀는 일찍부터 거란족의 중원 공격에 회의적이었다. 덕광에게 “네가 한 평의 땅을 얻어도 오래 머물 수는 없을 것이다”라고 말하곤 했다. 덕광이 죽자 야율배의 장자인 야율완이 추대를 받아 황제에 즉위했다. 3대 세종이다. 파림좌기에 있던 술률후는 자신의 셋째 아들 야율이호를 지지하고 야율완 무리를 반역자로 토벌토록 명하였다. 야율완은 조모인 술률후와 시라무렌강 양쪽에서 대치했다. 양측은 황족인 야율옥질의 중재로 화해하였다. 그녀는 군대를 해산하고 수도로 돌아갔다. 그러나 여전히 이호가 황제되는 소망을 버리지 못해 정변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세종은 그녀와 이호를 조주로 유배했다. 953년 75세로 세상을 떠나니 남편 아보기의 무덤인 조릉에 합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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