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정 광주대학교 신문방송학과 3학년] ‘태움 문화’ 단순히 괴롭힘의 문제일까
2019년 04월 02일(화) 00:00
지난 1월 5일 고(故) 서지윤 간호사가 ‘태움’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2개월 여의 시간이 흘렀다. 서 간호사는 지난해 말 간호 행정부서로 옮긴 뒤 한 달여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서울시는 사망 사건에 대해 철저히 조사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노조에 따르면 서씨가 부서를 옮긴 뒤 해당 부서 내부 분위기와 부서원들이 주는 정신적 압박에 고통을 호소했다고 한다.

‘태움’이란 ‘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라는 속뜻을 가진 은어이다. 원래는 의료 업무의 특성상 실수 없이 일하도록 엄격히 가르치는 과정에서 생겨났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 태움은 교육을 빙자한 폭력이 됐다. 간호사는 환자의 건강을 돌보는 최전선에 있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인권 침해는 의료 서비스의 질 저하로 이어질 수 있어 더 큰 문제다.

이러한 ‘태움’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한간호협회 조사에 따르면 간호사의 40.9%가 태움을 당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전문가들은 ‘태움’이 열악한 근무 환경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한다. 특히 인력 부족에서 비롯된 간호사의 과중한 업무를 대표적으로 꼽았다. 지난해 ‘태움’을 알리고 세상을 떠난 간호사 고(故) 박선욱 씨의 죽음이 산업 재해로 인정받은 것도 병원의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 박 간호사의 죽음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서울 업무상 질병 판정위원회는 “긴박한 업무 수행이 고인에게 상당한 심리적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이고, 특히 간호사 교육의 구조적인 문제로 직장 내에서 적절한 교육 체계 개편이나 지원 등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고인이 일상적인 업무 내용을 초과하는 과중한 업무를 수행한 것으로 보이는 점을 종합했다”며 “고인의 정신적인 억제력이 저하돼 자살에 이르게 된 것으로 추정되므로 고인의 사망과 업무 사이에 타당한 인과 관계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대한간호협회에 따르면 국내 의료기관 내 간호사 배치 기준은 간호사 1명당 환자 약 12명이며 미국은 5.3명, 영국은 8.6명인 것으로 드러났다. 인력 부족은 초과 근무와 높은 노동 강도, 불충분한 식사 시간 등 살인적인 근무 스케줄은 물론 위계적인 업무 시스템으로 인한 극도의 스트레스로 연결되기 마련이다.

의료계에서는 무엇보다도 의료 기관 내 간호사를 충분히 배치해야 태움과 같은 인권 문제를 막을 수 있다고 꾸준히 지적해왔다. 의료 서비스의 질 개선을 위해서라도 우선 태움의 근본 원인인 의료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태움은 단순히 괴롭힘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는 간호사들이 죽어 나갈 수밖에 없는 병원의 구조를 바꾸는 작업에 시급히 착수해야 한다. 국회엔 ‘보건 의료 인력 지원법’, ‘의료인 인권 침해 금지법’ 등이 발의돼 있지만 아직까지 실질적인 논의가 이뤄지지는 않고 있다고 한다.

지금도 ‘태움’을 당하고 있는 간호사들이 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이 나오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법의 테두리에서 이들을 지켜줘야 한다. 또한 병원 내에서도 간호사에 대한 지원과 교육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소외당하거나 차별당하는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멘토-멘티 구조를 만들어 줘야 하며, 주기적으로 교육을 진행해 ‘태움’이 근절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또한 병원은 사칙을 만들어 휴식 시간을 정하고 휴식 공간도 설치해 간호사의 휴식을 확실히 보장해 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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