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세상살이의 힘겨움
윤영기 멀티미디어 부장
2018년 12월 12일(수) 00:00
최근 딸아이가 아침 밥상머리에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오늘 밤 11시쯤 광주 광산구에 있는 대학교로 데리러 와 줄 수 있느냐는 부탁이었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광주에서 첫 개최되는 ‘리그 오브 레전드(League of Legends) 월드 챔피언십’ 4강전을 보러 간다는 것이다. 이 인터넷 게임의 객석을 확보하기 위해 딸아이는 이미 엄마와 줄다리기 끝에 관람권 구입비 5만 원을 받아 갔던 모양이다.

쏟아지는 잠을 쫓아내고 경기 종료 시간에 맞춰 딸아이를 데리러 가서는 적이 놀랐다. 수많은 10대들이 출구에서 쏟아져 나와 전세 버스에 오르는 것이었다. 이들은 전국에서 경기장을 찾은 팬들이었다. 딸은 ‘우리나라 선수가 8강전에서 모두 탈락하는 바람에 그나마 관람객이 적은 것’이라고 했다. ‘인터넷 게임’을 ‘e스포츠’라고 부르는 이유를 그제야 알 것 같았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17년 e스포츠 실태 조사’를 보니, 지난해 온라인 게임 스트리밍(실시간 방송) 분야 매출은 136억5000만 원으로 전년에 비해 무려 41% 증가했다고 한다. 최근 케이블 TV에서 방영하고 있는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도 인터넷 게임을 방송에 본격 도입한 경우다.

컴퓨터와 휴대전화에 코를 박고 있는 젊은 그들을 이해 못하는 ‘꼰대’들에게 디지털 현실은 견딜 수 없는 격변이다. 그 변화의 속도는 족탈불급(足脫不及)이란 말로도 부족하다. 최근 가장 주목받고 있는 유튜브(YouTube)만 봐도 그렇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에서 20세 이상 성인 남녀 1218명을 대상으로 유튜브 이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 중 94.2%가 ‘이용한 적이 있다’고 답했을 정도다. 일각에서는 유튜브 대세를 일명 ‘갓(God) 튜브’라고도 부른다. 아직도 ‘네이버에 물어보는’ 세대는 이제 구닥다리라는 핀잔을 들어야 할 처지다.

중장년이 책이나 포털에서 지식을 습득하는 것과 달리 10대는 유튜브에서 동영상을 보고 지식·정보·경험을 습득한다. 유튜브에서는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실현되고 있다. 당장 자신의 관심사를 검색해 보면 왜 10대들이 유튜브에 꽂혀 있는지 알 수 있다. 유튜브를 움직이는 힘은 보상(돈) 체계다. 전 세계 크리에이터(동영상 제작자)가 만든 동영상을 최소 1000명(구독자) 이상 보면 구글이 광고를 붙여 주고 그 수익금을 크리에이터와 분배한다.

유튜버로서 돈과 명성을 거머쥔 스타도 속속 탄생하고 있다. ‘먹방’(먹는 모습을 보여 주는 방송) 유튜버 ‘벤쯔’, 메이크업 유튜버 ‘이사배’, 게임 중계 유튜버 ‘대도서관’ 등이 그들이다. 고백하자면 기자는 2016년 광주 세계 웹콘텐츠 페스티벌의 홍보 대사로 광주를 찾았던 대도서관을 알아보지 못했다. 자식들이 간절히 원하는 그의 사인을 받기 위해 5·18광장에 줄을 섰던 부모들도 이해할 수 없었다.

이젠 유튜버가 대세여서 유행과 돈 냄새에 민감한 공중파 방송조차 이들에게 손을 내밀고 있다. 시청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앞다퉈 ‘파워 유튜버’를 고정 출연자로 모시고 있는 것이다. 한때 네이버 ‘블로그’에 올라탔던 기자들도 이젠 유튜버로 갈아타고 있는 지경이다. 학생들이 선망하는 직업군에 유튜버가 새롭게 등장하기도 했다.

교육에서도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중장년이 대학 컴퓨터 실습 시간에나 접했던 코딩이 초등학교 정규 과목이 됐다. 교육부는 올해 중학교 1학년을 시작으로 내년에는 초등학교 5,6학년부터 소프트웨어 코딩 교육을 의무화했다. 코딩 교육은 컴퓨터 언어를 이해하고,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게 하는 교과 과정이다. 코딩이 의무 교육에 편입된 이유는 명료하다. 인공지능·빅데이터·사물인터넷 등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변하는 모든 것이 컴퓨터, 즉 소프트웨어를 통해 구현되기 때문이다.

중·장년들에게 디지털 세상은 어쩌면 디스토피아일지도 모른다. 디지털 세계를 숨 가쁘게 좇아가는 대신, ‘이대로 살다 죽을 거야’라는 우스개 푸념이 들려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젊은이의 전유물로 알려진 코딩이나 드론 등 신세계에 도전하는 노장들 역시 의외로 많다. 이들이 앞으로 IT 관련 직장에 취업할지, 컴퓨터 프로그램 회사를 창업할지는 알지 못한다. 바라건대, 이들 중에서 세계 최고령 앱 개발자인 와카미야 마사코 할머니 같은 분들이 나왔으면 좋겠다. 올해로 82세인 그는 일본 전통 인형을 순서대로 맞추는 무료 퍼즐 게임 ‘히나단’(hinadan)을 만들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디지털 세상을 외면하고 살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제 눈과 귀를 닫고 살면, ‘내가 경험하고 살아온 세상이 전부’라고 말할 수 없는 세상이 된 것만은 자명하다.

/penfoot@kwangju.co.kr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