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국회’ 이젠 국민이 주인 역할 해야 할 때
2019년 05월 13일(월) 00:00

[박철 법무법인 법가 대표변호사]

지난 총선,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 하겠다고 국민들에게 약속했던 국회의원들이 최근 열과 성을 다해 ‘동물 국회’를 열었다. 여의도 국회는 각 진영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히는 전쟁터이고, 살아남기 위해 때론 ‘진흙탕 싸움’도 해야 하는 곳이리라. 그 싸움이 비단 의원 개인의 영달을 위함만도 아니리라. 결국 국회의원들은 각계각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투사(鬪士)다. 그들을 선택한 것은 국민이니 국회에 나가 투기(鬪技)할 수 있도록 한 책임 주체 역시 국민이다. 따라서 국회의 싸움이 흥미진진하건, 볼썽사납건 간에 국민들은 지켜봐야 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언론 보도를 보면, 왜 싸우는지 속내를 알려주기보다는 싸움판에서 벌어지는 말초적 이슈를 여과 없이 전달하는 데만 급급해 보인다. 정치 혐오만 부추기는 것은 아닐까. 더러운 것 안보면 그만인 것이 아니다. 내 삶, 주변의 삶이 달려 있고, 이해관계가 첨예하기 때문에 보기 드문 대치가 벌어지는 것이다.

도대체 왜 ‘패스트트랙’이 문제인지, 패스트트랙에 태우려는 소위 고위 공직자 비리 수사, 검경 수사권 조정, 선거 관련 법안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국민들이 명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고 본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이하 ‘공수처’) 법안은 대통령 친인척과 고위 공직자, 국회의원 등의 비위를 수사하는 기관으로 공수처를 신설하고, 공수처가 수사한 사건 중 판사, 검사, 경찰의 경무관급 이상이 기소 대상에 포함돼 있는 경우 공수처에 기소권을 부여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검사의 기소 독점(獨占)을 깨뜨리고, 권력형 비리에 대한 수사·기소 업무의 상당 부분이 공수처로 이관될 수 있어 검찰의 반발이 예상되는 법안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검사가 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 범죄나 경찰의 직무 범죄, 위증·증거 인멸·무고 등의 범죄에 대해서만 직접 수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경찰 수사에 대한 통제 방안이 검찰에 새로이 부여되나, 대부분의 사건에 수사지휘를 행사하는 현재의 검찰 권한에 미칠 바 못 되어 경찰은 반기는 법안이다.

선거법 개정 법안은 국회의원 정수를 지역구 국회의원 225명과 비례 대표 국회의원 75명을 합하여 300명으로 하고, 비례 대표 국회의원 의석은 권역별 준연동형 선거제도와 석패율 제도를 도입하여 정하며, 선거권 및 선거 운동 가능 연령을 18세 이상으로 하향 조정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비례 대표가 늘고, 정당에 대한 지지 투표수가 실질적으로 반영되어 민주당과 자유한국당과 같은 거대 정당은 비례 대표 의원 수가 크게 줄 가능성이 높다. 소수 정당들은 양당제 구조를 타파할 법안이라 기대하고 있다.

각 법안에 대한 각 당의 속내는 드러나기도, 때로는 숨어 있기도 해서 어떤 셈법으로 찬성과 반대 진영이 짜여 졌는지는 명확치 않고, 앞으로도 유동적일 것이다.

어쨌든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은 위 세 법안에 동의했고, 논의를 거부하는 자유한국당에 대응해 국회 선진화법에 따른 안건 신속 처리, 소위 패스트트랙을 이용해 위 법안들을 본회의에 상정하려 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사보임’이라는 이슈가 발생한다. ‘사보임’은 국회의 상임위원회에 각 정당이 자신들의 의견을 대리하는 국회의원을 위원으로 보임하거나 사임하게 하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위 법안에 합의한 야당’에 소속된 상임위원이 패스트트랙 처리를 거부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러자 해당 야당에서 그 위원을 사임하고 새로운 위원을 보임했으며, 국회의장은 이를 수락했다. 여기서 국회법 위반 논쟁이 불붙게 되나, 유사 사례에 대한 헌법재판소 결정례에 따르면 국회법 위반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위 법안들의 내용이 쉽지 않고, 민생과 직접 관계가 없어 결국 밥그릇 싸움이 아니냐고 폄하하고 비판할 수 있다. 그렇게 볼 수 도 있다.

다만 형사 제도와 절차, 국민의 기본권 보호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제3 정당의 약진에 따른 국가 정책의 변화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볼 수도 있다.

보는 관점이 무엇이든 주인은 견마가 무엇을 하는지, 혹 사심은 없는지 잘 살펴야 한다. 자유한국당은 장외 투쟁을 이어가고 있고, 민주당 등은 국회에서 논의를 진행하자 압박하고 있다. 시끄러울수록 차분히 지켜보며 주인 행세를 해야 할 때다.

실시간 핫뉴스

많이 본 뉴스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