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7세기 백작의 저택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가 산다
2019년 02월 21일(목) 00:00
네덜란드 헤이그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
백작 사후 정부로 임대…화재 후 10년간 복원 1774년 공개
4개의 방·대연회장 있는 2층 건물…저택 거실같은 전시실
루벤스·반다이크 작품 등 루브르 박물관 버금가는 컬렉션

요하네스 베르메르 작‘진주귀걸이를 한 소녀’(1665년).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 제공>

빼어난 컬렉션과 화려한 건축미를 보여주는 미술관과 박물관은 문화관광의 하일라이트다. 그래서인지 근래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중심으로 여행을 계획하는 애호가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단 1점의 예술작품을 직접 눈으로 보는 감동은 시간과 경제적 부담을 마다하지 않는다. 기해년, 도시를 빛내는 문화인프라이자 시민들의 문화 쉼터로 사랑받고 있는 소문난 미술관으로 예술여행을 떠나자.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은 매년 전 세계에서 1000만 명에 가까운 관광객이 찾는 글로벌 미술관이다. 특히 미술관의 대표적인 레오

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는 한해 관람객 300여 만 명을 불러 들이는 ‘죽기전에 꼭 봐야 할 걸작’이다. 하지만 네덜란드의 헤이그에도 세기의 명작이 있다. ‘북구의 모나리자’, ‘네덜란드의 모나리자’로 불리는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Girl with a Pearl Earring·1665년 작)다. ‘모나리자’ 만큼 익숙치 않은 이름이지만 그림을 보면 ‘아!’라는 탄성이 터져 나온다.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 전경.


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 헤이그행 기차를 탄 것도 순전히 이 ‘소녀’를 직접 만나고 싶어서 였다. 마우리츠하위스는 행정수도 헤이그의 비넨호프 인근에 위치하고 있다.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를 소장하고 있는 미술관은 헤이그 중심가에 자리한 마우리츠하위스(Mauritshuis) 왕립미술관이다. 마우리츠의 집이라는 뜻의 미술관은 루브르에 비해 규모가 아주 작지만, 컬렉션의 질은 결코 뒤지지 않는 네덜란드의 ‘보석’과 같은 곳이다. 미술관의 아이콘인 베르메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에서부터 렘브란트의 ‘툴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The Anatomy Lesson of Dr. Nicolaes Tulp·1632년)를 비롯해 꽃 그림으로 유명한 알스트와 드 헤임, 겨울 풍경을 즐겨 그린 아퍼캄프, 바로크 화가 루벤스, 초상화의 거장 반다이크 등 서양회화사에 한획을 그은 기념비적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마우리츠하위스를 찾던 날, 건물 외벽 오른편에 내걸린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 대형 홍보물 덕분에 멀리서도 쉽게 미술관의 존재를 알 수 있었다. 점심 시간을 훌쩍 넘은 한낮의 미술관 앞은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 홍보물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방문객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마우리츠하위스는 1636~1641년 요한 마우리츠 백작이 비넨호프와 호프페이베르 연못 주변에 지은 저택이다. 네덜란드 특유의 우아한 장식이 돋보이는 건물은 당대 최고의 건축가 야콥 반 캄펜(Jacob van Campen)과 피에테르 포스트(Pieter Post)가 설계했다. 현존하는 네덜란드 건축물 가운데 17세기 고전 양식을 잘 나타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네덜란드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한 갤러리.


2층 구조의 미술관은 4개의 방(갤러리), 대연회장으로 구성됐다. 특히 4개의 방에는 각각 곁방과 작은방, 화장실이 딸려 있어 17세기 백작의 집을 보는 듯 하다. 또한 붉은 핑크, 블루 등의 화사한 색감으로 단장된 각 전시실은 다른 미술관과 달리 거실에 걸린 그림을 감상하는 것 처럼 편안한 느낌을 준다. 강렬한 붉은 색의 감도는 갤러리에선 아름다운 여인들의 초상화와 일상을 그린 작품이, 차분한 색감의 갤러리에는 ‘툴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등의 세밀한 묘사가 인상적인 사실주의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네덜란드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한 갤러리.


하지만 이들 작품이 마우리츠 하위스의 벽면에 내걸기까지에는 적잖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1679년 요한 마우리츠 백작이 세상을 떠난 후 이 집의 소유권은 마에스 가문( Maes family)으로 넘어갔고, 그 후 네덜란드 정부로 임대됐다. 1704년 불의의 화재사고로 저택의 인테리어가 전소되자 정부는 1708~1718년까지 10년간 대대적인 복원 작업에 들어갔다.

마우리츠하위스가 미술관으로 대중들에게 선보인 건 1774년이다. 당시 미술관의 컬렉션은 네덜란드를 침략한 프랑스 나폴레옹 부대에 의해 파리 루브르로 보내졌지만 프랑스군이 후퇴하면서 다시 윌리암 오란녀 가문으로 돌아왔다. 네덜란드의 독립영웅인 오란녀 가문이 가보로 전해지던 컬렉션 200점을 국가에 기증하면서 오늘날 대중의 사랑을 받게 됐다. 네덜란드 정부는 오란녀 가문의 공을 기념하기 위해 후손인 요한 마우리츠(1604∼1679)의 이름에서 따온 마우리츠 하위스 왕립미술관으로 명칭을 정했다.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는 화려한 컬러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들이는 마력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여느 초상화들과 완전히 다른 신선한 소재도 아니다. 그저 어두운 배경에 이국적인 의상과 터번을 두른 매혹적인 소녀가 관람객을 바라보고 있는, 어찌보면 ‘단순한’ 그림이다. 하지만 여유를 갖고 찬찬히 작품을 살펴 보면 뭔가 관람객에게 말을 건네는 듯 하다. 베르메르의 여러 작품이 그러하듯 작품의 모델에 대해서도 알려진 게 많지 않다. 더욱이 소녀가 입고 있는 이국적인 느낌의 옷은 당시 네덜란드 사람들의 평상복과는 거리가 멀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표정 역시 미스터리한 부분이 많다. 촉촉한 입술과 살짝 벌어진 입은 그림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또한 소녀의 차림에서 시선이 머무는 건 유난히 반짝거리는 진주귀걸이다. 제법 크기가 큰 진주귀걸이는 소녀의 단아한 이미지에 어울릴 뿐 만 아니라 화려한 분위기를 연출해 그녀의 신분을 궁금하게 한다.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은 매년 전 세계에서 300여 만명의 관람객들이 찾는 글로벌 미술관이다.


렘브란트의 ‘툴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는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와 더불어 관람객들이 사랑하는 작품이다. 제목 그대로 1632년 니콜라스 툴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 장면을 그린 작품이다. 그림에서 그는 엄지와 검지를 움직이게 하는 왼쪽 팔의 근육을 들어 왼손 손가락으로 직접 움직임을 보여주면서 설명하고 있다. 해부 장면을 지켜보고 있는 7명의 의사 이름은 가운데 남자가 들고 있는 종이에 모두 기록돼 있다. 오늘날의 단체 인증샷 처럼 당시 네덜란드에서 유행하던 그룹 초상화라고 할 수 있다. 26세때 렘브란트가 그린 이 작품은 과학에 대한 당대의 관심과 발전상은 물론 비대칭적 대각선 구도와 빛의 처리로 인물들의 내면세계까지 표현한 수작으로 꼽힌다.

/헤이그=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

실시간 핫뉴스

많이 본 뉴스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