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스포츠/연예
오피니언
기획시리즈
뉴스 홈
정치
경제
사회
시군
문화

[굿모닝 예향] 과학저술가·과학책방 ‘갈다’ 이명현 대표“경이로운 과학, 쉽게 다가가는 문화 되게 하겠다”

아폴로11호·금성에 매료 된 소년
과학·대중 연결하는 매개자 거듭나
갈릴레오+다윈 앞글자 딴 ‘갈다’
“교양과학문화 새 마당 열 것” 포부
“과학에 대한 흥미 떨어뜨리는
지금 같은 교과서는 없어져야”

2018. 11.08. 00:00:00

전파천문학자이자 과학저술가인 이명현 과학책방 ‘갈다’ 대표. 별과 우주에 관한 전문적 지식을 대중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저술활동과 강연을 통해 전달하는 ‘사이언스 커뮤니케이터’를 지향한다.



과학전문 서점 ‘갈다’ 개점을 위해 십시일반 힘을 보탠 주주들. <원병묵 성균관대 교수 제공>





달에 첫발을 내디딘 아폴로 11호 우주인과 초저녁 서녘하늘에 떠있는 금성은 소년의 마음을 온통 사로잡았다. 우주는 언제, 어떻게 형성됐을까? 소년은 나중 은하를 연구하는 전파 천문학자가 됐다.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과학책방 ‘갈다’(GALDAR)를 연 과학저술가 이명현 대표의 별과 우주, 책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자신이 살던 집을 과학책방으로= 우리말 ‘갈다’는 여러 의미로 사용된다. 무딘 연장의 날을 단련해 ‘벼린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밭을) 경작하다’(耕), ‘(판을) 교체하다’(改) 등 다양하게 쓰인다. 과학 전문책방 ‘갈다’는 갈릴레오와 다윈의 앞글자를 따서 지었지만, 교양과학문화의 새로운 마당을 열겠다는 다중적인 의미를 품고 있다.
서울 종로구 주택가 골목에 자리한 ‘갈다’는 독특한 외관을 하고 있다. 컴퓨터 본채 2대를 나란히 놓은듯 한 갈색과 흰색 2층 건물 두 동을 나지막한 외벽이 두르고 있다. 외벽에 ‘과학이 문화가 되는 과학책방 갈다’라고 쓰인 문구가 서점의 지향점을 한 눈에 보여준다. 지하는 북 토크와 회의, 작은 콘서트를 할 수 있는 공간, 1층은 카페와 책방, 2층은 ‘작가의 방’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기자가 책방을 찾았을 때 이명현(55) 대표는 2층 ‘작가의 방’ 창가에 노트북을 펴고 청탁받은 원고를 한창 마감하고 있었다. 일단 원고 청탁을 받으면 분량에 관계없이 머릿속으로 생각을 많이 하며 정리를 한 후 마감 직전에 원고를 쓰기 시작하는 스타일이다. 특히 소아암을 앓는 어린이들의 가발제작에 필요한 모발을 기증하기 위해 일부러 머리를 기르고 있다고 한다.
이 대표가 과학서점을 열게 된 계기는 우연스러웠다. 지난 2015년 12월, 이 대표는 제주도 출장을 가던 중에 아버지 이근후(83) 이화여대 명예교수(정신과 전문의)의 문자를 받았다. 비어있는 삼청동 집을 사용할 생각이 있느냐는 내용이었다. 삼청동 집은 2000년대 초까지 이 대표가 살았던 집이다. 지난 2002년에 부친이 서울 종로구 구기동에 연립주택을 신축해 4남매와 함께 옮겨간 후 NGO단체인 비폭력 대화센터에서 사용해 오다 3년 전 강남으로 이전하며 비어있는 상태였다.
“친하게 지내는 교수, 글 쓰는 과학자랑 얘기를 나누면서 스튜디오, 살롱 등 여러 아이디어들이 나왔어요. 몇 달 얘기하다가 글을 쓰는 사람들이니까 과학책방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뜻을 모았죠.”
과학자와 과학저술가, 출판사 대표, 작가, 과학을 좋아하는 사람들 등 110명이 주주로 참여한 주식회사로 만들어 책방 문을 열었다. 처음부터 마스터플랜을 완벽하게 짜고 시작한 것이 아니라 가능한 강좌부터 실행을 했다. 칼 세이건 살롱 2018 후원 독서모임 ‘코스모스 끝까지 읽기’와 저자를 초청하는 북 토크 등 다채로운 강좌를 개설했다. 아직 교양과학 토대가 척박해서 사람들이 원하는 것과 (갈다가) 보여주고 싶은 사이에 간극이 있다.
◇ 어릴 적 아폴로 11호와 금성에 매료돼= 이 대표는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답십리에 살던 어린 시절, 날이 저물면 서쪽하늘에 밝게 빛나는 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금성(개밥바라기)이었다. 또 1969년 달 표면에 첫발을 내디딘 아폴로 11호 역시 소년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중학생 때부터 아마추어 천문 동호회에서 ‘아폴로 박사’ 조경철 교수 등과 교류하며 우주에 대한 지식을 넓혀나갔다. 고교 때는 문학반 활동을 하면서도 ‘천문학자’를 꿈꿨다. 1982년 연세대 천문기상학과에 진학한 그는 석사를 마친 후 1990년 네덜란드 흐로닝언(Groningen) 대학교로 유학을 떠나 전파천문학을 전공했다.
1996년 귀국한 그는 연세대 천문학과 연구교수와 연세대 천문대 책임연구원 등으로 일했다. 한국천문연구원의 ‘한국 우주전파관측망(KVN·Korean VLBI Network)’ 프로젝트로 건립하는 지름 21m의 전파망원경을 연세대에 유치하는데 힘을 보탰다.갈릴레오 갈릴레이가 망원경을 통해 밤하늘을 관측한지 400주년을 맞은 2009년에는 세계 천문의 해 한국조직위원회 문화분과 위원장을 맡아 만화가 등 문화예술인들과 2박3일간 소백산 천문대에서 워크숍을 진행하기도 했다.
2010년 11월, 그에게 위기가 닥쳤다. 급성 심근경색으로 집에서 쓰러진 것이다. 다행히 빠른 시간 내에 응급실로 옮겨져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일로 인해 학교와 연구소를 떠나야 했다. 경제활동은 물론 일상생활조차 힘겨운 이때, 먹고 살아야 하는데 그가 할 수 있는 재주라곤 글 쓰는 것밖에 없었다. 그는 2주 동안 과학관련 책 한권을 정독하고,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에 서평 한꼭지를 썼다. 지난 9월 출간한 ‘이명현의 과학책방’(사월의 책 펴냄)이 당시 ‘혼자 과학책을 읽고 내 속으로부터 튕겨져 나오는 이야기를 서평에세이로 표현한 결과물’이다. 그는 서문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묘사한다.
“…힘들게 숨을 고르며 책을 읽었다. 떨리는 손가락에 힘을 주면서 자판을 두드려서 서평에세이를 썼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행위는 당시에 내게 있어서는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다.”
앞서 2014년 7월에 출간한 ‘이명현의 별 헤는 밤’(동아시아 펴냄)은 별과 우주에 관한 지식을 독자들에게 이야기하듯 편하게 들려준다. 글머리마다 별을 소재로 한 시가 실려 있어 그의 문학적 감수성을 짐작하게 한다. 비록 천문학을 연구하는 현장을 벗어났지만 별과 우주에 관한 전문적 지식을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요리해서 내놓는 과학저술가 또는 ‘사이언스 커뮤니케이터’(과학자와 대중을 연결하는 매개자)로 거듭났다.
◇ 지금같은 과학 교과서는 없애야= 이 대표는 국내에서 ‘칼 세이건(1934~1996) 전문가’로 불린다. 고2때 미국 천문학자인 칼 세이건이 진행하는 다큐 ‘코스모스’와 같은 제목의 책을 보고 감동했다.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후 ‘코스모스’를 주제로 강연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다시 읽어보니 학생때와 다르게 다가왔다. 읽을 때마다 굉장히 다양하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책이었다. 이후 칼 세이건이 쓴 ‘콘택트’, ‘에덴의 용’ 등 책들을 모두 찾아 읽었다. 지난 2008년에는 칼 세이건의 3번째 부인인 앤 드루얀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통역을 맡아 친분을 쌓았다. 그러한 인연으로 칼 세이건 타계 20주년을 맞아 2016년 9월 열린 강연장에서 그녀와 전화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그는 국내 척박한 과학문화와 학교의 과학교육에 대해 비판적이다. 지금과 같은 과학교과서는 없애자고 주장한다.
“과학이란 게 경이로움이 중요한 거거든요. 그런데 경이로움을 느끼지 못하도록 만들고 말살하는 식의 교육을 하고 있어요. 시험도 봐야하고, 말도 안 되는 것을 외워야 하고. 그런 식의 과학교육을 받으면 받을수록 과학에 대해서 싫어하게 되고, 혐오하게 되고, 분노하게 되죠.”
이 대표는 글쓰기와 강연, 방송·팟캐스트 출연, ‘갈다’ 운영 등으로 어느 때보다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는 억지로 큰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물이 흐르듯, 별이 궤도를 따라 운행하듯 낙관적으로 현재에 충실하려 할 뿐이다. 내년에 영국 극작가 닉 페인(Nick Payne)의 과학 희곡집을 시리즈로 펴낼 예정이다. 또 낭독회 겸 과학적 인식론을 바탕으로 한 강연도 구상하고 있다.
/글·사진=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

기사 목록

검색