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 필암서원·정읍 무성서원 유네스코 세계유산 됐다
조선 성리학 산실 ‘한국의 서원’ 9곳 세계유산 등재
소수서원·도산서원 등…‘탁월한 보편적 가치’ 인정
2019년 07월 08일(월) 04:50

하서 김인후를 기리기 위해 건립된 장성 필암서원. <장성군 제공>

교육 공간인 흥학당이 서원으로 발전한 정읍 무성서원. <정읍시 제공>








장성 필암서원과 정읍 무성서원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됐다.

조선시대 성리학의 산실인 서원 9곳을 묶은 ‘한국의 서원’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됐다고 문화재청이 7일 밝혔다. 세계유산은 국가문화재를 넘어 세계인의 유산이 된다는 것으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의미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결정하는 세계유산위원회는 6일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에서 열린 제43차 회의에서 한국의 서원을 세계유산 중 문화유산에 등재했다. 이번에 세계유산에 등재된 서원은 모두 9곳으로 장성 필암서원과 정읍 무성서원 외에도 영주 소수서원을 비롯해 안동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경주 옥산서원, 달성 도동서원, 함양 남계서원, 논산 돈암서원이다.

16~17세기에 건립된 이들 서원은 조선 후기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훼철되지 않은 데다 2009년 이전 모두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돼 원형을 비교적 잘 유지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장성 필암서원은 이곳 출신 하서(河西) 김인후(1510~1560)를 기리기 위해 1590년에 건립됐다. ‘문불여장성’(文不如長城) 앞자리에 하서 김인후가 놓일 만큼 하서는 장성을 대표하는 학자다.

1540년 문과에 합격한 김인후는 인종이 왕이 되기 전 세자 시절 스승이었다. 인종은 스승인 김인후에게 묵죽도를 선물할 만큼 그를 존경하고 아꼈다. 그러나 인종이 1545년 즉위 9개월 만에 세상을 떠나고 사화가 발발하자, 하서는 장성으로 낙향한다.

임진왜란 시기인 1597년 건물이 전소됐지만 1624년 지역 사림이 재건했다. 지금 자리로 서원을 이건한 것은 1672년이다. 필암서원은 19세기까지 전남에서는 훼철되지 않은 유일한 서원이다.

필암서원은 산지에 조성된 소수서원, 도산서원, 병산서원과 달리 평지에 조성됐다는 점에서 건축적 특징이 있다. 경사지에 서원을 세우면 공간별 위계가 시각적으로 두드러지지만 평지에서는 이러한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그에 비해 강당인 청절당(淸節堂)이 입구를 등진 채 사당을 향해 열려 있어 하서가 주창했던 예(禮)를 표한것으로 보인다.

17세기 초부터 구한말까지 제작한 문서들이 ‘필암서원 문적 일괄’이라는 명칭으로 보물로 지정됐다. 여기에는 서원이 소유한 전답 규모, 소출량, 노비 등에 관한 문서를 상세히 기록한 것도 있다. 특히 서원에 걸려 있는 현판은 송준길, 송시열, 윤봉구 등이 썼다.

정읍 무성서원(武城書院)은 다른 여느 사원과 달리 마을에 있는 교육 공간 흥학당이 서원으로 발전했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1615년 건립됐으며 당초에는 ‘태산서원’으로 명명됐다가 숙종 22년(1696)에 사액된 이후 전북지역 사림들의 활동 거점이 됐다.

이곳 서원에 배향된 인물도 많다. 통일신라시대 학자인 최치원(857~?), 신잠(1491~1554), 정극인(1401~1481) 등의 신위가 모셔져 있다. 최치원을 제외한 이들은 향촌 교육과 연계돼 있으며 성리학을 권장하고 보급했다.

무성서원에서는 자치규약인 향약을 매개로 주민들의 의사가 결집됐다. 이 같은 전통은 1906년 최익현과 임병창이 일제에 항거하는 병오창의로 이어졌으며, 지역의 정신사적 위상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다. 건물은 사우와 강당인 명륜당(明倫堂), 기숙사인 강수재(講修齋)가 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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