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성 쌓아 철로 건설…村老 수십명 삭발·단식
경전선 보성 두슬마을 앞 길이 400m·높이 13m 흙벽위에 공사
조망권·일조권 침해에 수백년 유서깊은 마을 고립·사라질 위기
“교량 선로로 해달라” 호소 … 철도공사·지자체는 책임 떠넘겨
2019년 08월 07일(수) 04:50

6일 보성 옥평리 두슬마을 입구에서 주민들이 마을 앞 철길공사를 반대하는 천막 농성을 벌이고 있다. /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

300년 넘는 전통을 지닌 보성의 한 마을이 철길공사 때문에 존폐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한국철도시설공단이 보성~목포 임성리 간 경전선 철길 공사를 진행하면서 보성군 옥평리 ‘두슬마을’ 입구에 토공선로(흙으로 된 둑 위에 설치하는 철로)를 설치하기 위해 길이 400m, 높이 11~13m의 대형 흙토성을 쌓고 있기 때문이다.

65가구에 총 130여 명의 주민이 옹기 종기 모여 살고 있는 ‘두슬마을’ 주민들은 “흙토성 위로 철길이 완공되면 바람길이 막히고, 조망권과 일조권이 사라지는 등 마을이 사실상 고립돼 사람이 살 수 없게될 것”이라며 토공 선로 구간을 교량 선로로 건설해 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철길공사를 진행중인 한국철도시설공단은 적법한 절차를 거쳐 문제가 없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고, 보성군은 “자치단체의 업무가 아니다”며 책임 떠넘기기에만 급급해 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주민들의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6일 오전 보성군 옥평리의 들판 곳곳에는 ‘이게 마을이냐’, ‘저수지 제방이지’ 등이 적힌 대형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33도가 넘는 폭염에도 마을 어르신들 수십명이 마을 입구와 철도 공사 구간이 만나는 지점에 설치한 천막을 지키고 있었다. 주민들은 삭발과 단식투쟁 등 지난 6월부터 매일 공사장 앞에 천막을 치고 24시간 농성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주민 이모(84)씨는 “전체 철길 가운데 마을 앞을 지나가는 400m만이라도 교량으로 해달라는 최소한의 요구마저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면서 “공단을 항의방문하고, 진정서와 탄원서까지 제출했는데 단 한차례도 공사현장을 찾아오거나 주민과의 대화에 나서지 않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한국철도시설공단에 따르면 두슬마을 앞을 지나는 공사는 보성~목포 임성리 간 82.5㎞를 잇는 경전선 공사로, 2020년까지 완공을 목표로 총 공사비 1조3057억원이 투입된다. 두슬마을 앞 구간은 7개 구간으로 나눠진 구간중 1공구 구간에 속해 있다.

1공구 구간의 총 길이는 11.9㎞로, 토공 공사 구간은 9.68㎞ 길이다. 교량은 5곳(1.138㎞)이 설치되고, 4개의 터널(1.124㎞)이 뚫린다.

두슬마을 주민들은 ‘토공선로’ 때문에 마을이 존폐 위기에 놓여 있다고 걱정하고 있다. 마을 앞에는 아래 폭 50~60m, 위 폭 8m, 높이 11~13m 규모의 토공선로가 공사중이다.

주민들은 국가사업인 철도공사 진행에는 적극 동의하면서도, 토공선로 대신 교량으로 변경해 바람이 지나가는 길과 마을 앞을 볼 수 있게 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두슬마을 박옥근(67) 이장은 “철도 공사를 위해 쌓은 흙더미가 마치 토성과 같다. 이 흙더미가 마을 앞을 가로막아 조망권·일조권·통풍권을 한꺼번에 침해당하게 됐다”면서 “마을 주민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이 토공선로가 완성이 되면 이 마을 주민의 90%가 이주하겠다고 응답했다”고 주장했다.

이 마을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는 한 주민은 “토공선로가 논으로 불어오는 바람 길을 막아 그만큼 농작물 성장도 지체되고, 비가 오면 흙이 유실돼 논으로 흘러 들어오는 등 농사에도 막대한 피해를 줄 것”이라고 걱정했다.

주민들 사이에선 마을 앞 철길공사와 관련해 지난 2015년 철도시설공단이 보성군과 협의를 거쳤다는 점에서, 보성군의 근시안적이고 무책임한 행정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보성군 관계자는 “철길 공사는 공단에서 진행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군에서는 중재 역할 밖에 할 수 없다”고 해명했다.

이 같은 반발에도 철도시설공단은 내년 말까지 둑을 쌓아 철길을 내는 ‘토공 선로’ 공사를 강행한다는 계획이다.

철도시설공단 관계자는 “환경영향평가 등 모든 절차를 적법하게 거쳐 철길을 놓게 됐다”며 “주민 요구를 받아들이려면 공사비가 50억 원이 추가로 더 들게 돼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보성=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

/보성=김용백 기자 kyb@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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