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초록으로 지친 심신 달래볼까 <265> 초록
2019년 05월 02일(목) 00:00 가가
그토록 이른 봄에 피어나는 꽃들을 좋아했건만, 나이 들어가면서 이제는 봄꽃보다 어린잎들의 연둣빛 초록에 더 마음이 간다. 나무, 아니 가지마다 돋아나는 여린 초록의 새잎들은 그저 색이라 부를 수 없을 만큼의 매혹을 넘어 감탄의 극치다. 색채심리학에서 초록은 생명력의 회복과 소생, 진정을 상징하는 바, 봄빛 고운 초록의 향연 속에서 지친 일상을 위로받고 싶어서일까.
오월 초록의 절정은 청보리밭에서 만날 수 있다. 봄 소풍 삼아 다녀온 고창 청보리밭, 지평선 가득 펼쳐진 초록의 공기에 싸여 새 기운을 얻게 되니 칼라 테라피가 따로 없는 듯하다.
‘보리밭’하면 트레이드 마크처럼 떠오르는 이숙자 화백(1942~ )의 ‘청맥-보랏빛 엉겅퀴’(2009년 작)는 꼭 이맘때의 청보리밭 풍경을 묘사한 작품이다. 오래 전 화백이 포천에 사는 막내 시동생을 찾아갔다가 짙은 초록색 벌판을 만난 인연으로 몰입하기 시작한 초록빛 환영이었다.
오월의 하늘, 언 땅을 뚫고 올라왔을 청맥, 보리이삭과 섬세하게 표현된 보리알의 눈부신 푸른 빛, 바람도 정지된 듯한 고요함이 생명에 대한 외경심마저 들게 하는 순간이다. 그림 속 보리밭에서 함께 숨어있 듯 피어있는 보랏빛 엉겅퀴도 정겹다.
이숙자 화백은 우리나라 채색화의 맥을 잇고 있는 대표작가. 강인한 민족성, 희망의 대상으로서 그리기 시작했던 ‘보리밭’시리즈와 ‘이브’ 연작, ‘군우도’ 연작과 ‘백두성산’ 등의 작품을 통해 우리의 정체성인 ‘한국성’에 대한 강한 열망과 저력을 보여 온 작가이기도 하다.
화백은 자신의 화집에서 “보리밭을 그리는 일은 도를 닦는 일”이었다고 회고한다. “보리밭을 그리기 위해 보리알을 한 알씩 박고 수염을 한 줄씩 그으면서 가슴 속 응어리가 풀려나가 기도할 때처럼 편안함 속에 잠길 수 있었다”고 덧붙인다.
<광주 시립미술관 학예관·미술사 박사>
‘보리밭’하면 트레이드 마크처럼 떠오르는 이숙자 화백(1942~ )의 ‘청맥-보랏빛 엉겅퀴’(2009년 작)는 꼭 이맘때의 청보리밭 풍경을 묘사한 작품이다. 오래 전 화백이 포천에 사는 막내 시동생을 찾아갔다가 짙은 초록색 벌판을 만난 인연으로 몰입하기 시작한 초록빛 환영이었다.
화백은 자신의 화집에서 “보리밭을 그리는 일은 도를 닦는 일”이었다고 회고한다. “보리밭을 그리기 위해 보리알을 한 알씩 박고 수염을 한 줄씩 그으면서 가슴 속 응어리가 풀려나가 기도할 때처럼 편안함 속에 잠길 수 있었다”고 덧붙인다.
<광주 시립미술관 학예관·미술사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