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호 영화감독·한국영화 100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
“한국영화의 희망은 독립영화에 있다”
영화 외길인생 45년…‘별들의 고향’으로 감독 데뷔
나운규 ‘아리랑·이만희 ‘만추’ 필름 발굴 추진 등
한국영화 100년 맞아 다양한 기념사업·행사
1970~80년대 ‘검열’·현재는 ‘자본’ 문제점 지적
앞으로 100년 발전 위해 작가정신·다양성 강조
2019년 07월 16일(화) 04:50

이장호 감독(한국영화 100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공동 위원장)이 최근 광주극장내에 전시된 낡은 영사기를 보며 한국 영화 100년의 역사와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젊은 시절 이장호 감독. <한국영화 데이터베이스(KMDb)>




지난 4월 17일 열린 ‘한국영화 100년 기념사업 경과보고’ 기자회견. <한국영화 100년 기념사업 추진위 제공>








1919년 10월 27일, 서울 종로에 자리한 영화관 단성사에서 ‘의리적 구토’(義理的 仇討)가 상영된다. 식민지 조선에서 조선인의 자본과 인력으로 만들어진 최초의 영화였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올해 5월, 봉준호 감독이 칸 국제 영화제에서 영화 ‘기생충’으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한국영화 100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공동 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장호(74) 영화감독을 최근 광주극장에서 만나 한국영화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해 들었다.

◇ 연쇄극 ‘의리적 구토’부터 한국영화 시작

“‘의리적 구토’가 제작된 1919년은 독특한 해에요. 그해 3·1만세 운동이 있었고, 상하이에 임시정부가 수립됐죠. 당시는 민족자결주의에 눈뜨는 때인데 제일 앞장선 것이 3·1 운동이었단 말예요. 그 토양에서 자주(自主)의식을 느끼고 단성사 박승필 사장이 토착 자본으로 김도산 이라는 영화인을 시켜서 ‘한번 이런 영화 만들어보자’해서 ‘의리적 구토’가 나왔습니다.”

올해 이장호 감독은 배우 장미희와 함께 한국영화 100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이하 기념사업위) 공동 위원장을 맡았다. 그는 1965년 신 필름에 입사한때로부터 54년, ‘별들의 고향’으로 감독데뷔한 때로부터 45년 동안 영화 외길 인생을 걷고 있다. 한국영화 100년 역사의 절반 가까이를 현장에서 몸으로 직접 겪은 셈이다.

올해 ‘한국영화 100년’을 맞아 기념사업위는 다양한 행사를 마련한다. 단절된 선배 영화인과 후배 영화인간의 소통을 비롯해 100명의 감독이 100초짜리 영화를 만드는 프로젝트 등 다채롭게 진행한다.

한국영화 100년 역사에서 중요한 영화필름을 발굴하는 사업도 추진된다. 북한에 현존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나운규 감독의 ‘아리랑’(1926)과 이만희 감독의 ‘만추’(1966) 등이 대상이다. 영화필름이 발굴되면 영화진흥위원회와 한국영상자료원이 협력해 디지털 복원을 추진한다.

특히 10월 26~27일 이틀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한국영화 100주년 기념 페스티벌’이 개최된다. (가제) ‘위대한 한국영화 100년’을 주제로 한 이날 행사는 ‘의리적 구토’를 모티브로 한 기념공연을 비롯해 영화 촬영현장 재연, 타입캡슐 봉인식 등을 진행한다. 광주에서도 10월께 ACC 시네마테크가 독자적으로 광주극장에서 영화인들의 창작활동에 고통을 줬던 검열과 정책영화, 3S 등을 다루는 (가칭) ‘나쁜 영화제’를 개최할 계획이다.

이 위원장은 올해 ‘한국영화 100년’을 맞아 진행하는 다양한 기념사업들이 축제로만 그치지 않고 향후 한국영화 100년 창작의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 사업예산을 15억7000만원밖에 확보하지 못해 아쉽다.

“정치는 한 번도 해외 나가서 칭찬을 못 받았는데 BTS와 봉준호 감독은 정치인들이 못하는 일을 외교적으로, 국가적으로 선양했잖아요. 결국 우리 영화인들은 끝없이 돈 없이 뭘 해내야 될 거같애.(웃음)”

◇ 영화 ‘바보선언’은 독재정권이 만든 격

지난해 10월, 제23회 부산 국제영화제(BIFF)에서 이장호 감독 회고전이 열렸다. 이때 데뷔작인 ‘별들의 고향’(1974)부터 ‘바람 불어 좋은 날’(1980), ‘어둠의 자식들’(1981), ‘과부춤’(1983), ‘바보선언’(1983), ‘어우동’(1985),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1987), ‘시선’(2013) 등 대표작 8편이 상영됐다.

이 감독은 영화 검열관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자연스레 어려서부터 영화와 접하게 됐다. 홍익대 건축미술학과 1학년에 재학하던 1965년부터 신상옥 감독이 이끄는 신 필름에서 8년간 조감독 생활을 했다.

29살이던 1974년 4월에 초·중·고 절친인 최인호 작가의 베스트셀러 소설 ‘별들의 고향’으로 감독 데뷔했다. 서울 국도극장에서 영화가 개봉되자 대중들의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105일 동안 46만여 명이라는 한국영화 사상 최고의 관객동원 기록을 세웠다.

이후 ‘어제 내린 비’ 등 3편의 영화를 연출하고 1976년부터 4년여 동안 뜻하지 않게 감독활동을 중단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시기는 한국사회 현실에 눈을 뜨게 되면서 사회의식을 가지고 새로운 리얼리즘 영화를 꿈꾸는 ‘터닝 포인트’가 됐다.

그는 1980년 11월에 최일남의 소설 ‘우리들의 넝쿨’을 원작으로 한 ‘바람 불어 좋은 날’로 재기했다. 그리고 ‘어둠의 자식들’, ‘바보선언’, ‘과부춤’, ‘나그네는 길에서도 나그네는 쉬지 않는다’ 등 사회 소외계층을 다루는 리얼리즘적 문제작들을 잇달아 내놓았다. 5공 당국의 날선 검열정책과 맞부딪혔다.

특히 사회현실에 대한 현실 비판적 발언을 담은 독특한 스타일의 ‘바보선언’에 대해 이 감독은 ‘이장호 감독의 마스터클래스’(작가 刊)에서 “그거 사실 내가 만든 영화가 아니다. 나는 영화를 포기하고 자살하는 심정으로 만들었는데 이 영화를 만든 에너지는 전두환 정권하고 영화정책에서 나왔다, 그것이 이 영화를 만드는 힘이 되었다”고 밝혔다.

◇ 한국영화 희망은 독립영화에 달려있어

이 위원장은 현역 감독이다. 한국영화 100년 기념사업 추진위 위원장 역할을 수행하고, 동양대학교 공연영상학부 학생들을 지도하는 교수로서 분주한 가운데 차기 작품제작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세상을 떠난 고 신성일 배우와 함께 추진하다 중단됐던 작품(가칭 ‘가족의 향기’)을 가을께 크랭크인 할 계획이다. 요즘 영화들이 폭력과 살상이 난무하는 ‘악인 시대’를 그리고 있다면 이 감독은 따뜻한 느낌을 주는 ‘천사 시대’를 그리고 싶어 한다.

이 위원장은 한국영화의 문제점으로 1970~1980년대 군사정권 시기에는 ‘검열’을, 현재는 ‘자본’을 꼽았다. 그리고 한국영화가 100년을 넘어 미래에 한층 발전하기 위해서는 ‘작가정신’과 ‘영화의 다양성’을 강조하며 “한국영화의 희망은 독립영화에 있다”라고 말한다.

“영화산업이라는 것은 언제나 식상하게 돼있어요. 돈을 목적으로 계속 이런 식으로 영화를 만들면 관객도 싫어할 수가 있거든요. 그때가 되면 돌파구가 자연히 독립영화가 되죠. 독립영화만이 희망사항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나 스스로도 죽을 때까지 독립영화밖에 만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송기동 기자 song@

/사진=나명주 기자 mj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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