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완 원불교 농성교당 교무] 일상의 오월 광주를 생각하며
2019년 05월 24일(금) 00:00 가가
오월은 많은 법정 기념일이 있다. 근로자의 날(1일), 어린이날(5일), 어버이날(8일), 부처님 오신 날(12일), 스승의 날(15일)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18일), 성년의 날(20일), 부부의 날(21일), 물의 날(31일) 등 무려 아홉 개나 된다. 1년 열두 달 중에서 제일 바쁜 달일 것이다.
그러나 빛고을 광주는 해마다 맞는 5월이지만 이 모든 기념일을 생각할 여유가 없다. 바로 5·18 민중 항쟁 때문이다. 39년이 흐른 지금 다른 도시민들처럼 어린이날을 즐기고 부모님께 카네이션을 달아드리는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도 있는데 보수단체들의 계속되는 5·18의 은폐와 왜곡 망언으로 오월 광주는 5·18 민중 항쟁의 연장선이다. 따라서 일상의 오월 광주를 용납하지 않는다.
올해도 영원한 사랑의 꽃인 이팝꽃이 늘어진 5·18 묘역을 찾아 위령제를 지냈다. 우리 농성교당과 인연 있는 임균수 존영(尊靈·죽은 사람의 영혼을 높여 부르는 말)과 최복덕 존영의 묘소를 찾아 참배를 했다. 임 존영은 원광대 한의대 본과 2학년 재학 중에 계엄군이 쏜 총탄에 맞아 죽음을 맞이했고 최 존영은 계엄군의 무차별 총기 난사로 집에서 얼굴 좌우에 관통상을 입어 열반에 들었다.
1980년 그해도 부처님 오신 날은 5월이었다. 임균수 존영이 세상을 떠난 지도 39년이 지났지만 그의 부모님은 아직도 부처님 오신 날은 교당을 오지 못한다. 그가 계엄군에게 죽임을 당한 그날도 거리에는 많은 연등이 거리를 밝히고 있었다고 한다. 그날의 아픔 때문에 지금도 연등을 보면 균수가 생각나 가슴이 아프고 두근거려서 연등이 있는 교당과 사찰을 찾을 수가 없다고 한다.
최복덕 존영의 아드님은 올해도 초파일을 맞이해서 교당에 어머님을 위한 연등을 밝혔다. 세월이 흘러 아드님의 건강도 많이 안 좋아 보였다. 앞으로 몇 년이나 어머님을 위한 등을 켤 수 있을지 장담할 수가 없다고 힘없이 말을 내뱉는다.
부처님께서는 전생 인연들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7천 겁의 인연은 부부가 되고 8천 겁은 부모와 자식이 되고 1만 겁의 인연은 스승과 제자가 된다고 하는데 누가 이 천륜을 끊는 패륜을 저지르고도 역사와 진실 앞에 저렇게 당당할 수 있는지? 과연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인과응보가 있기는 한 것인지 답답할 뿐이다.
홍헌호 시인은 ‘오독’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어느 시에서 나는/ ‘화염 속의 내 고향 광주’를/ ‘화엄 속의 내 고향 광주’로 잘못 읽었는데/ 그렇게 읽길 잘했어/ 화엄이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옆에서 죽는 놈 짠하고 불쌍해서/ 내 목숨 들이붓고 피 뿜는 짓이 있다면/ 그것이 화엄 아니겠냐?/ 그것이 불타는 엄숙함 아니것냐?”
시처럼 화엄 속의 광주는 그동안 이 땅 상극의 세상을 모두 다 불태웠으리라. 아직 타다 남은 재가 남아 있지만 5월의 바람에 날리리니 화엄의 꽃은 분명 피어나리라 본다.
화엄이 꽃이 활짝 필 때 임균수 존영을 비롯한 광주의 영령들은 상생의 바람 되어 우리에게 다가오리라. 그러면 균수의 부모님도 부처님 오신 날 보살 되어 합장 공경하리라.
그때가 되면 어버이날에 부모님을 찾아뵙고 아이들과 손잡고 어린이날을 즐길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의 오월 광주가 될 것이다.
거리에 나부끼는 어느 플래카드가 내 마음을 흔든다. “5월에서 평화로!”
올해도 영원한 사랑의 꽃인 이팝꽃이 늘어진 5·18 묘역을 찾아 위령제를 지냈다. 우리 농성교당과 인연 있는 임균수 존영(尊靈·죽은 사람의 영혼을 높여 부르는 말)과 최복덕 존영의 묘소를 찾아 참배를 했다. 임 존영은 원광대 한의대 본과 2학년 재학 중에 계엄군이 쏜 총탄에 맞아 죽음을 맞이했고 최 존영은 계엄군의 무차별 총기 난사로 집에서 얼굴 좌우에 관통상을 입어 열반에 들었다.
부처님께서는 전생 인연들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7천 겁의 인연은 부부가 되고 8천 겁은 부모와 자식이 되고 1만 겁의 인연은 스승과 제자가 된다고 하는데 누가 이 천륜을 끊는 패륜을 저지르고도 역사와 진실 앞에 저렇게 당당할 수 있는지? 과연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인과응보가 있기는 한 것인지 답답할 뿐이다.
홍헌호 시인은 ‘오독’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어느 시에서 나는/ ‘화염 속의 내 고향 광주’를/ ‘화엄 속의 내 고향 광주’로 잘못 읽었는데/ 그렇게 읽길 잘했어/ 화엄이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옆에서 죽는 놈 짠하고 불쌍해서/ 내 목숨 들이붓고 피 뿜는 짓이 있다면/ 그것이 화엄 아니겠냐?/ 그것이 불타는 엄숙함 아니것냐?”
시처럼 화엄 속의 광주는 그동안 이 땅 상극의 세상을 모두 다 불태웠으리라. 아직 타다 남은 재가 남아 있지만 5월의 바람에 날리리니 화엄의 꽃은 분명 피어나리라 본다.
화엄이 꽃이 활짝 필 때 임균수 존영을 비롯한 광주의 영령들은 상생의 바람 되어 우리에게 다가오리라. 그러면 균수의 부모님도 부처님 오신 날 보살 되어 합장 공경하리라.
그때가 되면 어버이날에 부모님을 찾아뵙고 아이들과 손잡고 어린이날을 즐길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의 오월 광주가 될 것이다.
거리에 나부끼는 어느 플래카드가 내 마음을 흔든다. “5월에서 평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