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요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몸으로 돌아오라
2018년 12월 17일(월) 00:00
얼마 전 한 단체에서 ‘치유 걷기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단지 열심히 걷는 것이 아니라 걷기를 통해 몸을 자각하고 몸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갖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프로그램 중간에 ‘아픈 몸과 대화하기’ 순서가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아프거나 불편한 몸의 부위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 몸의 부위를 의인화시켜 대화를 나누어 보는 것입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몸에게 먼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몸이 자신에게 무엇을 이야기하는지를 들어 보는 것입니다. 설명을 듣고 사람들은 의아해하고 불편한 반응을 보입니다. ‘무슨 몸과 대화를 해?’ ‘몸이 무슨 말을 해?’

당연합니다. 이런 접근은 너무 낯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한 번도 몸을 인격체는커녕 대화의 상대로 접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막상 그 시간이 끝나면 가장 많은 이야기가 쏟아집니다. 그날은 첫 소감을 발표하는 사람부터 울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아픈 허리를 떠올렸어요. 그랬더니 무거운 등짐을 진 허리 굽은 할머니가 연상되었어요. 그분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냐고 하니까 막 화를 내는 거예요. ‘왜 힘들다고 해도 거들떠보지도 않았느냐고 막 원망과 울분을 쏟아 내는 거예요.’ 생각해 보니 허리가 아프면 나는 짜증부터 냈어요. ‘바빠 죽겠는데 왜 또 말썽이야!’ ‘좀 잠자코 있어. 나중에 봐 줄 테니까!’라고 말했죠. 정말 허리에게 미안했어요. 오늘은 끝나는 대로 병원부터 가 봐야겠어요.”

자존감이 중요하다고 많은 이들이 말합니다. 그런데 자신을 존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기본은 몸에 대한 존중입니다. 그렇다면 몸을 존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건강식품을 잘 챙겨 먹는 것일까요? 운동을 자주 하는 것일까요? 물론 그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핵심은 몸을 한 인격체로 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주 오래 전부터 몸을 수단화해 왔습니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어떻게 해 왔습니까? 우리는 해결되지 못한 스트레스를 몸에다가 풀었습니다. 몸이 고통스러울 정도로 술이나 음식을 자꾸 집어넣기도 합니다. 심한 경우에는 몸에 자해를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외적인 가치감을 위해 몸에게 고통을 강요해 왔습니다. 발이 힘든 하이힐을 신고, 생리가 끊어질 정도로 다이어트를 하고, 근육을 키우기 위해 몸의 손상을 줄 정도로 운동을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자신의 목표를 위해 잠을 자지 않고, 쉬지도 않고 몸을 채찍질해 왔습니다. 농경 시대에 가축도 그렇게 대하지는 않았습니다. 일을 시키면 쉬게 하고 제때 음식을 주고 아프면 돌봐 주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몸을 마음의 도구로 삼아 마음껏 착취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단 한 번도 몸이 그 자체로 욕구, 느낌, 언어, 지혜 등을 갖춘 개별적이고 인격적인 존재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몸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생은 참 쉽지 않습니다. 뜻대로 되지 않아 좌절하거나 내 마음 같지 않아 상처받는 일들이 부지기수로 많습니다. 그러나 힘든 인생이라고 하더라도 우리 곁에 든든한 동반자가 있다면 우리는 보다 잘 헤쳐 갈 수 있습니다. 그 동반자는 가족과 친구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함께할 수 있을까요? 결국 가족이라고 하더라도 언젠가는 우리를 떠나게 됩니다.

하지만 탄생부터 죽음까지 나와 함께하는 대상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몸’입니다. 가장 나다운 것은 내 몸입니다. 내 몸엔 내 삶의 모든 역사가 기록되어 있고, 내 몸은 마지막 숨을 내쉬는 순간까지 나와 함께할 동반자입니다. 모든 것을 다 가졌어도 가족 관계가 불행하면 삶이 불행한 것처럼 평생 동반자인 내 몸과의 관계가 돈독하지 못하면 인생이 힘들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고요한 마음, 행복한 관계, 훌륭한 삶 그리고 아름다운 영혼은 그 모든 게 자신의 몸에 기반을 두어야 합니다. 몸을 초월해야 가능한 것이 아니라 몸에 뿌리를 두어야 지속 가능한 일입니다.

몸을 배제한 삶은 뿌리 없는 식물과도 같아 영양분을 빨아들일 수 없으며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몸의 자각이 정신적 자각 앞에 선행되어야 합니다. 몸을 돌보지 않는 사람은 자신을 존중하지도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입니다. 우리 시대의 진짜 위기는 어쩌면 마음이 아니라 몸인지 모릅니다. 몸으로 돌아와야 할 때입니다. 몸의 소리를 들을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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