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로 띄우는 그림편지Ⅳ] <15>이탈리아 밀라노-정광희
화려한 과거·다이나믹 현재 조화…상상력 실현된 도시
2019년 01월 17일(목) 00:00

프라다 파운데이션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문화적 공간이다. 프라다 파운데이션 전시장 설치작품.

돌과 안개 사이에서, 나는

휴일을 즐긴다. 대성당의

광장에서 쉰다. 별

대신

밤마다, 말에 불이 켜진다

인생만큼,

살아가는 피로를 풀어주는 것은, 없다

-움베르토 사바 ‘밀라노’

밀라노는 어린 시절 아직 서울을 가보지 않았던 내가 마음속에 서울을 그렸던 것처럼 그동안 막연한 동경의 대상으로 존재해온 도시였다. 패션과 디자인 관련 매체들이 심어준 세련된 시각적 이미지들 때문에, 고전적인 매력의 로마나 피렌체와 다른, 미래지향적이고 모던한 도시 이미지가 마음속에 심어져 있었던 것 같다.

이런 매력에 이끌려 이 도시에 첫 발을 내딛게 됐다. 도시의 속살을 만나면서 막연했던 동경심은 감탄사가 돼 장거리 여행의 피로를 날려주었다. 온몸으로 이 도시의 숨결을 느끼고 싶어 도심의 공간들을 걷기 시작했다. 자신을 위해 스스로 만든 시간과 공간이야말로 진정한 성찰의 기회일 것이다. 밀라노의 멋진 건축물들은 화려한 과거와 다이나믹한 현재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시들지 않은 상상력이 실현된 결과물로 이 도시의 얼굴이 되었다.

도착 다음날 나는 이번 일정 중에 꼭 가보고자 했던 곳으로 향했다. 바로 밀라노를 창의적인 도시로 탈바꿈시키는 데 가장 많은 일조를 한 프라다 파운데이션이었다. 가는 길에 밀라노 두오모 성당을 보고 프라다 파운데이션으로 가는 동선을 잡고 지하철을 탔다.

출구를 빠져 나오자 두오모 성당 앞 광장이 보였다. 정교한 조각물처럼 화려한 성당의 내부와 외부를 오가며 관찰하고 기록물들을 들여다보았다.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성당으로 중세 고딕 양식의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오래된 성당의 외벽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상을 발견하기도 했다. 상아색 바탕에 가느다란 먹의 여러 필선이 지나간 것처럼 보이는, 이미 추상적 회화의 미감을 머금고 있는 대리석이었다. 두오모 성당의 외관은 남성적이지만 색감은 어머니의 품속 같은 푸근함을 느끼게 했다. 멀리서 바라 본 성당은 거대하면서 섬세한 하나의 조각품으로 오랜 시간의 그윽함을 머금고 있었다. 바라보는 내내 나의 마음은 온통 경건함으로 가득 차올랐다. 성당을 장식하고 있는 조형물 하나하나에서 발견한 장인의 숨결은 보는 이들의 영혼을 깨우기에 충분했다. 숭고한 아름다움! 그 자체로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을 주었다.

‘프라다 파운데이션 건물’
고전적 아름다움을 뒤로 하고, 나의 발걸음은 이탈리아 현대 미술의 새로운 메카로 떠오른 프라다 파운데이션으로 향했다. 프라다는 1913년 밀라노에서 조그만 한 가죽제품을 판매하는 상점으로 출발하여 오늘날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그룹으로 성장한 기업이다. 프라다 파운데이션은 오래된 설탕 공장과 양조장을 리뉴얼하여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든 곳이다. 제조업이 쇠락하면서 삭막해진 도시의 변두리 지역에 생명을 불어 넣은 도시재생의 아주 훌륭한 사례로 꼽힌다.

건물은 비교적 간결한 편이었고 옛 건물을 크게 훼손하지 않은 범위에서 군더더기 없이 디테일까지 완벽한 프라다다운 격조를 유지하고 있었다. 특히 ‘유령의 집’이라는 황금색 건물은 옛 건물 외관 전체를 금박으로 장식하여 상징적인 조형물처럼 보였다. 친숙한 것을 새로운 것으로 보이게 하는 창조적 감각이 발휘되고 있었다. 이것이야 말로 창조적인 예술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독특한 건축물로 밀라노 두오모 성당 이상의 강렬함을 보여주었다.

천천히 전시장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전시장은 텅 빈 충만처럼 오로지 작품 한 점을 위한 공간이거나 많으면 두 점이 있을 뿐 철저히 한 작품을 보는데 집중하도록 만들어 놓은 공간이었다. 그 순간 “텅 빔보다 더 강력하고 창조적인 것은 없다”라는 노자의 말이 떠올랐다. 탁월한 공간 해석이 주는 사유의 확장은 결국 작품과 공간 모두를 빛나게 하였다.

조심스럽게 공간을 이동하는데, 조용히 귀에 들어오는 소리가 있어 한 발짝 또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전시장 바닥 한 가운데 하수구 형태가 보였다. 가까이 가서 바닥을 들여다 본 순간, 흐르는 물이 눈에 들어왔고 또 다른 소리를 만났다. 그것은 심장이 벌떡벌떡 뛰는 소리였다. 조용히 물이 흐르는 하수구 위에 붉은 심장이 뛰고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실제 크기로 만들어진 심장형태의 설치물이었다. 그 자리에서 나는 무언지 모를 감동의 도가니에 빠져들었다. 그리 크지도 않은 작품에서 압도를 당하다니... 그것은 아마도 나의 사유 체계로는 이제껏 도달해 보지 못한 결과였기 때문인 것이다.

작가이자 관람자로서 이러한 감동스런 작품을 만나니 무척 기뻤다. 나 역시도 창작을 하는 사람으로서 누군가에게 이러한 뜻밖의 감동을 선사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전시 공간으로 이동하는 내내 이 작품의 여운이 가시지 않을 정도로 매우 인상적이었다. 또한 작가의 의도에 대한 궁금함도 한동안 지속적으로 생겼다. 작가는 왜 흐르는 물위에, 그것도 시냇물이 아닌 하수구에, 사람의 심장을 두었을까?

나는 여기서 질문이라는 또 다른 스승을 만나게 된 것이다. 빛을 찾아 동굴을 빠져 나오라는 숙제가 있기 때문이다. 어떤 질문이 있다는 것은 배움의 씨앗이자 스승이라고 생각한다. 예술 또한 자신이 직면하고 있는 혹은 이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에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공간속에서 프라다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얼마나 많은 질문을 하였을까?

‘밀라노 두오모 성당’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프라다 파운데이션의 문화적 공간과 심장이 뛰게 하는 단 한 작품을 본 것만으로도 이번 여행의 시간과 경비가 아깝지 않을 만큼의 큰 감동을 선물 받았다.

밀라노에서 프라다라는 기업의 존재감은 우리가 알고 있는 명품 브랜드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시민들은 프라다라는 기업이 밀라노에 있다는 사실에 자긍심을 가지고 있었다. 프라다는 문화예술 분야 전반에 걸쳐 지속적이고 아낌없는 후원을 통해 시민들에게 환원함으로써 기업 메세나 운동의 새로운 모범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제 프라다의 메세나 운동은 지역을 넘어 전 세계의 자랑이 되었다.

일 년에 두 번, 새로운 현대 미술작가를 발굴하고 아낌없는 순수예술분야의 지원을 통해 현대미술의 새로운 흐름을 만드는데 많은 공헌을 해오고 있다. 또한 미술에서의 선견지명을 가진 프라다는 예술적 안목이 뛰어나고 독창적인 컬렉션을 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프라다에서 발굴한 수많은 작가들이 세계적인 거장의 반열에 오르며 미술시장에서 그녀의 예술적 안목을 입증하기도 했다. 프라다는 이러한 파격적인 시선의 높이로 이탈리아 현대 예술의 견인차 역할을 해오고 있다.

무엇이든 예술로 구현해 낼 수 있는 열린 환경과 이러한 창조적 예술의 에너지가 산소처럼 자유롭게 떠다니는 이곳이 무한정 부럽기만 했다. 이방인마저도 떠나지 않고 정주하고 싶은 매력이 있는 도시, 이 도시의 한 가운데에 프라다 파운데이션이 있다.

창조적인 메세나 운동에 앞장서온 프라다처럼, 광주에도 시민들에게 아낌없이 문화예술로 환원할 줄 알고 자유롭고 과감하게 새로운 예술을 견인하여 시민들에게 존경 받는 기업들이 앞으로 더 많이 생겨나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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